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좋은 회사에서 계속 떠났나

0. 작은회사의 기획자 이야기_인트로

by Way Maker

처음엔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나는 더 버틸 수 있었을 텐데.”

회의에서 큰 소리로 기획을 잘라버리던 선배,
노력보다 성과만 보는 상사,
아이디어는 내게 시키고 결정은 혼자 하던 팀장.

그럴 땐 그냥 떠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을 옮겨도 비슷한 이유로 떠나게 됐다.
사람이 바뀌었는데, 문제는 여전했다.
이번에는 동료도 괜찮았고, 상사도 나쁘지 않았는데,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처음엔 사람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조금 더 버텨보자고 마음먹었을 땐, ‘내가 일을 못해서’ 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아이디어가 부족한가? 제안서가 부족했나? 리더십이 모자란 건가?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제안서에 공을 들였고, 방향을 먼저 제시했고, 매일 밤 PPT를 고쳤다.


어느 날 밤,

사무실에 혼자 남아 기획서를 고치고 있을 때,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왜 또 나 혼자지?”

“나는 왜 항상 이렇게 혼자 남는 걸까?”


그제야 깨달았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구조였다.


회사에는 시스템이 없었다.
칭찬은 있었지만 기준은 없었고,
열정은 넘쳤지만 방향은 없었다.
회의는 많았지만 결정은 없었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모두가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었다.

결국 나는 기획자인지, AE인지, 카피라이터인지, 제작 리더인지조차 모호한 상태로
매일 밤 혼자 남아 제안서를 고치고 있었다.
‘되게 하는 사람’이었을 뿐, **‘기획자’**는 아니었다.


회사는 나를 붙잡았다.
나를 놓치면 안 된다고 했고, 나를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다음 주도, 그 다음 달도,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회의는 없었고, 피드백은 없었고, 결정은 나 혼자 해야 했다.
그때 깨달았다.
“이 회사는 나를 붙잡은 게 아니라, 일을 붙잡은 거였구나.”


그래서 떠났다.

사람이 아니라 구조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회사를 선택할 때 반드시 묻는다.
“기획자는 누구와 일하나요?”
“결정은 누가 하나요?”
“실행 파트너는 있나요?”


이 질문들에 선명하게 답할 수 없는 회사라면,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가지 않는다.

나는 이제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보고 일한다.
기획자는 시스템 안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기획자가 아니라 구조 설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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