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사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지난 글에서 나는 나를 '전문직이 아닌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이 일이 가벼운 일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에이전시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복잡하고, 그리고 불확실하다.
2025년, 포레스터는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2026년의 마케팅 에이전시는 더 이상 단순한 대리인이 아니다." 브랜드의 마케팅 조직은 점점 더 인하우스로 전환되고 있고, 에이전시는 솔루션 제공자, 미디어 리셀러, 플랫폼 운영자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해오던 일, 즉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받아 광고를 만들고, 매체에 집행하고, 리포트를 내는 방식은 구조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에이전시는 이제 '팔 것'이 없다. 미디어 수수료도, 고퀄 콘텐츠도, 독점적인 크리에이티브도 더는 우리의 고유 상품이 아니다.
클라이언트는 스스로 영상을 만들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략을 짠다. 에이전시는 점점 '브랜드를 위한 일잘러 집합소'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력이 줄고 있다. 2025년 한 해에만 마케팅 에이전시 인력의 8%가 줄었고, 2026년까지는 전체의 15%가 감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AI 기반의 자동화는 전략, 브리프, 리서치, 콘텐츠 기획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우리는 더 적은 사람으로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하지만 포레스터는 이렇게도 말했다. "클라이언트는 여전히 전략을 원한다."
단지 문제는, 우리가 제시하는 전략이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클라이언트와 전략가가 말하는 '전략'의 정의 자체가 다르다.
클라이언트는 매출, 전환, 퍼널, LTV 같은 비즈니스 성과를 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만들기 브랜드 정체성, 톤앤매너, 콘셉트라는 것.
어쩌면 이런 상반된 방향 속에서 지금까지 전략가는 점점 더 어려운 위치에 놓이게 되었던 게 아닐까
물건과 쓰레기를 결정하는 기준은 내용물이 아니라 맥락인데
그 맥락을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걸 곧잘 잊거나 자신만의 프레임 지금까지의 성공 방정식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전략이란 말은 여전히 멋지지만, 그 내용이 숫자로 증명되지 않으면, 그저 좋은 말에 불과하다.
WARC의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전략가의 80%는 지금이 전략의 전환점이라고 느끼고 있다.
원래 시장이 불황일때 다시 들여다보는게 전략인것처럼 아이러니하게 가장 중요한것이 등한시되고
재미있는거, 튀는거, 웃기는거를 찾다가 다시 회귀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앞으로 살아남는 전략가는 단지 아이디어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설계하고 실행까지 연결하는 사람일 것이다.
브랜드가 방향을 잃었을 때, 그 혼란을 단순화하고, 말이 아니라 구조로 길을 만들어주는 사람. 그게 앞으로의 전략가다.
AI로도 아직 대체되지 않는 영역이다. 그것은 인간의 불확실성을 이해하고, 시장의 맥락을 읽고, 감정과 데이터를 함께 다룰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 업계에서 늘 강조되는 데이터리터러시인데 사실 제대로 하는 사람을 잘 못봤다.
좋은 전략가는 이제 더 이상 “정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끝까지 가져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클라이언트의 질문에 대해, 말이 아니라 구조와 설계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에이전시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예전 방식의 '대행사'는 끝났다.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것은, 브랜드의 맥락 설계자다.
서사의 방향을 제시하고, 구조와 실행을 설계하고, 결과까지 함께 책임지는 사람들.
나는 그걸 우리 업계의 두 번째 챕터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 챕터는, 우리가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