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iens] 농업혁명; 왜 덫에 걸렸는지도 모른 채 걸어 들어갔는가
농업혁명은 인류가 더 나은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덫에 걸린 채 고통과 불평등의 길로 들어선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업혁명을 ‘진보’라 여긴다.
수렵과 채집에서 벗어나 정착하고,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며, 문명으로 나아간 위대한 도약 말이다.
하지만 『사피엔스』는 이 통념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은 반드시 일치하는가?”
농업혁명은 더 많은 사람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게 만든 혁명이었다.
질 좋은 식사, 여가, 다양성은 줄었고, 노동 시간은 늘었다.
오히려 인간이 식물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식물이 인간을 길들였다.
인간은 점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곡물을 위해 바치며,
그 생존과 확산을 돕는 일에 평생을 쏟았다.
이것이 과연 축복이었을까?
그보다는, 덫이었다.
농업은 처음엔 선택이었지만, 곧 돌이킬 수 없는 의무가 되었다.
단지 더 편하고 안정적인 삶을 위한 작은 시도였지만,
사치품은 곧 필수품이 되었고,
조금의 정착은 곧 많은 아이, 더 많은 노동, 더 넓은 경작지로 이어졌다.
인구가 늘어날수록, 과거의 방식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한 번 밀의 노예가 되자, 그 길을 되돌아볼 틈도 없이 이어졌다.
아무도 그렇게 원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멈출 수 없었다.
곡물을 재배하려면, 누군가는 땅을 가꾸고, 물을 끌어오고, 창고를 지켜야 했다.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해졌고, 조직과 분업, 위계와 통제가 필요해졌다.
그렇게 문명은 탄생했다.
소수의 사람에게는 명령과 기록의 권력,
대다수에게는 고된 노동과 굶주림, 그리고 순종이 주어졌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들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들이 해온 무엇이다.
인간의 본능은 달팽이처럼 느리게 진화했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신, 우주, 국가, 법을 단숨에 만들어냈다.
그 상상력은 곧 협력의 도구가 되었고,
인류는 그 협력 위에 도시와 제국을 세웠다.
하지만 이 협력은 단단한 진리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모든 위계질서, 모든 제도, 모든 정의는
상상의 질서 위에 세워진 허구였다.
우리는 그 허구를 믿기 때문에 협력할 수 있었고,
협력하기 위해 그것을 진리로 믿었다.
모든 상상의 질서는 마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진리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누군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이야기였다.
평등, 위계질서, 정당성, 도덕성, 법…
이 모든 기준은,
우리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한다.
가장 보편적인 위계질서 중 하나는 성별이다.
그리고 이 위계가 생물학이 아닌 문화에 의해 구속될 때,
인류는 스스로 만든 허구에 더 깊이 사로잡히게 된다.
복잡한 농업 사회는 더는 기억만으로 유지될 수 없었다.
세금, 곡물, 사람 수, 토지 분배…
정보를 기억하고 관리하기 위해 인간은 쓰기를 발명했다.
쓰기는 유형의 기호로 정보를 저장하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처음부터 철학이나 문학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대량의 수학적 데이터를 다루기 위한 행정의 도구였다.
그리고 이 도구는,
지배자들에겐 권력을,
피지배자에겐 복종을 요구하는 수단이 되었다.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믿는 이유는,
그것이 진리여서가 아니라,
그 믿음이 협력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그 허구가 고통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확대할 때,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과연 이 삶은,
이 질서는,
이 방식은,
우리가 정말로 원했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