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핵심적 정서 '정'과 '한'은 여성적 감성

여성 문명

by 김욱

한국인의 마음을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두 정서를 꼽으라면 단연 '정(情)'과 '한(恨)'을 들 수 있다. '정'은 단순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오랜 시간과 관계 속에서 켜켜이 쌓이는 복합적인 유대감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성적인 판단이나 계산 이전에 가슴으로 먼저 느끼는 공감과 연대의 감정이며, 개인의 독립성보다는 관계의 연결성을, 분리보다는 연결을 중시하는 특성을 지닌다.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말처럼, 갈등과 애증까지도 끌어안는 이 끈끈한 감정의 그물망은 공동체의 화합과 유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한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었다. 반면 '한'은 억울함, 슬픔, 비통함,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풀리지 못한 채 내면에 응축되어 쌓인 상태를 가리킨다. 이것은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이나 사회적 억압 속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생긴 마음의 응어리이자, 동시에 언젠가는 이 맺힌 것을 풀어내고야 말겠다는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서들은 관계를 맺고 살림을 꾸리며 공동체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던 여성의 삶과 깊이 연결된다. 물론 남성에게도 정과 한이 있지만, 가족과 이웃의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관계의 중심에 서 있었던 여성이야말로 이러한 정서를 더 깊이 체화하고 섬세한 언어와 행동으로 표현했을 가능성이 높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 대표 민요 '아리랑'은 그 대표적인 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노랫말은 표면적으로는 떠나는 이에 대한 서운한 원망과 신랄한 저주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제발 가지 말아 달라'는 애절한 붙잡음과 어떻게든 이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처절한 마음, 즉 '정'과 '한'이 복합적으로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결 때문에, 아리랑의 화자를 자연스럽게 여성으로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처럼 여성적인 감성이 어떻게 한국인의 핵심 정서로 자리 잡게 된 것일까? 역사를 돌아보면 한국은 결코 여성이 주도한 문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성리학적 질서가 사회 전반에 확고히 자리 잡으면서, 여성은 공적인 영역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여성의 활동 반경은 집안이라는 사적인 공간으로 엄격히 한정되었고, 교육의 기회나 사회적 발언권 역시 극도로 제한되었다. 공식적인 역사 기록과 권력의 장에서는 오직 남성의 목소리만이 드높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적인 배제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역할은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작동 원리 속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중요성을 지녔다. 상업, 전쟁, 정복 활동이 활발했던 서구의 여러 문명에서는 남성의 공간과 여성의 공간이 비교적 뚜렷하게 분리되는 경향이 있었던 반면, 한반도에 깊이 뿌리내린 정착형 농경문화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했다. 농업은 한 개인의 힘이 아니라 온 가족과 마을 공동체 전체의 유기적인 협력을 필요로 하는 생업이었다. 남성이 밖에서 밭을 갈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동안, 여성은 집안 살림을 총괄하고, 음식을 만들고 옷을 지으며,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물론, 길쌈과 같은 중요한 생산 활동에 직접 참여했다. 농업 공동체에서 여성의 자리가 비게 되면, 단순히 한 가정의 불편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재생산 구조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좁은 땅에서 대대손손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 환경에서는 개인의 탁월한 능력이나 화려한 성취보다 이웃과의 원만한 관계, 집안의 화목, 그리고 공동체 전체의 안정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다. 이 복잡한 관계의 망을 짜고 유지하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중재하고 완화하는 역할은 상당 부분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은 가정 내에서 시부모를 공경하고 남편과 자식을 돌보며 가족 관계를 조율하는 중심축이었으며, 마을에서는 이웃과 '정'을 나누는 크고 작은 활동들을 통해 공동체의 윤활유 역할을 수행했다. 이처럼 여성은 공식적인 권력의 자리에는 오를 수 없었지만, 공동체의 실질적인 운영과 유지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들의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 타인을 보살피는 돌봄의 기술, 그리고 공동체 내에 조화를 이루어내는 지혜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능력이었다. 따라서 여성들의 삶의 애환, 인고의 세월, 그리고 복잡한 관계 속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이 바로 그 공동체의 역사 그 자체였으며, 그들의 이야기가 곧 우리 문화의 가장 깊은 곳을 흐르는 서사의 원천이 되었다.


