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31일, 위급 재난 문자가 왔다. 고요한 새벽에 난데없이 대피할 준비를 하라고 한다. 서울특별시에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위급 재난 문자가 왔다. 눈앞이 새하얘지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남편은 벌써 출근 했고, 작은딸은 방에서 자고 있다. 큰아이는 지금 학교 주변에서 자취하고 있다. ‘어쩌지? 뭐부터 해야 하지?’ 당황해서 심장만 콩닥콩닥 뛰었다. 바로 TV를 켰다. 뉴스에서도 속보 자막만 나오고 아직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떨린다.
재난이 닥쳤을 때 무엇이 필요할까? 생존 가방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집에도 생존 가방을 꾸려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민재난안전포털 ‘비상대비용품 (safekorea.go.kr)’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자세한 설명이 있다. 비상용 백에는 대피 시에 필요한 물, 비상식량, 보온용품, 응급약품 등을 넣어두라고 한다. 각 가족 구성원의 비상용 가방을 배낭이나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처럼 튼튼하고 휴대가 편리한 가방에 넣어두면 편리하다고 했다. 비상용 가방은 집에서 나갈 때 쉽게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가족 모두 찾기 쉽고 꺼내기가 편한 현관 옆 창고에 보관하면 되겠다.
비상 대비 용품으로 생존 가방에 넣어야 할 것은 비상식량, 물, 응급약품, 손전등, 휴대용 라디오, 건전지, 호루라기, 여분의 휴대전화 배터리 등이다. 비상 의류, 수건, 화장지, 생리용품, 귀중품(현금/보험증서)도 챙긴다. 중요한 서류는 방수가 되는 비닐에 보관한다. 여분의 자동차 키와 현금도 넣어둔다. 가벼운 우비, 얇은 담요도 있으면 좋겠다. 가족 연락처, 행동 요령, 지도 등이 있는 재해지도 또는 수첩이 있으면 당황하지 않을 것 같다. 닥쳐서 하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당황하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다.
대부분 사람은 중요한 서류일수록 깊숙이 보관한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갑자기 찾을 때는 어디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번 기회에 부동산 관련 서류를 다 모아보았다. 그동안 내가 살았던 집들의 계약서가 아직도 있었다. 이제 버릴 때가 된 것 같다. 잠시 그곳에서 행복했던 추억을 생각하고 버린다. 중요한 서류는 방수가 되는 비닐에 넣어 정해진 자리에 넣는다. 여권도 남은 기간을 확인하고 같이 보관한다. 나와 남편의 인감도장을 찾아서 생존 가방에 넣었다. 급할 때 만들었던 목도장이 화석처럼 여러 개 발견되었다. 인감도장과 여분의 도장 하나만 남기고 비운다. 요즘은 도장보다 서명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인감도장만 있어도 될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나 더 남긴다.
비상식량은 아직 준비하지 못했다. 식재료를 그때그때 사서 음식을 만드는 편이라서 평소에도 저장 식품이 별로 없다.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초콜릿, 사탕, 건빵, 생수 등을 사서 넣어야겠다. 응급약품과 식구들이 평소 먹는 약도 챙긴다. 생존 가방을 가지고 대피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재난이 닥쳤을 때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국민재난안전포털 앱'을 휴대전화에 설치했다. 이 일이 있고 가족과 함께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해 보았다. “각자 재난 발생 시 주변에 있는 대피장소를 알아둔다. 그리고 직장이나 학교에 있으면 무리하게 집으로 오려고 않는다. 상황이 안정되거나 종료되면 그때 안전하게 집에서 만난다.” 우리 가족이 정한 약속이다.
위급 대피 문자를 받고 출근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다시 안전 안내 문자가 왔다. ‘[서울특별시] 북한 미사일 발사로 인해 위급 안내 문자가 발송되었습니다. 서울시 전지역 경계경보해제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일상으로 복귀하시기 바랍니다.(오전 7:25)’ 이유도 모르고 대피하라는 문자만 보고 놀란 가슴이 그날 하루 종일 진정이 되지 않았다. 44분 동안 불안과 공포에 떨었지만, 나의 안전과 가족의 안전을 생각하기에는 충분했다.
나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
비우면서, 생존 가방에 필요한 물건을 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