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한국 문명의 긴 여정을 달려왔다. 책을 읽으면서 의문을 떨치지 못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또는 새로운 의문이 솟았을 수 있다. 너무 새로운 주장이라 되짚어 보고 싶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 몇가지 얘기로 책을 마무리 지어볼까 한다. 일단 북한이 좀 의문이었을 것 같다. 한국은 성공했는데 북한은 왜 실패했을까? 1945년까지 천년 넘게 같은 문명을 공유했던 남과 북은 왜 극명하게 갈렸을까?
문명의 중심이 남한에 있었기 때문이다. 남한에는 서울이라는 강력한 문명의 수도가 있었고, 삼남지방을 아우르는 탄탄한 유학자들의 네트워크, 즉 재지사족(在地士族)의 인프라가 있었다. 그에 비하면 북한에는 문명적 기반이 빈약했다. 평양이 상업도시로 이름나긴 했지만, 서울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한 도시였다.
물론 공산주의도 변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남한과 같은 문명의 기반이 있었다면, 아무리 공산주의라도 80년에 가까운 기형적인 독재 체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남한에 집중된 문명의 기반은 독재를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탄탄한 지식인 네트워크와 지적 인프라는 독재정권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에너지원이 되었다. 이러한 문명적 기반이 부족했던 북한은 독재에 저항할 동력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20세기 초 평양을 중심으로 개신교가 융성하며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했지만, 그 힘이 뿌리내리기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공산주의가 주요 변수가 아님은 베트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베트남은 우리와 정반대로, 공산주의인 북베트남이 승리했다. 역시 변수는 문명이었다. 한국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점점 영토를 확장해간 것과 반대로 베트남은 북쪽 하노이를 수도로 삼은 왕조들이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해갔다. 북쪽 왕조에게 남부는 '개척지'로 인식되었다. 미국이 막대한 지원을 퍼부었지만, 문명의 저력이 부족했던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을 감당하지 못했다. 한반도와 베트남, 두 사례는 결국 동질적인 두 집단이 대결을 벌였을 때 승부는 이념이 아니라 문명의 저력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에 대한 관점도 납득하기 힘들었을 수 있다. 우리는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익숙하다. 대약진 운동의 비극, 문화대혁명의 광기, 톈안먼 사태의 상처 등 ‘공산당 일당 독재’라는 프레임은 중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동해왔다. 이러한 기준은 중국 문명의 유교적 역동성을 못 보게 하는 착시를 일으켰다. ‘공산주의’라는 렌즈만 고집하다 거대한 ‘혁명’의 실체를 놓친 것이다.
이미 중국은 경제적으로 공산주의와 결별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으며, 그 결과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공산주의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혁명’이다. 15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같은 출발선에 세운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혁명이다. 단숨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선 과학 기술 인프라, 그리고 자동화와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이 거대한 전환은 혁명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거기다 수천 년 노하우를 쌓아온 안정적이고 정교한 관료 시스템이 혁명과 결합했다. 황제 시대 중앙집권적 통치술과 인재를 등용하던 능력주의 전통은 오늘날 중국 공산당의 강력한 정책 집행 능력과 장기적 국가 설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념이 아닌 문명의 측면으로 봤을 때 중국의 부상은 필연이었다.
일본은 쇠퇴도 생각해볼 거리다. 동아시아의 유교 문명권 전체가 역동적으로 부상하는 이 순간, 유독 일본만이 장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경제만 아니라 정치도 활력이 없다. 어째서 일본은 한국이나 중화권처럼 유교 문명의 역동성을 구현해내지 못하는 것일까? 그 근본적인 원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선택한 독자적인 길에서 찾아야 한다. 메이지 유신은 충(忠)과 의(義) 같은 유교적 덕목을 바탕으로 국가에 헌신하는 사무라이들이 주도한, 일종의 ‘유교 혁명’이었다. 하지만 혁명 후 일본은 유교가 아닌 일본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데 더 효과적이었던 신토(神道)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만들어버렸다. 유교가 가진 보편적 윤리 대신, 일본만의 특수한 신화를 선택하며 스스로를 동아시아 문명의 보편성에서 고립시킨 것이다.