이러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서사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춘향전>, <장화홍련전>, <콩쥐팥쥐전>, <심청전>, <바리데기> 등 전통 여성 서사는 공식적인 권력은 없었지만 관계의 중심에서 실질적인 힘을 발휘했던 여성들의 '생활 세계'를 보여주는 증언이다. 이 서사들은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과 실천적 지혜로 자신과 가족, 나아가 공동체를 지탱해 온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대변한다. 결론적으로, 한국 전통 서사에 여성의 목소리가 이토록 풍부하게 담겨 있는 것은 한국이 여성이 지배하는 사회였기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가부장적 억압 속에서도 그들의 역할이 공동체 유지에 너무나 중요하고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성취보다 관계와 공동체의 안정을 중시했던 정주 농업 사회라는 한국 문명의 특수성이, 여성을 공식 역사의 바깥으로 밀어내면서도 동시에 문화의 중심부로 끊임없이 호출했던 것이다. 그들의 언어였던 '정'과 '한', 그리고 그들의 삶 자체가 녹아든 이야기들은 그렇게 한국 문화의 가장 깊은 정체성을 이루는 소중하고 강력한 자산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한국 문명에 내재된 이러한 여성적 특성은 서구의 현대 페미니즘 이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캐럴 길리건(Carol Gilligan)은 기존의 남성 중심적 도덕 발달 이론을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돌봄의 윤리(Ethics of Care)’라는 획기적인 개념을 제시했다. 그녀는 특히 자신의 스승이었던 로렌스 콜버그의 6단계 도덕 발달 이론이 정의, 권리, 공정성과 같은 추상적인 원칙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이 기준에 따르면 여성의 도덕적 사고가 남성에 비해 낮은 단계에 머무는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을 근본적인 문제로 삼았다. 길리건은 이것이 여성의 도덕성이 미숙해서가 아니라, 남성의 경험만을 보편적인 기준으로 삼은 이론의 편향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수많은 인터뷰와 연구를 통해 여성들이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추상적 원칙보다는 구체적인 인간관계, 타인에 대한 보살핌과 책임, 그리고 공감 능력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독자적인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남성적 '정의의 윤리'와는 구별되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 '다른 목소리'이자 하나의 독립된 윤리 체계로 이해하고자 했다. 돌봄의 윤리는 보편적인 규칙이나 원칙의 적용보다, 지금 여기의 구체적인 인간관계와 특수한 맥락 속에서의 공감과 반응을 도덕적 행위의 핵심으로 본다. 이 관점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의존적인 존재다. 따라서 어떤 행위를 평가할 때 그것이 '정의로운가'를 묻기 이전에, '타인의 감정과 필요에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길리건이 서구 철학의 한계 속에서 새롭게 발견한 이 ‘돌봄의 윤리’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유교 윤리와 매우 깊은 유사성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유교는 처음부터 인간을 고립된 원자적 존재가 아닌, 가족과 사회 속에서 맺어진 다양한 관계의 총체로 파악한다. 유교 윤리의 실천 또한 이 구체적인 관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진 감정,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인 ‘효(孝)’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효는 단순히 부모에게 맹목적으로 순종하라는 수직적 명령이 아니라,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에 대한 사랑과 공경, 그리고 감사에서 비롯된 가장 근원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유교는 바로 이 구체적이고 친밀한 관계에서 싹튼 돌봄의 감정을 형제자매, 이웃, 그리고 사회 전체로 점차 확장시켜 나가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의 구조를 가진다. 이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인류애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동심원처럼 바깥으로 넓어지는 매우 구체적이고 관계 지향적인 윤리 체계인 것이다. 맹자가 제시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이러한 유교 윤리의 핵심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길을 가다가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아이를 본다면, 누구나 그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그를 구했을 때 어떤 이익이 있을지를 따지기 이전에 반사적으로 가엾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솟아난다고 말했다. 이는 이성적 판단이나 도덕적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우러나오는 감정적 동요, 즉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맹자는 이러한 공감 능력이 바로 자신의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경험적 이해가 타인에게까지 확장된 결과라고 보았다. 결국 ‘내 아이’를 사랑하는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체득된 돌봄의 감정이, 타인에 대한 윤리적 판단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유교는 "보편적 선행을 하라"는 칸트식의 추상적인 정언명령보다는, “너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을 잘 돌보라”는 매우 실천적이고 관계적인 윤리를 강조한다. 이는 길리건이 주장한 돌봄 윤리의 핵심적인 정서적 기반과 놀라울 정도로 깊이 연결된다. 두 윤리 체계 모두 인간 행동을 설명하고 평가하는 중심축에 관계, 공감, 그리고 정서를 놓는다. 길리건이 남성 중심의 서구 사회에서 힘겹게 발굴해 ‘다른 목소리(a different voice)’라고 이름 붙인 이 돌봄의 윤리는, 사실 유교 문명권에서는 수천 년간 윤리의 ‘주된 목소리(a main voice)’ 중 하나로 기능해왔던 셈이다.


