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iens] 과학혁명Ⅰ: 인류의 역사와 권력의 구조를 뒤흔들다
“우리는 언제부터 ‘모른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1500년 전까지 인류는 모든 답을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누군가 용기 내어 말했다.
“우리는 모른다.”
그 말이 세상을 바꿨다.
1500년 이전, 대부분의 인류는 세상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믿었다.
우주의 질서, 인간의 운명, 올바른 삶의 방식은 모두 신의 계시나 선조의 지혜로 이미 주어졌다고 여겼다.
우리의 역할은 그것을 새롭게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해석하고 순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르네상스 시기에 유럽에서는 조용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말은 단순한 지식의 결핍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무지를 자각하는 새로운 인식의 틀이었다.
진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눈과 손으로 관찰하고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 순간부터 인류는 스스로 질문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 질문은 실험과 수학으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는 기술과 기계, 그리고 전례 없는 힘의 발명으로 돌아왔다.
과학혁명은 무지를 자각하는 능력에서 시작되었다.
‘혁명’이란 단순한 발전이나 성장이 아니라, 기존의 전제 자체를 뒤엎는 일이다.
과거의 지식 체계는 대부분 ‘권위’를 기반으로 했다.
성경, 코란, 유교 경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같은 불변의 진리가 중심에 있었고,
학문은 그것을 해석하고 반복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과학은 말했다.
“과거의 책 보다, 지금의 실험이 더 중요하다.”
“권위보다 관찰이다.”
“우리는 확신이 아니라, 검증을 믿는다.”
이 태도 변화는 곧바로 현실을 바꾸는 힘으로 이어졌다.
약 1500년, 인류는 여전히 지표면에 묶인 존재였다.
그로부터 469년 뒤인 1969년, 인류는 달에 발을 디뎠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성취가 아니라,
‘인간은 신이 정한 경계를 넘을 수 있다’는 확신의 증명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사건이 있다.
1945년, 앨러머고도 사막에서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이 터졌다.
그 순간, 인간은 단순히 역사를 바꾸는 존재가 아니라,
역사를 끝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 모든 변화는, 단 하나의 전환에서 시작되었다.
“모른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진리를 흔들었고, 세상을 다시 쓰게 만들었다.
우리는 흔히 과학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탐구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질문을 바꿔 묻는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참인가? 아니면, 그것이 유용한가?”
과학이 ‘진리’에 접근하고자 한다는 건 맞다.
하지만 현대 과학이 진짜로 가치를 두는 것은 ‘작동하는가’, ‘쓸모가 있는가’이다.
뉴턴의 이론이 옳은가? 상대성 이론이 진실인가?
보다 중요한 건 그것이 어떤 기술을 만들 수 있게 했는 가다.
GPS, 핵발전, 인터넷, 인공지능...
우리는 이 이론들이 진실이라 믿기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에 신뢰하는 것이다.
하라리는 이렇게 말한다.
“지식의 진정한 시금석은
그것이 진리인가 아닌가 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주느냐의 여부다.”
즉, 현대 과학은 세계를 설명하려는 도구인 동시에,
세계를 바꾸고 통제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과학은 종종 진리를 말하면서도 권력을 향한다.
그 경계는 언제나 흐릿하고 위험하다.
과학은 언제나 현실의 구조 속에서 자라났다.
순수한 진리 탐구만으로는 실험도, 연구도, 기술도 불가능했다.
돈이 필요했고, 동기가 필요했고, 권력이 필요했다.
근대 과학이 번성했던 이유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연료’를 얻었기 때문이다.
자본은 실험과 탐험에 돈을 댔고.
제국은 과학의 발견을 무기와 항해에 활용했다.
과학은 그 두 세력에게 신뢰와 정당성을 제공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은 지리학의 진보였지만,
그 발견은 곧 정복과 수탈로 연결되었다.
그 뒤를 따라 천문학, 생물학, 인류학, 언어학은 미지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도구인 동시에,
그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하라리는 말한다.
“과학과 유럽 제국주의의 연대는
둘 다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무지를 인정한 두 세력은
“아직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한 욕망을 공유했다.
하지만 그 욕망은 지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배를 위한 것이었다.
과학은 분명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다.
우리는 더 오래 살고,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질병과 자연재해 앞에서 예전보다 훨씬 덜 무력하다.
생물학적 가난은 줄었고, 기술은 삶을 훨씬 편리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는 더 강해졌고, 정신적으로는 더 많이 연결되었다.
하지만 그 대가도 크다.
우리는 지금
죽음조차 정복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이며,
스스로 만든 기술로 지구와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만든 과학은 다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진보는 무엇인가?”
“우리는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고, 그 끝은 어디일까?”
과학은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계속 질문하게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과학은 여전히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으로 향하는 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