기독교 문명의 정치적 분권제와 유교 문명의 종교적 분권제
동아시아 유교 문명이 근대의 위기 앞에서 보여준 혁신성은 실로 경이롭다. 특히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서는 기존 체제의 근간이었던 유교 이념을 주저 없이 버리고 공산주의라는 완전히 새로운 사상으로 갈아타는 과감함마저 보였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유연성이 가능했을까? 그 해답은 유교가 동아시아 문명의 유일한 정신적 토대가 아니었다는 사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문명을 '하드웨어(정치∙사회 구조)'와 '소프트웨어(정신∙사상 체계)'라는 틀로 비유해 보자. 서구 문명은 흔히 '분권'을 자신들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서구는 정치적 '하드웨어'는 분권적이었을지 몰라도, 정신적 '소프트웨어'는 극도로 중앙집권적이었다. 중세 기독교는 문명 전체를 지배하는 유일한 운영체제(OS)였다. 교황을 정점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교단은 다른 종교를 이단으로 규정해 결코 허용하지 않았고, 철학조차도 기독교 교리를 증명해야 하는 도구로 여겼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표현은 바로 이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동아시아는 이 구조가 정반대였다. 황제를 정점으로 한 관료 국가라는 정치적 '하드웨어'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였지만, 정신적 '소프트웨어' 환경은 놀라울 정도로 분권적이고 개방적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고대부터 유교, 불교, 도교라는 세 개의 종교가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공존해왔다. 이는 마치 하나의 컴퓨터에서 여러 운영체제를 동시에 돌리는 것과 같았다. 한 개인의 삶 속에서도 세 종교는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었다. 관료로서 공적인 삶은 유교적 규범을 따르면서도, 개인의 내면적 번뇌는 불교 사찰에 가서 달래고, 건강과 장수를 위해 도교적 양생법을 따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신적 분권성은 외래 종교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유지하게 했다. 동아시아에서 특정 종교가 금지된 경우는 대부분 그 종교의 교리가 배타적이어서 기존의 다원적 질서를 해칠 때였다. 기독교가 금지되었던 이유 역시, 유교 문명의 핵심인 조상 제사를 '우상숭배'라며 부정했기 때문이지, 그 사상 자체를 처음부터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동아시아는 정신적 영역에서 본질적으로 다원주의적이고 분권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정신적 분권주의 전통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에 성당과 교회가 "부처님 오신 뜻을 기립니다"라는 축하 현수막을 내걸고, 성탄절이 되면 사찰이 경내에 트리를 밝히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함께 축하하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민주화 운동이나 환경, 평화와 같은 중대한 사회적 현안이 있을 때마다 종교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의 목소리를 내고, 신자들이 함께 촛불을 들며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는 모습은 일상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유교, 불교, 도교가 공존했던 동아시아의 역사적 유산이 어떻게 한국 현대 사회에 뿌리내렸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종교적 상생은, 동아시아 문명이 가진 '소프트웨어의 유연성'이 빚어낸 살아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는 근대 이후 두 문명의 운명을 갈랐다. 서구는 교황 중심의 중앙집권적 '소프트웨어'가 경직되면서 '암흑시대'를 맞았다. 이후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계몽시대를 거치며 이 단일 소프트웨어의 독점력을 약화시키고, 수많은 국가라는 분권적 '하드웨어'들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근대화를 이끌었다. 서구의 혁신은 '하드웨어'들의 경쟁에서 비롯된 셈이다.
반면, 동아시아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하드웨어' 덕분에 오랜 기간 문명의 안정과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바로 그 경직성 때문에 근대의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고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동아시아는 자신들의 숨겨진 강점, 즉 '소프트웨어'의 유연성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유교 OS'가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일본은 '메이지 국가주의 OS'를,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주의 OS'라는 완전히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과감하게 설치하여 시스템 전체를 재부팅했다. 이는 경직된 단일 소프트웨어에 묶여 있던 서구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가히 혁명적인 '소프트웨어 교체'였다.
문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정체성(안정)과 혁신(변화)이라는 상반된 요소가 모두 필요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두 문명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 균형을 추구해왔다. 서구 문명은 중앙집권적 종교(소프트웨어)가 '정체성'을, 분권적 정치(하드웨어)가 '혁신'을 담당했다. 동아시아 문명은 중앙집권적 정치(하드웨어)가 '정체성'을, 분권적 종교(소프트웨어)가 '혁신'을 담당했다.
서구는 자신들의 '정치적 분권'을 근대성을 이끈 독보적인 자산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동아시아 역시 그에 못지않은 강력한 분권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것이 정치가 아닌 종교와 사상의 영역이지만, 그 유연성과 다양성은 문명의 근간이 되는 이념 자체를 갈아치울 정도의 경이로운 혁신성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 '사상체계의 분권성' 덕분에, 동아시아 문명은 침체를 넘어 다시금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