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정말로 무엇을 배우고 싶어 할까?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에게 물었다.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을 배우고 싶나요?”
우리는 종종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혹은 방향을 모를 테니 어른이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5학년, 여전히 초등학생이니 어리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어른인 우리도 가 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의 ‘가르침’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인공지능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며 지식의 수명이 짧아진 지금,
과거의 지식 하나쯤 아는 것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앨빈 토플러는 이렇게 말했다.
“21세기의 문맹은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배우던 것을 버리고, 다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고정된 지식이 아니라 배우는 방법,
필요 없어진 것을 과감히 버리는 능력,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며 다시 배우는 태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행복한 삶을 위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나요?”
처음엔 모두가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곧 여기저기서 조심스러운 손이 올라왔다.
“선생님, 저는… 안전하게 사는 법이요. 뉴스 보면 무서운 일이 많잖아요.”
“저는 몸이 튼튼해지고 싶어요. 코로나 때문에 운동도 못 하고, 금방 지쳐요.”
COVID-19 팬데믹 속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이 아이들에게
안전과 건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었다.
또 다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랑 잘 지내는 법이요. 싸우면 마음이 아프니까요.”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 하지 않던가.
이 아이들은 본능처럼 관계 맺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말도 나왔다.
“하고 싶은 걸 배우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걸 더 잘하게 되고 싶어요.”
“커서 돈 관리하는 법, 계약서 쓰는 법 같은 것도 배우면 좋을 것 같아요.”
이 말들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고, 꿈을 이루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심지어 어른이 되면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수업까지 요구했다.
가만히 있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며,
어른이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이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 교육과정은 너무 늦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삶이다.
그들은 ‘언젠가 쓸모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을 배우고 싶어 한다.
우리가 가르치려는 것과, 아이들이 배우고자 하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에서 ‘배움을 돕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박제된 교과서 속에 머무르지 말자.
아이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에서부터, 배움이 시작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