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디자인에 감탄한 트럼프

트럼프가 이재명 대통령 방명록을 아름답다 한 이유

by 김욱

2025년 8월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백악관을 찾은 이재명 대통령이 방명록에 서명하는 모습을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았다. 서명이 끝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의 글씨를 보고 “아름다운 글씨”라고 감탄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자유분방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은 필체는 힘 있고 세련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놀란 것은 단순히 이재명 대통령 개인의 필체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영어의 차이가 뭐냐며 한글에 대해 궁금증을 보인 것만 봐도 그렇다. 알파벳과는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진 한글의 조형미가 그의 눈에 직관적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이 하나의 사각형 공간 안에서 상하좌우로 조립되는 모듈(Module)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 '가'처럼 단순한 글자든 '읊'처럼 복잡한 글자든 모든 글자는 약속된 네모틀 안에서 완성된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글자들이 모여 문장을 이룰 때, 마치 잘 쌓은 벽돌처럼 가지런하고 안정적인 질서를 만들어낸다. 글자의 폭이 제각각인 알파벳('i'와 'w'처럼)은 디자이너가 자간과 행간을 세심하게 조절해야 정돈된 느낌을 주지만, 한글은 글자 자체가 이미 완결된 그리드(Grid)이므로 별도의 조정 없이도 자연스럽게 질서정연한 모습을 갖춘다. 이는 복잡한 획으로 이루어진 한자와도 비교된다. 한자도 조형미가 뛰어나지만, 획수가 많아 균형 잡힌 필기를 유지하기 어렵다. 반면 한글은 단순한 획을 모듈식으로 조립하기에, 즉석에서 빠르게 쓰더라도 글자의 기본 구조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안정감을 유지한다.


한글의 두 번째 아름다움은 글자 내부에 존재하는 '여백'이다. 자음과 모음이 횡으로 이어지는 알파벳에는 여백이 없다. 알파벳의 여백은 단어 사이를 구분하는 기능적 역할에 그친다. 그러나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조립되어 이루어져 글자 안에 자연스러운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는 사각 틀을 가득 채워 밀도 높은 인상을 주는 한자와도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 내부 여백은 여러 심미적 역할을 한다. 먼저 시각적 무게감을 덜어내고 채워진 공간(획)과 비워진 공간의 균형을 맞춰 안정감을 준다. 또한 '강', '물', '숲'처럼 글자마다 다른 형태의 여백이 모여 문장 전체에 시각적인 리듬과 생동감을 부여한다. 디자이너들은 이 여백을 활용해 자음이나 모음의 크기, 굵기,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하며 무수한 디자인 변주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한글의 여백은 단순한 빈 곳이 아니라, 글자에 '숨 쉴 공간'과 '여유'를 부여하는 핵심적인 디자인 요소다.


마지막 아름다움은 글자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정돈된 흐름과 리듬감이다. 모든 글자가 비슷한 크기의 사각 공간을 차지하며 나아가기 때문에, 한글로 쓰인 문장은 시각적으로 편안하고 연속적인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는 마치 잘 깔린 타일 바닥을 보는 듯한 일관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러한 구조는 외국인의 눈에 특히 인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모든 글자가 네모라는 일정한 틀을 공유해 규칙성을 가지면서도, 그 안을 채우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에 따라 내부 구조와 여백은 끊임없이 변주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질서와 생동감이 공존하기에, 서양인의 관점에서 한글 필기체는 마치 '잘 디자인된 폰트'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한글은 명확한 그리드 시스템 안에서 단순한 모듈(자음과 모음)이 질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조립되기에, 즉석에서 쓴 손글씨조차 미적 안정감을 유지하는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자 체계다. 트럼프 대통령이 본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잘 쓴 글씨를 넘어, 한글이 가진 이러한 위대한 디자인 시스템이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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