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도 잘한다구
유산균 시장은 이미 포화다. 누가 더 새로운 걸 만들기보다, 이미 먹는 사람들의 ‘브랜드를 바꾸게’ 만드는 전장이다. 기능은 넘치고, USP는 과잉이다. 그래서 질문은 하나로 수렴한다.
왜, 하필 이 제품인가
나는 그 질문을 광고 카피로 해결하지 않기로 했다. 카피는 결론이고, 결론은 구조 위에서만 설득력을 가진다. 그래서 000를 ‘라이프’로 설계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이 라이프가 ‘선망의 기준’이 되면, 퍼포먼스는 그 기준을 구매로 연결한다.
우리 전략은 그렇게 시작했다.
발표 자료의 한가운데에는 하나의 흐름이 있었다.
선망(기준) → 불안 제거(신뢰) → 정당화(오퍼) → 루틴(재구매)
단순히 ‘좋다’가 아니라,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상태를 만드는 것. 000는 단순 유산균이 아니라
‘내 기준을 높이는 루틴’이 되는 것.
그래서 브랜드를 이렇게 정의했다.
0000000000, 기준이 다른 루틴 브랜드.
사람들은 건강을 사는 게 아니라, 기준을 산다. 그리고 기준은 ‘상황’과 ‘문장’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으로 증명된다.
그래서 퍼포먼스 전략은 메시지 경쟁이 아니라 ‘구매 행동의 맥락’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중요한것은 브랜드와 구매행동 사이의 연결고리 강화였다.
사람들이 흔히 퍼포먼스를 ‘매체 운영’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건 매체가 아니라 ‘역할’이다.
같은 메시지를 여러 플랫폼에 뿌리는 순간, 성과는 분산되고 책임은 증발한다.
그래서 나는 플랫폼을 세 가지로 쪼갰다.
네이버 브랜드스토어: 검색·리뷰 기반 신뢰형, 즉시 구매 최적화
자사몰: 커뮤니티/가입/CRM으로 LTV와 재구매 루틴 강화
외부몰: 딜과 랭킹으로 볼륨을 만들고 효율 하락을 방어
각 플랫폼의 KPI도 ‘다르게’ 매핑했다.
어떤 곳은 ROAS, 어떤 곳은 CVR, 어떤 곳은 LTV가 핵심이 되도록. 이게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성과를 내는 방식”이 아니라 “성과를 내야 하는 이유”가 플랫폼마다 달라서다.
더불어 광고 모델로 설득하는 대신, 소비자가 ‘000 라이프’를 증명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소비자 자체를 미디어이자 인플루언서로 활용하는 구조.
모집. 사연. 생활 루틴 기반 크리에이티브. 그리고 000 여행권이라는 상징적 보상.
이 캠페인은 이벤트가 아니라, 브랜드 정의를 현실에서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브랜드가 말하는 ‘프리미엄 스탠다드’는 가격표에 있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야 했으니까.
프로모션은 쉬운 길이다. 쿠폰을 뿌리면 전환은 오른다. 대신 브랜드는 얇아진다.
그래서 시즌 프로모션도 ‘할인’이 아니라 ‘관계’로 설계했다.
타깃의 감성적 페인 포인트를 건드리는
이야기(공감) → 사연 이벤트(참여) → 쿠폰(정당화) → 재구매 루틴(습관)
단발성 매출이 아니라, 다음 구매를 남기는 프로모션. 세일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설계했다.
발표 날, 회의실에는 이사진 포함 8명이 앉아 있었다.
질문은 날카로웠고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늘 그 다음이다.
‘기획이 좋은 것’과 ‘맡기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의 이름은 대개 리스크다.
작은 회사가 큰 예산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 말은 실력 평가 같지만, 실제로는 ‘책임의 구조’를 묻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답을 말이 아니라 문서로 준비했다. 발표가 끝난 후 바로.
후속 문서는 간단한 요약이 아니었다. 일종의 ‘운영 보증서’였다.
단일 책임 창구: PL/Perf Lead로 역할을 분리해 의사결정과 실행을 끊지 않기
2주 스프린트 운영: 테스트 → 위닝메시지 → 예산 재배분
승자 템플릿화: 훅/오퍼/크리에이티브 규격을 누적
매주 고정 산출물: 주간 운영 리포트, 테스트 플랜, 신규 테스트 세트, 리프레시 소재
인력 보강 플랜: 효율 하락/소재 피로도/딜·이벤트/예산 증액 등 상황별 투입 시나리오
핵심은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이렇게 한다’였다.
리스크는 원래 ‘걱정’이 아니라 ‘운영의 빈칸’에서 생긴다. 빈칸을 구조로 메우면, 불안은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PT 이후의 평은 이랬다.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함께 제안한 점, 경쟁 대행사 대비 크리에이티브에 신경을 많이 쓰고, 크리 제작물 수량 자체도 다양하게 여러가지를 펼쳐간 점은 나름대로 높게 평가 하나, 아무래도 예산이 크다보니 과연 이 작은회사가 이렇게 큰 우리의 예산을 잘 소화 할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 네이버 공식대행사, 퍼포먼스에 완전히 특화된 전문 대행사가 아니라는 불안감 등 인력수나 규모가 경쟁대행사대비 작은 점 등의 반대의견도 팽팽한것 같아요"
이말은 작은 대행사의 경우 가슴 아픈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규모면에서 밀리면 어쩌란 말인가
이럴거면 라인업에 끼어주지 말지 원망도 생겼다.
‘리스크가 커서요.’
이 문장은 만능이다. 기획이 좋아도, 전략이 논리적이어도, 실행이 촘촘해도, 이 한 문장 앞에서 대부분의 논리는 증발한다. 흥미로운 건, 그 ‘리스크’가 실제 리스크인지, 단지 책임을 피하기 위한
단어인지 구분하지 않은 채로 말이 굴러간다는 점이다.
‘기획이 좋다’와 ‘맡긴다’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의 이름이 대개 ‘리스크’다.
작은 회사가 큰 예산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 말은 실력 평가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다른 질문이다.
“잘못되면 누가 책임지지?”
여기서부터 기획은 종종 내용이 아니라 정치가 된다. 그리고 ‘대형사’라는 간판이 논리의 대체재가 된다.
‘대형사니까’는 이상한 문장이다. 대형사도 사고가 난다. 대형사도 실무자는 바뀐다. 대형사도 무능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도 이 문장이 힘을 갖는 이유는 간단하다.
설명하기 쉽기 때문이다.
내부 보고에서 “대형사를 선택했습니다”는 논리라기보다 방패다. 반면 “작지만 구조가 좋아서 선택했습니다”는 보고자가 근거를 설명해야 한다. 책임이 붙는다.
그래서 ‘리스크’라는 단어는 종종 실제 리스크가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언어가 된다.
이 글은 누군가를 비난하려고 쓰는 게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기록하고 싶다.
기획이 지는 이유가 기획 때문이 아닌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 ‘리스크’라는 단어는 정확한 평가가 아니라 편리한 종결어가 된다.
제안서는 선택받지 못했을지 몰라도, 나는 이 과정에서 한 가지를 더 확실히 배웠다.
퍼포먼스는 매체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이고, ‘작다’는 약점은 규모로만 반박하는 게 아니라 운영의 언어로 해소해야 한다는 것.
다음에는 같은 설계를 더 빨리, 더 단단하게, 증명할 것이다.
‘리스크’라는 말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