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혁명이 아니라 유교 혁명이다
동아시아가 겪은 이 거대한 문명적 전환이 만약 기독교나 이슬람 문명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과연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 이념과 종교를 이처럼 통째로 폐기하는 길을 선택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를 보면, 그들은 수많은 외세의 침입과 내적 위기를 겪었지만 그것을 곧 종교의 패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박해와 순교의 이야기는 내부 결속을 다지고 신앙을 더욱 순수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다. 그들에게 믿음의 대상인 신은 지상의 정치 체제와는 분리된 초월적 존재였기에, 세속 국가의 패배가 곧 신의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고통은 신앙을 더욱 깊게 만들었고, 외세의 침략은 교리를 강화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렇다면 유교 문명은 왜 달랐을까? 왜 유독 유교만이 중심 이념을 버리고 전혀 다른 체제를 수용하는 길을 선택했을까? 이는 유교의 강점이자 약점인 '현세 중심성'에서 비롯된다. 유교는 내세의 구원이 아닌, 이 땅 위에 조화롭고 안정된 이상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즉, 정치적 성공과 사회적 안정이 곧 이념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그 시스템이 무력하게 붕괴하자, 이는 단순한 정치의 실패가 아닌 유교 이념 자체의 실패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따라서 이후의 전개는 단순한 굴복이나 수동적 수용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교 문명이 자기 한계를 정직하게 직시하고, '이상 사회 건설'이라는 기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능동적으로 모색한 결과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낡은 유교 체제로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부강하고 안정된 국가를 만들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공산주의라는 가장 강력하고 급진적인 도구를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기존 문명의 완전한 폐기가 아니었다. 문명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자각하고, 중심 이념을 교체하는 일은 인류 역사에서도 지극히 드문 자기 혁신이다. 겉으로는 전통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념을 혁신하면서도 유교 문명 속에 내재된 집단주의적 가치, 강력한 국가 중심주의, 인민을 교화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엘리트주의적 감각을 고스란히 유지했다. 유교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가장 강력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등장했다. 그 옷의 이름이 공산주의였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 사건은 단순한 '공산혁명'이 아니라, 유교 문명이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단행한 '유교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
20세기 최대의 사건은 단연 중국의 공산혁명이다. 수천 년간 인류 최대의 문명을 지탱해 온 유교적 제국이, 불과 수십 년 만에 유교를 철저히 부정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이질적인 이념을 중심에 세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유럽이 예수를 아랍이 마호메트를 부정하고 새로운 이념으로 나라를 다시 세웠다 생각해보라. 그런 일이 실제로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스케일이다. 당시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던 초거대 사회가 황제와 관료 중심의 질서에서 당과 인민위원회 중심의 전혀 다른 권력 구조로 전환되었다. 이는 단순한 체제 교체가 아닌, 문명의 지각 변동이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공산주의가 아니었다면, 중국은 과연 이처럼 철저하게 혁신할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중국이 마주한 문제는 단순히 무능한 왕조나 낡은 법률 몇 개가 아니었다. 수천 년간 뿌리내린 지주 계급, 각 지역을 장악한 군벌 세력,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 그리고 사회 곳곳에 스며든 낡은 관습 등, 온건한 개혁으로는 도저히 제거할 수 없는 거대한 기득권 구조가 사회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공산주의 혁명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가장 과격하고 철저한 해법이었다. 중국의 혁명은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거대한 '사회적 리셋(Social Reset)'을 단행했다. 토지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지주 계급을 물리적으로 제거했고, '사구 타파(破四舊)'와 같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낡은 사상과 문화를 파괴했으며, 모든 인민을 '인민공사'와 '단위(單位)'라는 새로운 집단 속에 편입시켜 기존의 모든 사회적 연결망을 해체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인명 손실과 비극은 분명 뼈아픈 역사이지만, 그 결과 수억의 인구가 좋든 싫든 동일한 출발선에 서게 되었고, 국가는 그 사회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다. 규모로 보나 질로 보나 인류 역사상 유례 없는 거대한 혁명이었다.
오늘날 중국이 보여주는 엄청난 돌파력은 바로 이 혁명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그 이면에는 유교 문명이 수천 년에 걸쳐 축적해온 심층 구조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옷만 공산주의로 갈아입었을 뿐, 인민을 이끌고 도덕을 계몽하며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신념은 유교 문명에서 비롯된 오래된 이념이다. 공산혁명은 단지 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고, 진정한 본질은 유교 문명이 생존을 위해 감행한 자기 재구성 프로젝트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거대한 사건을 ‘공산혁명’이 아니라, ‘유교혁명’이라 불러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