서구 문명은 왜 이 ‘돌봄의 윤리’를 배제하는 길을 걸었을까?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서구 문명은 신과 전통의 권위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앞세운 새로운 보편 질서를 수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운 ‘보편적 인간’의 모델 아래에는 매우 특수하고 편향된 인간상이 전제되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타인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경쟁하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철한 이성을 지닌 존재, 다시 말해 서구 사회의 이상적인 ‘남성성’을 그대로 옮겨놓은 윤리적 모델이었다.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론은 이러한 인간관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자연 상태에서 원자처럼 고립된 개인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계약을 맺고 국가를 형성한다는 전제는, 인간을 철저히 관계의 맥락으로부터 추출해낸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구호는 관계 맺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경험보다는, 경쟁하고 투쟁하는 남성 중심적 경험을 인류 보편의 상태로 일반화한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감정, 돌봄, 상호의존성과 같이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고 간주되어 온 특성들은 비합리적이고 미성숙한 것,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여겨지며 애초에 논의의 장에서 배제되었다. 이성은 남성성과 동일시되었고, 여성은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존재로 타자화되어 교육과 정치, 경제 등 공적인 영역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당했다. 이 과정에서 경쟁, 이성, 독립성과 같이 '남성성'으로 분류되는 가치들이 사회 전체의 보편적 원리로 격상되었고, 공감, 돌봄, 관계성과 같은 '여성성'의 가치는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사적인 영역의 미미한 것으로 치부되며 부정당했다. 중세 시대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은 이러한 여성성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와 공포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비극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남성적 원리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유일한 법칙이 되었고, 교육, 정치, 경제 모든 영역에서 이성적이고 경쟁적이며 감정을 배제하는 태도가 '보편적이고 우월한' 인간의 기본값으로 설정되었다. 심지어 평등한 권리를 원했던 여성들조차 이 남성적 법칙의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규칙을 따라야만 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반면, 동아시아 유교문명권의 성별 보편화 과정은 서구와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렸다. 유교의 핵심 윤리 강령인 오륜(五倫)은 군신, 부자, 부부, 장유, 붕우 간의 다섯 가지 관계를 제시하는데, 이는 추상적인 개인이 아니라 ‘관계 속의 인간’을 윤리의 출발점으로 상정함을 명확히 보여준다. 인간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가 처한 관계의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과 책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 관계적 질서 속에서 여성은 서구처럼 의미 없는 타자로 삭제되지 않았다. 물론 유교가 가부장적인 위계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적인 위치에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종속이 무의미한 배제나 타자화가 아니라, 우주적 질서 안에서의 ‘의미 있는 배치’로 이해되었다는 점이다. 여성은 가정을 유지하고 대를 잇는 출산과 양육의 핵심적 존재로 인정받았고,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인 ‘모성’은 자식의 효(孝)와 신하의 충(忠)을 연결하는 정서적 중심축으로 기능했다. 이는 단순히 ‘여성도 중요했다’는 수사적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교 윤리 그 자체가 정, 보살핌, 인내, 배려와 같은 여성적 감수성을 그 체계 안에 깊이 내면화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국가 체제는 가정과 국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유비(analogy)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었다. 