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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로사 Dec 10. 2023

갈 길이 먼 미니멀 여행자

      내 여행은 비우는 여행일까? 아니면 채우는 여행일까?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내가 살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지? 몸과 마음이 가벼운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여행하면서 하나씩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나의 여행은 늘 가족 혹은 친구와 함께였다. 그런 내가 용기를 내서 혼자 떠나기로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혼자 괜찮겠어?”, “무슨 재미로 혼자 여행을 가니?” 한 마디씩 한다. 대부분 걱정을 한다. 간혹 “대단하다.”, “부럽다, 잘 다녀와!” 응원을 해 주는 이도 있다. 나 역시 걱정 반 기대 반이다. 2023년 이루고 싶은 목표 중 열 번째 목록에 썼던 “나 홀로 태국 여행”을 설레는 마음으로 이렇게 시작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항공권 예약을 하면서 나의 마음은 벌써 여행지로 날아가 있다. 숙소는 예산 범위 안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예약한다. 여행에 필요한 용돈을 모으기 위해 통장을 개설한다. 이왕이면 의지가 불타오르게 통장에 이름을 만들어 준다. ‘백모여 통장’ (백만 원 모아 여행 가자!). 정리하면서 나에게는 불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은 쓸 수 있는 것을 당근마켓에 올려 판매하고 돈을 모았다. 정리를 통해 물건은 비우고, 통장의 잔고는 채워졌다. 그리고 결심한다. ‘이번 여행은 짐을 늘리지 않는 여행을 하겠다고…….’ 나는 이번 여행의 목표를 ‘짐을 늘리지 않는 것’으로 잡고, 그 목표에 집중할 생각이다.


ISFJ 형 인간인 나는 완벽하게 계획한 여행을 좋아한다. 어느 식당에서 무엇을 먹을지도 계획하던 나였다. 혼자 여행하니 큰 계획 없이 그냥 여행을 맘껏 즐겨본다. 스스로 질문하면서 답을 찾는 느린 여행을 했다. 자칫 완벽할 뻔한 여행이었는데 아뿔싸! 가장 중요한 목표를 놓치고 있었다. 나는 여행에서 짐을 늘리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그랬던 내가 ‘오페라의 유령’ 첫 장면에 나오는 원숭이 인형과 너무 닮아 눈을 뗄 수 없는 테라코타 원숭이 보석 보관함과 태국 전통 스타일의 그릇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다. 여행 전에 내가 많이 미니멀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치앙마이에서는 물욕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아직도 골목길 골동품 가게에서 본 물고기 모양의 손잡이가 눈에 아른거린다. 미니멀리스트로서 갈 길이 한참 멀다.  

   

집으로 돌아오는 짐을 싸는데 어디서 그 많은 물건이 생겨났는지 놀라웠다. 다람쥐가 겨울 식량을 매일 조금씩 모으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가방 속에 지인들에게 줄 도토리를 모았다. 터질 것 같은 내 가방! 이번 여행은 망했다. 우아하게 캐리어 하나만 들고 공항을 나오고 싶었다. 여행 마지막 날, 현실 속 나는 보따리 장사꾼처럼 바리바리 짐을 싸고 있다. 한심하다.  내 의지가 이렇게 나약했구나! 갈 길이 먼 미니멀 여행자는 생각한다.     

여행에서 불필요한 짐을 줄이는 방법으로 뭐가 있을까? 여행을 다녀와서야 생각해 본다. 여행 전에 선물을 주고 싶은 지인이 있는지, 왜 주고 싶은지 써 본다. 정말 필요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 내가 좋다고 선물을 주는 것은 상대방에게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선물을 고를 때 주로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간식거리로 준비한다. 여행 후 친구와 만나서 즐거웠던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간식도 나눠 먹는다. 여행지에서 사 온 특별한 간식을 먹으며 그 친구와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맨몸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많은 것을 얻고, 소유하고, 경험하고 죽는다.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하늘나라로 소풍을 떠날 수도 있다. 사람이 죽으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신념과 사용한 물건들만 이 세상에 남아있을 것이다. 내가 평소에 했던 좋은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기억한다면 정말 기쁜 일이다. 문제는 내가 남긴 물건일 텐데, 남은 이들에게 처치 곤란한 짐이 되지 않게 지금부터 정리해야겠다. 


인생 여행 마무리를 잘하기 위해 조금씩 정리 정돈을 해야 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멋진 말이 생각난다. 내가 머문 이곳에서 나를 아름답게 기억해 줄 수 있게 몸과 마음을 비워야 하지 않을까?

다음 여행은 지금보다 더 가벼운 여행이 되기를 꿈꾼다.      

    



■ 미니멀 한 여행 짐 꾸리기 리스트     

□  

-미리 입을 옷을 세팅해서 준비한다. 패션쇼가 아니니 너무 많은 옷을 가져가면 짐만 된다. 필요하면 여행지에서 구매해도 된다.     

□ 속옷과 양말 

-매일 밤 빨래를 하는 내 노력이 가능하다면 최소한으로 줄여도 된다

-세탁세제 필요한 만큼 덜어서 담는다. 비누 세탁이 가능하면 생략해도 된다.     

□ 신발 

-많이 걸어야 한다면 편한 것이 최고다. 

-슬리퍼를 챙기면 호텔에서 가까운 곳을 갈 때 유용하게 신을 수 있다.     

□ 비옷 또는 우산 

-여행지의 날씨를 확인하고 준비한다. 호텔에 우산이 비치되어 있기도 하니 확인하고 챙긴다.     

□ 세면도구 

-세계적으로 일회용품을 줄이고 있다. 우리도 동참!     

□ 화장품 

-선크림을 꼭 챙긴다. 나머지는 쓰던 것을 덜어서 준비하거나 샘플을 챙긴다.     

□ 비상약

소화제, 지사제, 해열제 등. 자기에게 필요한 약 준비!     

□ 읽을 책

-읽을 시간과 결심이 있다면 추천! 

-긴가민가하면 가방에서 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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