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을 마치며
약 1만 2천 년 전,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싹튼 농업혁명은 인류를 한곳에 정착시켰고, 이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라는 위대한 두 문명이 탄생했고, 이들은 후대 인류 문명의 요람이 되었다. 그 후 문명의 횃불은 페니키아의 상인들을 통해 지중해로, 다시 에게해의 미노스와 미케네를 거쳐 그리스의 철학자들에게로, 그리고 로마의 법률가와 공학자들의 손으로 차례차례 옮겨갔다. 로마의 멸망 이후 암흑기에 빠진 유럽에 고대의 지혜를 다시 전해준 것은 이슬람 문명이었으며, 그 지적 유산을 바탕으로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를 연 유럽은 마침내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패권의 중심, 미국으로까지 그 영향력을 확장했다.
이 수천 년에 걸친 서진(西進)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동력은 바로 '바다'였다. 지중해에서 대서양에 이르기까지, 바다는 서구인들에게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도전 정신을 심어주었고,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융합하는 용광로가 되었다. 그들은 바다를 통해 세계와 연결하고 끊임없이 팽창하는 외향적 문명, 즉 ‘해양문명’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 장대한 서사의 반대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자리한 한반도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경로를 그리고 있었다. 거칠고 험난한 바다와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조건은 우리를 외부 세계와의 활발한 교류 대신, 주어진 환경 내에서 깊이를 더해가는 내향적 모델로 이끌었다. 그 필연적인 귀결은 자급자족에 기반한 '농업·정주 문명'으로의 깊은 정착이었다. 이 근본적인 문명의 기반 차이는 사회를 이끄는 주도 세력의 차이로 이어졌다. 서구가 상인 계급인 '부르주아지'를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고 그들의 가치관인 합리성과 실용주의를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면, 한국은 지식과 토지를 독점한 '양반'이 사회를 주도하며 이익(利)보다 의리(義)를 숭상하고 상업을 천시하는, 동아시아 내에서도 가장 비상업적인 문명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정주성과 농업 문명이라는 토양 위에서, 한국 문명은 세상과 타인을 인식하고 상호작용하는 독특한 방식을 발전시켰다. 우리는 이 모든 특성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가 바로 '관계'임을 확인했다. 이동이 적고 평생을 한정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했던 환경은, 모든 것을 언어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고도의 맥락 공유 사회, 즉 ‘고맥락 사회’를 탄생시켰다. 여기서 소통의 핵심은 말의 내용보다 상대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눈치'가 되었고, 대화의 목적은 정보 전달보다 관계의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관계중심성은 사회 곳곳에서 독특한 현상들을 만들어냈다. 식당에서 낯선 주인을 '이모'나 '삼촌'으로 부르며 차가운 거래 관계를 따뜻한 가족 관계로 치환하려는 '관계홀릭' 현상 , 내가 받은 도움을 당사자가 아닌 다음 세대에게 돌려주는 순환적 윤리인 '내리사랑' , 그리고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하나의 정서 공동체를 이루는 판소리의 '추임새'와 K팝의 '떼창' 문화는 모두 관계를 확인하고 강화하려는 한국인의 강렬한 열망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심지어 스타와 팬의 관계마저도, 멀리서 동경하는 서구의 '영웅 서사'가 아닌, 함께 성장하고 교감하는 '관계 서사'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는 세상을 구원하는 초인적 영웅보다, 평범한 인물들 간의 관계 회복과 공감을 중심에 두는 한국 드라마의 서사 구조로까지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토록 강력하고 전방위적으로 작동하는 '관계문명'의 실질적인 주체는 누구였을까? 우리는 그 해답이 '여성'에게 있음을 포착했다. 공식적인 역사와 권력의 장에서는 남성의 목소리만이 높았지만, 가정과 마을이라는 삶의 실질적인 무대에서 관계의 망을 짜고 유지하며 공동체의 안정을 책임졌던 핵심적인 주체는 바로 여성이었다. 그들의 언어였던 '정(情)'과 '한(恨)'은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감정적 자산이 되었고, 춘향과 심청의 이야기처럼 그들의 희생과 인내, 사랑의 서사가 곧 우리 문화의 가장 깊은 원천이 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국 문명을 '여성문명'이라 명명하는, 다소 파격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여성성'을 한 문명의 핵심적인 특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금까지 인류의 문명사가 주로 정복, 전쟁, 경쟁, 합리성과 같은 남성적 가치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온 거대한 흐름에 맞서는 일이다. 어쩌면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질서가 견고한 오늘날의 많은 사회에서 이는 상당히 불편하고 논쟁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문명을 남성적으로만 해석하고 재단해 온 낡은 관성을 끊어내야 할 때가 되었다. 인류 역사의 절반은 분명 여성이었으며, 그들은 남성 못지않게, 아니 때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명의 형성과 유지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다. 그들의 기여를 단지 사적 영역의 보조적인 역할로 치부하거나, 공식 역사의 각주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문명의 전체 모습을 절반만 보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 이제 우리는 그 지워지고 잊혔던 나머지 절반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그들이 축적해 온 지혜와 가치를 문명의 중심부로 소환해야 할 역사적 책무 앞에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문명은 '여성성'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문명 담론에 도입함에 있어 강력한 사례를 제공한다. 서구 문명이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남성적 가치를 보편화하는 과정에서 감성, 돌봄, 상호의존성과 같은 여성적 가치를 비합리적인 것으로 평가절하하고 배제했던 것과는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교 문명은 분명 가부장적 질서를 기반으로 했지만, 여성을 무의미한 타자로 삭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음양사상의 조화와 보완의 원리 속에서 여성성을 우주의 필수적인 한 축으로 인정했으며, 가정을 다스리는 원리를 국가 통치의 근본으로 삼음으로써 돌봄과 공감 같은 여성적 가치가 사회 전체의 중요한 윤리적 기반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이처럼 배제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문명의 근간에 깊이 뿌리내린 여성성은, '정'과 '한'이라는 독보적인 한국적 정서를 낳았고,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풍부한 여성 서사의 전통을 만들어냈으며, 이름 모를 풀 한 포기까지 귀하게 여기는 채집의 지혜를 통해 한식이라는 경이로운 맛의 우주를 창조해냈다. 이 모든 것은 남성성의 원리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한국 문명의 여성성이 이룩한 위대한 성취다.
한국 문명의 여성성을 온전히 밝히고 그 가치를 긍정하는 작업은 단지 우리만의 특수성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서구를 포함한 다른 모든 문명에 내재되어 있었으나 남성 중심의 역사 서술 속에서 억압되고 평가절하되어 온 '여성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논의는 인류의 미래를 향한 선도적인 제안이기도 하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인해 물리적 노동의 가치가 점차 사라지고, 개인의 창의성과 공감, 소통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는 21세기는 여성성의 가치가 재조명될 수밖에 없다. 인류는 이제 투쟁과 경쟁, 정복과 팽창이라는 남성 주도적 문명의 한계를 넘어, 공감과 돌봄, 조화와 지속이라는 여성적 원리가 동등하게 존중받는 통합의 문명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미 가부장제 속에서도 여성성을 배제하지 않고 그 가치를 사회의 중요한 자산으로 승화시켜 본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한국 문명은, 이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기에서 길을 찾는 세계에 깊은 영감과 대안적 지혜를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여성성이 더 이상 변방의 '다른 목소리'가 아닌, 문명의 당당한 '주된 목소리'가 되는 새로운 시대가, 한국문명 속에서 그 희미한 서곡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