그 과정은 매우 급진적이었다. 수백 년간 불교와 자연스럽게 뒤섞여 토착 신앙처럼 존재했던 신토를 ‘순수한’ 일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는 ‘신불분리령(神仏分離令)’을 내려 신사에서 불교적 색채를 강제로 지워버렸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찰과 불상이 파괴되는 ‘폐불훼석(廃仏毀釈)’이라는 폭력적인 양상까지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종교를 분리하는 행정 조치를 넘어,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과거의 정신 세계를 파괴하고 ‘재설계’하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정제된 신토는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기 위한 핵심 이데올로기로 동원되다. 천황의 조상신을 모시는 이세 신궁(伊勢神宮)을 모든 신사의 정점에 두고 전국의 신사를 국가의 통제 아래 피라미드 형태로 서열화했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처럼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군인을 ‘신’으로 떠받들어 죽음을 신성한 희생으로 미화하고,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는 특별한 장치도 마련했다. 국가 신토의 최종 목표는 명확했다. 천황을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하고, 그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국민의 최고 덕목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로써 신사 참배는 개인의 신앙심을 표현하는 종교 활동이 아닌,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할 국가 의례로 규정되었다.
결국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이 유교라는 깊이 있는 사상 체계로 근대 국가의 정신적 토대를 채운 반면, 일본은 그 자리를 국가주의와 결탁한 신토로 채워버린 것이다. 과연 자연 숭배와 조상신 신앙에 뿌리를 둔 토속 신앙 신토가, 1억 2천만 인구를 가진 고도화된 선진국가의 복잡한 정신세계를 담아내고 미래의 비전을 그릴 수 있을까? 물론 일본인들이 신토에서 문화적 자부심이나 정신적 안정감 같은 영감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토가 사회 정의, 분배, 국제 관계, 기술 윤리 등 현대 국가가 마주한 복잡한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철학적 답변을 제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천 년에 걸쳐 동아시아 전체가 함께 벼리고 다듬어 온 고등 사상 체계인 유교에 비한다면, 신토가 줄 수 있는 영감의 질과 깊이는 한참 얕을 수밖에 없다. 유교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통치 윤리에 대한 치열한 논쟁의 역사를 담고 있는 반면, 국가 신토는 비판적 사고보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기 침체는 어쩌면 미래를 향한 철학적 동력을 스스로 포기한 역사적 선택의 귀결일지도 모른다.
한국역사엔 계급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서구의 부르주아와 같은 계급이 성장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것이다. 봉건 귀족을 타파하고 자본주의와 시민혁명을 이끈 부르주아의 부재는 곧 조선 사회의 정체와 낙후성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한국엔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역동적인 ‘양반의 팽창’이 있었다. 우리는 이 거대한 사회적 상승 욕구와 역동성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양반의 성장을 ‘신분제의 문란’이나 ‘질서의 붕괴’라는 부정적인 현상으로만 해석했다. 그 안에 담긴 계급 이동의 에너지를 빼고 보니 조선은 활력 없이 정체된 사회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빈약한 이미지 위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역사를 폄하하고 혐오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은 매우 계급이 매우 유연한 사회였다. 피로 신분이 결정되는 성골, 진골과 같은 폐쇄적인 귀족제는 일찌감치 사라졌고,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과거 급제를 통해 관료가 될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계급의 문이 훨씬 넓어졌고 실제 누구나 다 양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관점이었다. ‘계급 지향’이라는 우리의 관점이 아니라, 서구의 ‘계급 투쟁’이라는 렌즈로 역사를 재단해왔다. 그 결과, 우리는 한국 문명이 가진 특유의 계급 역동성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조선 후기에 몰아친 양반되기 열풍이 만들어낸 우리 안의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현상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던 것이다.
문명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오만하고 무의미한 일이다. 각 문명은 고유의 역사와 환경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를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어도, 인류 전체가 나아갈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오늘날의 문명이 지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 방향을 다음의 세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 종교적 유연성, 둘째, 비폭력성, 셋째, 여성성의 보편화다. 이 세 가지 가치의 수준이 높을수록, 그 문명은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라는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놀랍게도 이 세 가지는 모두 우리 한국 문명이 가장 자신 있는 덕목들이다. 첫째, 우리 문명은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종교적 유연성이 높다. 한 개인의 정신세계 안에 유교적 윤리와 불교적 세계관, 그리고 기독교적 신앙이 큰 갈등 없이 공존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둘째, 한국 문명은 본질적으로 비폭력적이다. 거대한 정치적 격변기였던 두 번의 탄핵 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광장에 모였음에도, 폭력이 아닌 평화적인 공론의 힘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놀라운 성취다.
마지막으로, 우리 문명은 관계와 정(情), 보살핌을 중시하는 깊은 여성성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지금 전 세계인들이 한국의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현상은 어쩌면 단순히 세련된 콘텐츠 소비를 넘어, 그 안에 담긴 이러한 문명적 방향성을 무의식 중에 감지하고 깊이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갈등과 분열에 지친 세계인들이, 한국 문화가 보여주는 공감의 능력과 관계의 깊이, 그리고 역동적이면서도 평화로운 에너지 속에서 인류 문명이 나아가야 할 희망의 단서를 발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