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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안 볼 거라 생각하지 마

by 청초마녀

엊그제인가. 저녁 식사를 준비할 즈음 관리소에서 호출이 왔다. 무슨…일이지? "얘들아, 너희들 엄마 없을 때 쿵쿵거렸니?" 예정에 없던 택배가 온다면 궁금하기라도 하지, 연락 올 일이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전화 왔었다 하니 좋은 일은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관리소 아저씨는 간밤에 내다 버린 작은 밥상을 문제 삼았고, 2천 원을 내야 한다는 말씀에 자진 신고와 허위 고백을 동시에 해야만 했다. "죄송해요. 제가 어제 남편한테 '일단' 내다 버리라고 했는데, 전화드린다는 걸 잊고 있었어요."



이 뻔한 변명이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치우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던 안일한 생각은 명탐정 셜록 홈스에 맞먹는 CCTV에 의해 발각되었음이 분명하고, 나의 명령을 수행했던 남편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을 때에는 두 얼굴에 뜨는 '반성'하는 마음을 바라보아야 했다. '괜히 버렸어. 그깟 밥상 때문에, 고작 2천 원 때문에 이미지만 실추되다니!' 부끄러운 마음에 "만 얼마짜리 밥상 하나 버리는데 2천 원을 내네." 하고 중얼거려보지만 달라지는 사실은 없었다. 관리소에서 오셨고, 정중히 드렸다.



그러고 보면, 나라는 여자는 모순덩어리 그 자체다. 그간 다른 이들의 공중도덕 상실을 두고 얼마나 혀를 찼던가.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곳에 김칫 국물이며 잔여물이 뚝뚝 떨어져 있어도 그냥 가는 사람, 공중화장실에 노란물, 검은털 등 자신의 은밀한 흔적을 남기는 사람, 도서관 책을 냄비 받침으로 사용하는 사람 등. 그러면서도 나는 '변기에 휴지를 버리지 마십시오' 같은 경고는 가뿐히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게, 제가요, 일부러 버리려던 건 아니고 변기 커버에 깔았던 휴지가 일어나면서 딸려 들어간…'이라고 하기엔 부러 버릴 때도 많았다. 이처럼 알면서도 내키는대로 행동하는 이가 나였으니, 누구를 욕하고 누구를 비난할까. 아무도 안 볼 거라 생각하지 말고 나부터 잘할 수밖에. 뭐든 떳떳한 게 좋잖아?



기분 탓일까…. 밥상 사건이 있고 다음 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을 때 버릴 때마다 헷갈리는 품목인 '스티로폼 박스'의 위치 선정을 두고 그날의 상식 수준에 맞게 '비닐류'에 던진 순간이었다. 10미터 근방에서 "거기에 놓으면 안 되죠!"하며 경비 아저씨가 걷듯 뛰듯 다가오시는데, 평소 우리 가족에게 우호적으로 대해주시는 친정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밖에서 아이들 보면 머리통 쓰다듬어 주시고, 나에게는 "내가 잘 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말해주시는 고마운 어른. 그래서 평소에도 만나면 인사 치고는 긴 대화를 나누는 분이었는데, 어쩐지 이 날은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당신네들이었구만?' 하고 채찍질하는 것 같은. '괜찮은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만?" 하고 밀어내는 것 같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아저씨의 낯선 느낌에 나의 부주의함이, 나의 안일함이 되살아나서 왜 그랬냐고 머리를 콕콕 쑤셔댔다. 그동안 잘해왔고 못해왔고를 떠나, 입주민으로서 지켜야 할 질서와 규칙이 있는데, 이를 은근슬쩍 무시해 버렸으니 제 발 저렸던 거다. 덕분에 앞으로는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건, 나를 위함이기도 하지만 어디에서는 나를 지켜보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서이기도 하니까. 무엇보다 새로운 정체성을 입고 나아가는 길에 걸림돌이 될 만한 '습'은 하나씩 버려야 할 때임을 인지하는바. 현명하게 생각하고, 똑똑하게 행동하는 '나'로 거듭나기를, 안 보이는 곳에서도 괜찮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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