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제안서 다시보기

작은회사의 기획자이야기 3. 기획복기노트

by Way Maker

제안서를 다시 꺼낸다는 건, 감정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건 마치 이별한 연인의 편지를 다시 읽는 것과 같다. ‘어디서 잘못된 걸까?’를 반복해서 되짚고,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몰랐는지를 확인하게 되니까.

하지만 나는 실패한 제안서를 다시 꺼내 써본다. 그건 감정의 일이 아니라 전략의 일이다.


1.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던 제안서

어떤 제안서는 정말 잘 썼다고 생각했다.

타깃 분석도 정밀했고, 브랜드 슬로건도 설득력 있었고, 캠페인 흐름도 명확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을 다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탈락이었다.


처음에는 억울했다. 왜 이게 안 된 거지? 그 다음에는 자책했다. 내가 뭘 놓쳤지?

그러다 마지막엔 꺼내지 않게 됐다. 잊어버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꺼내보니, 보이는 게 달랐다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제안서를 꺼냈다. 그리고 알게 됐다.

그 제안서는 '좋은 전략'이 아니라 '내 전략'이었던 거다.

타깃의 리얼리티보다는 내 해석이 더 많았고, 브랜드의 언어보다는 내가 쓰고 싶은 언어가 앞섰고,

전략보다는 의도가 강했다.

그때는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혼자만의 논리'였다.


2. 리마스터: 제안서를 다시 쓰는 방식

리마스터는 '새로 쓰는 것'이 아니라 '다시 구성하는 것'이다. 기존의 흐름을 구조적으로 분해하고,

새로운 타깃 감각과 브랜드 상황에 맞춰 재조립한다.

슬로건을 다시 쓰고, 메시지를 다시 정리하고, 흐름을 다시 배치하면서, 나는 그때의 전략이 가진

'의미의 방향성'을 새롭게 본다.

리마스터는 실패를 지우는 게 아니라, 실패 위에 새로운 구조를 세우는 작업이다.


3. 전략은 설계자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전략을 '설계하는 나'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사용하는 사람'이 중심이다.

내가 짠 슬로건이 아니라, 그걸 쓰는 사람의 일상에서 들리는 말이 중요하다.

그래서 제안서를 다시 쓰는 건, '나의 말하기'가 아니라 '타인의 듣기'로 바꾸는 일이다.


4. 실패한 제안서는, 전략의 샘플북이다

이제 나는 실패한 제안서를 버리지 않는다. 그건 내 전략의 아카이브이고, 다음번 더 나은

제안을 위한 샘플북이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전략가의 작업 테이블에 남는 증거다. 그걸 다시 꺼내 쓰는 순간,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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