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시의 미래

나는 전문직인가? 1편

by Way Maker

나는 전문직이 아니다

나는 광고 전략가다. 혹은, 그 비슷한 무언가를 해왔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전문직'이라 부르기엔 어딘가 주저하게 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어느정도의 학벌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학원을 그렇다고 되게 거창한 학벌도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거창한 학벌과 스펙을 자격증 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에이전시 업계에서 전략이란 건 애매한 자리다. 똑똑한 사람인 척해야 하지만, 너무 똑똑해 보이면 밉상이다. 말은 멋지게 해야 하지만, 말만 하면 허풍쟁이다. 결국 전략가는 말로 구조를 설계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 말이 돈이 되지 않는 순간이 너무 자주 온다는 거다.


그리고 최근, 나는 다시 그 질문으로 돌아왔다. '이 일은 누구의 일인가?' '나는 자격이 있는가?'

요즘의 광고 업계는 달라지고 있다.

매체 수수료로 먹고 살던 시절은 끝났고, 영상 한 편으로 브랜드를 먹여 살리던 시대도 지났다.

에이전시는 더 이상 '대행사'가 아니다.

AI가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브랜드는 인하우스를 늘리고, 고퀄 영상은 대형사 몇 군데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 사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제 에이전시는 '서사를 설계하는 집단'이 되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브랜드의 태도와 정체성을 만들고, 실행과 성과를 엮는 구조를 제안하라고 한다.

말하자면, 마케팅의 컨설턴트이자, 서사의 건축가가 되라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찜찜한 질문이 떠오른다.


"그럼 이제, 학벌 없이는 이 일도 못 하는 건가요?"

나는 그 질문 앞에서 멈칫한다. 서사와 전략, 구조와 실행. 이 모든 단어가 점점 더 전문직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컨설팅 회사 출신, MBA, 빅네임 대학, 이런 이력이 아니면 설득력조차 갖기 어려운 시대가 오는 건 아닐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은 전부 책에서 배운 게 아니었다.

수십 개의 기획안을 밤새워 쓰고, 클라이언트의 얼굴을 보며 감정의 결을 읽고, 브랜드가 진짜 원하는 것을 끝까지 캐묻는 일들. 나는 현장에서 배웠다. 말과 사람 사이에서, 숫자와 감정 사이에서.

서사를 설계하는 데 필요한 것은 학벌이 아니라 감각이다. 구조를 설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라 맥락을 읽는 힘이다.

그리고 브랜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명문대 졸업장이 아니라, 삶을 여러 방식으로 살아본 경험이다.

나는 전문직이 아니다. 나는 무언가를 설계하고, 말하고,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 당신이 학벌이 없다고, 자격이 없다고 느낀다면, 나와 같은 질문을 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이 일은, 우리가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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