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댄싱머신, 정종의 '생존 댄스'

"임금 체면에 무슨 짓이냐고요? 일단 살고 봅시다!"

by 김욱

정종은 허수아비 왕이고 실권자는 동생 이방원이었다. 정종은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의 서슬 퍼런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위에서 버텨야 했다.


이 숨 막히는 압박감 속에서 정종이 꺼내 든 생존 카드는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정종이 택한 처신은 바로 ‘춤’이었다! 동생 이방원이 ‘왕세자’라는 이름으로 실권을 완벽히 장악한 뒤, 실록에 기록된 ‘정종의 댄스 파티’ 기록들이다.


3월 4일 이방원이 세자가 되고 한 달쯤 뒤 세자(이방원)와 여러 신하들과 함께 연향을 가졌다. 취기가 오르자 세자가 춤을 추었고 정종이 같이 추었다. 다음날 내관이 임금이 신하와 세자 앞에서 춤을 추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한소리를 하자 정종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취하여서 한 일을 알지 못하겠다.“


3월 19일엔 신도(한양)에서 잔치를 가졌다. 이 날도 정종은 예의를 버리고 세자 앞에서 춤을 추었다. 그러자 세자가 술에 취해 더 무례하게 굴었다. 감히 임금의 허리를 잡은 것이다. 그러자 정종이 아무렇지도 않은듯 이렇게 받으며 말했다. "이것이 너의 진정(眞情)이로구나!“


4월 1일 세자가 궁에 들어와서 또 연향을 베풀었다. 이 날도 정종은 세자와 신하 앞에서 춤을 추었다. 세자는 아예 술에 취해 임금 앞에서 쓰러져버렸다. 실록에 기록된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세자가 취하여 쓰러지니, 임금이 친히 사람을 시켜 부축하여 일으켜, 세자가 돌아갔다."


실권자인 이방원과의 불편함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석달 뒤부터는 태상왕인 태조를 찾아가서 춤으로 처신한다.


정종의 '댄스 외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석 달 뒤부터는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를 찾아가 효자 코스프레를 하며 춤으 춘다. 아마 아버지와 동생을 모아놓고 가족애를 부각시키며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어필을 한 것 같다.


7월 2일 기록은 이렇다. "임금과 세자와 제공(諸公)이 일어나 춤추어 지극히 즐기다가 저물어서 파하였다. " 그리고 8월 21일 세자와 함께 또 태상왕을 만난다. 이 날은 정종만 춤 춘 기록이 있다. "임금이 일어나 춤추고, 밤이 깊어서 파하였다.“


정종의 춤 처신이 통했던 거 같다. 11월 11일 정종은 무사히 임금을 물려주고 퇴임 후 20년 편안한 여생을 누리다 간다.


그리고 이러한 실록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 2가지. 첫째 부모나 높은 사람 앞에서 춤을 추며 재롱을 떠는 건 한민족의 전통이다. 둘째 오늘날에는 노래방에서 그 처신을 이어가고 있다.


다야점에서 사냥하고 도평의사사에서 막차에 나아가 연향을 베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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