가정을 다스리는 원리가 곧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로 확장되었으며(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어버이에 대한 효는 곧 임금에 대한 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가정의 안정과 조화를 책임지는 여성의 역할과 그 안에서 발현되는 여성적 가치들은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체의 도덕적 기반을 형성하는 공적인 가치로 승화될 수 있었다. 즉, 서구 문명이 남성성만을 보편화하고 여성성을 배제한 반면, 유교 문명은 여성성을 타자화하지 않고 가부장적 질서 안에 포섭하여 그 나름의 방식으로 보편화하는 길을 걸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동아시아 유교문명에는 여성성의 근원적 배제를 철학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강력한 장치가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우주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하는 ‘음양(陰陽) 사상’이다. 음양 사상의 핵심은 '대립'과 '투쟁'이 아니라 '조화'와 '보완'에 있다. 양(陽)이 하늘, 남성, 빛, 활동성, 시작을 상징한다면, 음(陰)은 땅, 여성, 어둠, 수용성, 완성을 상징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둘 중 어느 하나가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며, 어느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우주 만물은 이 두 기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역동적인 균형을 통해 생성되고 소멸하며 변화를 거듭한다.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여성성(음)'은 '남성성(양)'의 단순한 반대 개념이나 열등한 속성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잉태하고 모든 것을 길러내는 대지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품어주는 물처럼, 우주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한 축으로 당당히 인정받는다. 따라서 유일신인 남성 신이 단독으로 세계를 창조하는 서구의 일부 창조 신화와는 달리, 동아시아의 사상적 토양 위에서는 여성성의 원리가 원천적으로 배제되거나 삭제되기는 어려웠다. 심지어 노장사상으로 대표되는 도교에서는 강하고 뻣뻣한 양의 속성보다 오히려 부드럽고 자신을 낮추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음'의 덕을 더 높은 가치로 평가하기도 했다. 물론 한국의 역사 속에서 음양사상이 위계적으로 변질되어 악용된 사례가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는 자연의 이치를 인간 사회에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남편은 아내의 하늘'이라는 식의 가부장적 윤리로 이어지기도 했다. 양(남성)은 존귀하고 바깥일을 주관하며, 음(여성)은 비천하고 안의 일을 주관해야 한다는 이분법적 논리로 여성의 활동 영역을 가정 안으로 제한하고 사회적 종속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여성성은 억압되었을지언정, 그 존재 가치 자체가 부정되거나 제거되지는 않았다. 그에 비해 이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 문화와 자연, 남성과 여성 등 세계를 날카로운 이분법으로 구분하고 전자에 우월한 가치를 부여한 서구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육체를 정신에 비해 낮은 가치로 보았던 것처럼 여성을 남성에 비해 본질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며 그 배제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했다.


이처럼 배제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한국의 여성성은 문명 곳곳에서 활발하게 자신의 존재를 발현시켰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한국 문명이 가진 독창성과 저력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서구 문명이 공적 영역의 '남성성'(합리성, 경쟁)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적 영역의 '여성성'(감성, 돌봄)을 평가절하하고 분리시킨 반면, 한국은 여성성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삶의 중심으로 수용하여 그 안에서 발견되고 축적된 지식과 사유, 그리고 감성을 사회 전체의 중요한 '문화적 성취'로 발전시키는 길을 걸어왔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한국 문명의 핵심 정서 '정'과 '한'이 그 대표적인 증거다. 오랜 시간 함께하며 쌓이는 복합적인 감정, 미운 정 고운 정을 모두 끌어안는 관계의 끈끈함인 '정'은, 모든 것을 품고 길러내는 돌봄의 여성적 원리와 깊이 맞닿아 있다. '한'은 '정'보다 더욱 여성적인 언어라 할 수 있다. 억눌린 감정의 응어리이자 그 승화의 의지를 담고 있는 '한'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여성의 삶과의 깊은 연관성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한다. 만약 한 사회가 여성성을 근본적으로 억압하거나 무시했다면, 이러한 여성적 정서가 결코 문명을 대표하는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문명 속에서 보편화된 '정'과 '한'의 정서적 토대는,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낼 수 있는 비옥한 문화적 자양분이 되었다.


