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채집인의 확산과 멸종의 제1의 물결

[Sapiens] 인지혁명; 우리는 왜 가장 치명적인 종이 되었는가?

by 차미레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도착한 순간, 다른 생명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Q1. 인간은 언제부터 특별해졌을까?

인간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호모 사피엔스뿐 아니라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랜 시간,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먹이를 찾아 움직이고, 위험을 피하며, 무리를 지어 살아갔다.

하지만 약 7만 년 전, 인간에게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

이 혁명은 도구를 더 잘 만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인간이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공통된 신화를 믿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에서 비롯되었다.

‘저기 저 숲은 신의 영역이야’, ‘우리는 같은 부족이야’, ‘이 돌은 돈이야.’

이런 허구의 개념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이제 인간은 현실을 넘어서 상상의 세계에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인간은 특별해졌다. 그리고 그 ‘특별함’은 곧 자연에게는 재앙이 되었다.



Q2. 생각할 줄 안다는 건, 무엇을 바꾸었을까?

생각은 단지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아니다.

생각은 세계에 이름을 붙이고, 질서를 만들고, 보이지 않는 법칙을 세우는 힘이다.

인지혁명을 통해 인간은 사냥을 더 정교하게 계획하고, 불을 다루고, 집단을 조직하고, 미래를 상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바로, 자연 속에서 살아가던 존재가 자연을 바꾸는 존재로 이동한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은 자신이 속한 생태계를 관찰하고 분석하며,

어떻게 활용하고 지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숲은 도구가 되었고, 강은 경계가 되었으며, 동물은 자원이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다른 종과 ‘공존하는 법’보다는 ‘관리하는 법’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문명을 가능케 했지만, 동시에 멸종과 파괴의 첫 장을 열었다.

사유는 도구보다 날카로웠고, 상상은 이빨보다 강력했다.

생각할 줄 안다는 건, 다른 존재의 삶에까지 영향력을 미친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세계의 규칙을 바꾸기 시작한 첫걸음이었다.



Q3. 우리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왜 동물들은 사라졌을까?

처음 인간은 도망치는 존재였다.

맹수의 눈을 피했고,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았다.

하지만 인지혁명 이후, 인간은 달라졌다.

이제 인간은 그 누구보다 영리하고, 협력적이며, 치밀한 사냥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냥꾼이 대륙을 건넜다.

호모 사피엔스가 호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오늘날 상상조차 어려운 대형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코알라보다 훨씬 큰 유대류, 사람 키보다 높은 새들,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육식동물들.

하지만 불과 수천 년 안에, 그 대부분은 사라졌다.

기후 변화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었지만, 단 하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들이 사라진 시기와 인간의 도착 시기가 정확히 겹친다는 것.

비슷한 일이 아메리카 대륙, 마다가스카르, 뉴질랜드에서도 반복되었다.

어떤 기후 변화도 그렇게 빠르고 결정적인 멸종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곳에는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 인간의 발걸음.

우리는 단지 정착하고 살아남기 위해 사냥했을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가 들어간 땅은 다른 생명에겐 끝이었다.

생각하는 사냥꾼의 발걸음은, 생태계 전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Q4. 생태계를 무너뜨린 진짜 힘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이 자연을 바꾸는 방식은 단순한 사냥을 넘어서,

불을 이용한 ‘화전 농업’, 그리고 복합적인 기후 변화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뤄졌다.

사냥은 직접적인 멸종의 원인 중 하나였지만,

불을 피워 숲을 태우고, 땅을 갈아엎으며 농경의 기반을 마련한 것은

더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생태계 파괴를 불러왔다.

화전 농업은 숲을 불태워 농지를 만들고,

농경 사회가 확장되면서 인간의 영향권은 점점 넓어졌다.

이는 생태계가 스스로 복원할 틈도 주지 않고,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기후 변화가 겹치면서,

생태계는 인간과 자연이 결합한 복합적인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사냥꾼’으로서의 인간을 넘어,

‘생태계 설계자’로서의 인간이 등장한 셈이다.

이 모든 과정이 모여,

인간은 생물학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존재가 되었다.



Q5. 우리는 어떤 종으로 기억될까?

인류는 생각할 줄 아는 존재다.

이 능력으로 문명을 쌓고, 지구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 흔적은 때론 파괴였고, 때론 창조였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 어떤 마룻보다도 가장 치명적인 존재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역사는 단지 ‘기록’ 일뿐이다.

우리가 어떤 종으로 기억될지는,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생각하는 존재는 다시 생각할 수 있다.

멸종의 물결을 멈추고, 공존의 물결을 시작할 힘도 우리 안에 있다.

그래서 오늘,

‘수렵채집인의 확산과 멸종의 제1의 물결’을 돌아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미래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종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파괴하는 종?

아니면, 생명을 품는 종?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이제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라, 지구의 ‘책임자’가 되었다.

생각하는 존재로서, 파괴했던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인지혁명’이 가져온 파괴는 멈출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 파괴를 ‘멈추고’ ‘되돌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인간다움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남아 있는 생명들을 보호하는 일,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일,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는 일,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생각하는 힘은 곧 책임질 힘이다.

멈출 수 없는 진보라면,

그 진보가 파괴가 아닌 회복과 공존으로 이어지도록,

우리 모두가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할 때다.




생각하는 존재라는 건, 다시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다.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