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명의 토대 유교 문명

1장 유교 문명을 마치며

by 김욱

이 책은 한국 문명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왜 유교 문명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만 했을까? 그것은 한국이라는 나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무가 뿌리내리고 있는 거대하고 비옥한 토양, 즉 '유교 문명'을 먼저 탐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문명의 작동 원리와 고유한 특징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안에서 자란 한국 문명의 독특함을 결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1부의 여정은 한국 문명이라는 건축물을 탐험하기에 앞서, 그 건물이 서 있는 지층과 구조를 파악하는 필수적인 작업이었다.


우리가 1부에서 탐험한 유교 문명은 하나의 거대한 역설을 푸는 과정이었다. 서구에서 태어난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어째서 그것을 잉태한 유럽에서는 붕괴하고 유독 동아시아에서만큼은 살아남아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었는가? 우리는 그 답이 단순한 '이념의 공백' 때문이 아니라, 두 이념 사이에 존재했던 깊은 '구조적 호응 관계'에 있음을 확인했다.


그 첫 번째 연결고리는 '집단주의'다. 개인의 완성이 공동체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 유교의 세계관은, 계급 해방과 혁명적 대중을 외치는 공산주의의 집단주의적 이상과 자연스럽게 만났다. 서구에서 공산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문명적 위협으로 다가왔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익숙한 집단주의적 질서를 새로운 방식으로 구현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수용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연결고리는 더욱 본질적이다. 바로 '명분(名分)'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정치적 문법이다. 통치의 정당성을 하늘의 뜻과 백성의 마음에서 찾는 유교의 '민본주의(民本主義)'는, 역사의 필연성과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내세우는 공산주의의 논리 구조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명분을 잃고 표류하던 동아시아에 공산주의는 가장 익숙한 논리로 포장된 가장 강력한 새 명분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모든 전환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동아시아 문명이 가진 가장 독특한 특징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소프트웨어의 분권성'이라는 개념으로 살펴보았다. 황제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정치적 '하드웨어'의 안정성 위에서, 유교, 불교, 도교가 공존하는 유연한 사상적 '소프트웨어' 환경은 동아시아 문명에 놀라운 적응력을 부여했다. 서구 문명이 단일한 '기독교 OS'의 경직성 때문에 사상적 전환에 거대한 진통을 겪었던 반면, 동아시아는 위기의 순간에 '유교 OS'를 폐기하고 '공산주의 OS'라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과감하게 설치하는 문명사적 대전환을 감행할 수 있었다.


결국 20세기에 동아시아가 겪은 거대한 격변은 서구 이념의 단순한 수입이나 전통의 패배가 아니었다. 그것은 유교 문명이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생존과 번영이라는 오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를 혁신한, 가히 '유교혁명'이라 부를 만한 장대한 자기 변혁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가 유교 문명의 흥망성쇠와 그 작동 원리를 이야기한 이유는 명확하다. 유교 문명에 토대를 둔 '우리'의 이야기를 하려면, 우리 사회 시스템의 원형인 유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유교 문명권 내에서도 가장 철저하게 유교적 이상을 구현하고자 했던 나라다. 중국의 성리학을 수입했지만, 원산지보다 더 깊고 치열한 철학적 논쟁을 펼쳤으며, 그 원리를 사회 곳곳에 가장 촘촘하게 적용했다. 따라서 유교 문명의 거대한 흐름과 그 안에 내재된 역동성을 이해하는 것은, 한국 문명의 고유한 DNA를 분석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제 1부에서 확보한 '유교 문명'이라는 지도를 손에 들고, 마침내 '한국'이라는 우리 자신의 땅을 본격적으로 탐험할 시간이다. 2부는 '한국 민주주의'의 탐사가 될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서구의 전통적 경험 없이도 우리는 어떻게 세계가 주목할 만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밑바탕에는 조선이 물려준 정치 유산이 자리하고 있음을. 외부에서 주입된 제도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자생적으로 축적된 질서와 가치가 우리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 동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국 문명 열네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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