이 풍부한 여성 서사의 전통은 현대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세계를 매료시킨 한류 콘텐츠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 드라마의 흥행을 이끄는 스타 작가들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김은숙, 박지은, 김은희와 같은 작가들은 인물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미묘한 감정선, 즉 '정'으로 묶인 관계의 변화를 섬세하고 밀도 높게 그려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또한 사회적 편견이나 거대한 시련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깊은 '한'과, 그것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며 전 세계 시청자들의 깊은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낸다. 이는 영웅 중심의 액션이나 권력 투쟁 서사가 주를 이루는 헐리우드 콘텐츠와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K-콘텐츠의 성공을 분석한 CJ ENM 아메리카의 전 CEO 앤절라 킬로렌은 “한류가 전 세계에 통한 것은 ‘여성의 시선’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기 때문”이라고 정확히 지적한 바 있다. 기존 할리우드 콘텐츠가 남성적 시각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이나 기능적 역할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K-콘텐츠는 여성의 입장에서 관계의 깊이, 로맨스의 과정, 감정의 교류를 섬세하게 묘사하며 전 세계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결국 '정'과 '한'이라는 여성적 정서의 보편화는 한국에 풍부한 여성 서사의 전통을 낳았고, 이는 현대의 여성 창작자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단단한 토대가 되어 주었다.


한국 여성성의 위대한 성취는 우리의 밥상, 즉 한식(韓食)의 세계에서도 경이롭게 펼쳐진다. 한식의 다양성은 그야말로 세계적이다. 한국인은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수백 종류의 야생 식물을 ‘나물’이라는 이름으로 식탁에 올리며, 데치고 무치고 볶고 말리는 다채로운 조리법을 통해 서구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채소 요리의 신세계를 펼쳐왔다. 생선, 조개, 낙지와 같은 해산물은 물론, 김, 미역, 다시마와 같은 해조류를 일상적인 밥상의 주역으로 삼는 문화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 여기에 된장, 간장, 고추장, 젓갈 등 시간과 정성이 빚어내는 발효의 과학이 더해져, 한식은 그야말로 무한에 가까운 맛의 변주를 창조해낸다. 이 놀라운 다양성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저 한반도에 풍부한 식재료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한식의 위대한 성취는, 정량화된 기술 중심의 남성 ‘셰프(Chef)’가 아닌, 관계 중심의 여성적 지혜인 ‘손맛’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긴 독특한 문화가 낳은 결과물이다. 서양 요리의 역사는 중세 궁정의 남성 요리사에서 출발해 프랑스 혁명 이후 레스토랑의 전문 ‘셰프’ 문화로 정착했다. 이성, 기술, 표준화를 중시하는 이 전문성의 세계에서, 여성의 감각적이고 비공식적인 요리 방식은 ‘집밥(Home Cooking)’으로 분류되며 전문 요리의 영역에서 배제되었다. 이러한 남성 중심의 전문 요리 문화는 동아시아의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강력한 화력과 무거운 웍(wok)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남성 요리사가, 일본은 칼 한 자루를 들고 오랜 도제식 수련을 거친 남성 장인(이타마에)이 고급 요리의 세계를 주도해왔다. 그러나 한국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한국 음식 문화의 심장부는 화려한 레스토랑이 아닌, 전국의 수많은 가정의 부엌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어머니’가 있었고, 한 가문의 음식 전통과 중요한 제례를 계승하는 ‘종갓집 며느리’가 있었다. 심지어 한 나라 음식 문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궁중 요리마저도 ‘대장금’으로 대표되는 ‘찬모(饌母)’라 불리는 여성 전문가들이 주도했다. 이러한 여성 주도의 음식 문화는 식재료를 발견하고 활용하는 방식에까지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식량 획득 방식이 사냥이나 대규모 농경과 같이 크고 가시적인 목표에 집중했다면, 여성의 영역은 그 주변의 것들을 섬세하게 살피고 거두어들이는 ‘채집’의 지혜와 관련이 깊다. 