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살이를 바꾸려한 조선 정부
조선왕조실록 태종 15년(1415년) 1월 15일 기사는 친족의 장례 휴가 규정을 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언뜻 사소한 행정 변경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고려의 풍습을 지우고 조선의 새로운 사회 질서를 세우려는 의도적인 '문화 개혁'의 흔적이 담겨 있다.
고려 시대에는 남자가 아내의 집으로 장가가 자녀를 낳고 키우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 즉 처가살이가 일반적이었다. 이 때문에 자연히 외가와 처가의 영향력이 강했고, 이는 제도로도 반영되어 외할아버지나 장인이 사망했을 때 주어지는 휴가가 똑같이 30일에 달했다.
하지만 조선의 예조는 이러한 휴가 규정이 '관계의 가깝고 먼 정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풍습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이 건의에 따라 외조부모 상(喪)은 20일, 처부모 상은 15일로 휴가가 줄어들었고, 태종은 이를 승인했다. 국가가 법률을 통해 성리학적 가부장제를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쉽지 않았다. 기사 마지막에 신랑이 신부를 자기 집으로 데려오는 '친영(親迎)' 제도는 시행되지 못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부계 중심 사회로 전환하려는 지배층의 시도가 오랜 관습의 벽 앞에서 쉽게 통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친영이 처가살이 풍습을 대체한 것은 조선 중기 이후였다. 이처럼 제도의 변화가 사람들의 삶을 바꾸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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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15년 1월 15일 기사
예조에서 복제(服制)의 식(式)을 올렸다. 계문(啓聞)은 이러하였다.
"전조의 구속(舊俗)에는 혼인(婚姻)하던 예법이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장가들어 아들과 손자를 낳아서 외가(外家)에서 자라게 하기 때문에 외가 친척의 은혜가 중함으로 해서 외조부모와 처부모의 복(服)을 당하면 모두 30일을 급가(給暇)하였습니다. 본조(本朝)에 이르러서 아직도 그대로 옛 풍속을 따르므로 친소(親疏)에 차등이 없음은 실로 미편(未便)하니, 빌건대, 이제부터는 외조부모의 대공(大功)005) 에는 말미를 20일 주고, 처부모의 소공(小功)006) 에는 15일 주도록 하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 앞서 예조에 명하여 친영(親迎)하는 예법을 의논하게 하니, 예조에서 상정(詳定)하여 아뢰었으나, 일은 결국 시행되지 않았다.
예조의 건의로 친족의 상사에 휴가를 주는 규정을 개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