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공녀를 요구한 명나라
1408년(태종 8년) 4월, 명나라 사신이 은과 비단을 들고 조선을 찾아왔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외교 사절이었지만, 공식 문서(칙서)에는 없는 황제의 구두 명령을 비밀리에 전했다. "조선에 가서 잘 생긴 여자가 있거든 몇 명 뽑아 데려오너라."
황제의 이 한마디에 조선 조정은 즉시 움직였다. '진헌색'이라는 임시 관청까지 만들어 어린 소녀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어떻게든 딸을 공녀로 보내지 않기 위해 서둘러 몰래 혼인시켰다. 그러자 조정은 이를 막기 위해 나라 전체에 '금혼령'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귀한 딸을 먼 이국땅으로 보낼 수 없었던 부모의 마음은 나라의 법보다 강했다. 신분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금혼령을 어기면서까지 딸의 혼사를 강행했다. 심지어 나라의 녹을 먹는 고위 관료들조차 금혼령을 어겼고 이들은 자식을 지키려 한 죄로 감옥에 갇히거나 귀양길에 올라야 했다.
그렇게 7개월이 흐른 11월, 마침내 다섯 명의 여인이 뽑혔고 명나라 사신은 이들을 데리고 조선을 떠났다. 이때 태종이 명나라 황제에게 보낸 공식 문서에는, 그녀들의 신상이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권집중(공조전서)의 딸, 18세 (안동 권씨)
임첨년(인녕부 좌사윤)의 딸, 17세 (회덕 임씨)
이문명(공안부 판관)의 딸, 17세 (인천 이씨)
여귀진(중령호군)의 딸, 16세 (곡성 여씨)
최득비(중군 부사정)의 딸, 14세 (수원 최씨)
이들이 떠나는 날, 그 부모와 친척들의 울음소리가 길에 가득했다. 길창군 권근은 이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슬픔을 표현했다.
깊고 깊은 궁궐에서 아리따운 여인 생각나
만리 밖 먼 곳에서 미인을 뽑아가는구나
떠나는 수레는 아득히 멀어져 가고
고향 산천은 점점 아득해지네
부모님께 하직 인사 올리니 말이 나오지 않고
흐르는 눈물 닦아도 하염없이 떨어지네
슬프게 서로를 떠나보내는 이곳
수많은 산들이 꿈속에 들어와 푸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