여성들은 자신의 생활 반경인 산과 들, 갯벌에서 ‘이름 모를 풀 한 포기’와 작은 해조류의 가치를 발견하고, 끈질긴 시도와 경험을 통해 그것들의 독성을 제거하고 고유의 맛을 끌어내는 지혜를 축적했다. 만약 한국의 요리 문화가 남성 중심으로 흘러갔다면, 크고 눈에 띄는 식재료에 밀려 이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은 가치 없는 것으로 무시당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성의 섬세한 발견과 창의적인 시도들이 ‘종갓집 며느리’의 권위와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지혜의 형태로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대를 이어 전승될 수 있었다. 결국 한식의 경이로운 다양성은, 각 지역과 가정의 부엌이라는 수많은 ‘연구소’에서, 여성이라는 수많은 ‘연구원’들의 주도 하에 일어난 무수한 혁신의 총합인 셈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손맛’은 단순히 손의 감각을 넘어,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정성과 마음, 즉 돌봄의 시간이 응축된 실천적 지혜를 의미한다. 한국 문화는 이 계량화할 수 없는 여성성의 가치를 의심하지 않고 신뢰했으며, 그 결과 마치 수많은 들꽃이 제멋대로 피어나 장관을 이루는 너른 들판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자유로우며 다채로운 맛의 우주를 창조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점심 메뉴 앞에서 겪는 ‘즐거운 선택장애’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K-푸드의 저력은, 바로 이 여성의 손맛을 존중하고 그들의 혁신을 귀하게 여겨온 위대한 문화적 유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여성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물학적 여성이 가진 본질적인 특성이 아니다. 오히려 인류의 기나긴 역사적 경험 속에서, 주로 여성이 맡아온 사회적 역할을 통해 체화되고 발전되어 온 삶의 원리이자 세상을 대하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는 개별적 주체의 투쟁과 정복보다는 상호 연결된 관계망의 조화를 중시하고, 냉철한 논리적 분석보다 따뜻한 공감적 소통을 우선하며, 외부 세계로의 무한한 확장보다 내적 공동체의 안정과 다음 세대로의 생명 지속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본질적으로 포용하고 길러내고 이어주는 힘이다. 따라서 여성성은 결코 수동성이나 나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첨예한 갈등을 중재하고, 쉽게 와해될 수 있는 공동체를 보이지 않는 힘으로 붙잡아주며, 다음 세대를 키워냄으로써 인류의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도록 만들어 온 가장 끈질기고 강력한 '생명의 힘'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이러한 여성성의 원리가 문명의 근간에 깊이 뿌리내린, 여성성이 강한 문명이다. 만약 한국이 여성성이 약한 문명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공동체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문화적 다양성과 매력 또한 훨씬 덜했을 것이다. 이제 세계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21세기는 여성들이 인구의 절반에 걸맞은 동등한 권력과 발언권을 차지하게 될 시대이며, 이는 문명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문명의 외곽을 맴돌던 여성성의 가치는 이제 중심부로 소환되어 남성성의 가치와 동등한 위치에서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은, 어쩌면 수천 년간 한국 문명이 소중하게 보존하고 발전시켜 온 이 여성성이,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마침내 그 진정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는 이제 남성 주도적 문명의 한계를 넘어, 남성성과 여성성이 함께 보편화되는 통합의 문명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미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성을 배제하지 않고 그 가치를 보편화시켜 본 역사적 경험을 가진 한국 문명은, 이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기에서 길을 찾는 세계에 깊은 영감과 대안적 지혜를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문명 스물여섯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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