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나 파시즘이 한국에서 나타나기 어려운 이유
서구 문명의 정신적 토대를 이루는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진리'의 최종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저 너머에 계신 초월적인 신이라는 생각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기에, 신이 가진 완벽한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증명할 수 없다고 보았다.
신의 뜻은 ‘계시’를 통해 세상에 전해진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누군가 자신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신의 뜻인지 아니면 인간적 해석이나 욕망이 섞인 것인지를 다른 사람들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진리의 최종 판관이 인간 세계 바깥에 있는 이 구조 속에서, 지상의 어떤 이념이나 체제도 절대적 권위를 내세울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주장은 결국 ‘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신앙 위에서만 서 있을 수 있었다.
이러한 세계관은 인간 사회에서 진리의 독점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특정한 사상이나 체제가 절대성을 주장하기 어려워지면서, 다양한 해석과 주장이 공존하고 경쟁할 수 있는 ‘이념의 시장’이 열렸다. 훗날 종교적 관용과 사상의 자유가 싹틀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처럼 누구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는 구조 덕분이었다.
반면 동아시아의 유교 문명권은 진리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다. 진리는 인간 사회의 올바른 정치와 윤리 질서 속에서 구현되어야 할 ‘도(道)’라고 생각했다. 정치의 목적은 추상적인 구원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도덕적 조화를 바로 세우는 것이었다. 따라서 진리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안정과 백성의 안녕이라는 현실 속에서 그 가치를 ‘검증’받는 대상이었다.
이러한 ‘내재적 진리관’은 강력한 구심점을 지닌 중(中)의 거대한 주류(Mainstream) 정치를 형성했다. 이 주류에서 벗어나는 극단적 사상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의 조화를 파괴하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배격되었다. 사회적 ‘조화(和)’와 ‘중(中)’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문화 속에서 투쟁과 갈등을 내세우는 파시즘적 논리는 뿌리내릴 공간 자체가 없었고, 이는 극단주의에 대한 강력한 문화적 면역체계로 작동했다.
또한 진리의 ‘현실 검증’ 원칙은 20세기 동아시아에 역동성을 만들었다. 진리가 현실에서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은, 역으로 현실에서 무능함이 증명된 이념은 가차 없이 폐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서구에서는 신앙이 현실의 실패와 무관하게 유지될 수 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현실을 구하지 못하는 ‘도’는 더 이상 진리로 인정되지 않았다.
20세기 초, 서구 제국주의의 충격 앞에 유교적 질서가 무력함을 드러내자 동아시아엔 거대한 사상적 공백이 발생했다. 중국이 공산주의를 전면적으로 채택하고, 한국이 폭발적인 속도로 기독교를 흡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기존 이념이 현실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고 판단될 때, 사회 전체가 새로운 대안을 찾아 급진적으로 전환하는 동아시아적 실용주의의 발현이었다.
서구의 다원주의는 사상적 다양성을 낳았지만 극단주의에 취약한 구조적 위험을 안고 있다. 반면 동아시아의 주류 중심적 질서는 안정성을 기반으로 극단주의를 걸러내는 힘을 가졌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관찰되는 일부 극우 현상 역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독교 문화와 깊이 연관되는 등 서구 문명의 영향 아래 나타나는 파생적 흐름에 가깝다. 이는 우리 문명의 깊은 구조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기에, 그 한계가 명확하며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주류 이념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