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회사의 PT 지옥도
나도 안다.
이 회사에 들어온 건 내 선택이고, 그 선택을 끝까지 감당한 것도 나다.
문제는… 감당의 범위가 “AE”가 아니라 “회사 전체”였다는 거다.
작은 회사의 기획팀장으로 일하면서 나는 제안서, 운영, 미디어, 제작까지 다 만졌다.
AE가 원래 여기저기 관여하는 직업인 건 맞다.
근데 나는 “관여”가 아니라, 각 부서 팀장을 겸직했다. 무급으로.
회사에서는 그걸 “멀티 플레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걸 “인력 부족”이라고 불렀다.
사람이 부족하면 일이 줄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회사는 반대로 갔다.
사람이 부족할수록 일이 늘었다.
그리고 일이 늘수록, 해결해야 할 것도 늘었다.
그 해결의 마지막 단계에는 늘 내가 있었다.
특히 제작은, 래퍼런스와 가이드가 있어도 절대 안 굴러갔다.
그래서 나는 거의 ‘그대로 베껴도 되는 수준의 제작 설명서’를 작성해야 했다.
“이 톤으로.”
“이 구도로.”
“이 질감으로.”
“이 카피는 여기.”
“이 카피는 절대 빼지 말 것.”
“이건 로고가 아니라 증거다.”
설명서는 점점 길어졌다.
나중에는 제작 가이드가 아니라, 제작팀장의 인생가이드처럼 보였다.
그런데 웃긴 건, 그렇게까지 떠먹여 줘도 돌아오는 피드백이 이거였다.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아요.”
“별로예요.”
“이해가 안 돼요.”
“수량이 너무 많아요.”
…이 피드백을 한 사람은, 심지어 나보다 연차도 어린 제작팀장이었다.
나는 “그래, 젊은 감각이 나보다 낫겠지”라고 한 번은 생각해보려고 했다.
근데 그가 가져오는 결과물은 늘 비슷했다.
1~2일 만에 미드저니로 비주얼을 대충 뽑고,
내가 쓴 카피는 마음대로 고치거나 빼거나 없애거나.
그러니까 기획이 아니라 복불복이었다.
가장 심각한 건 시안 퀄리티였다.
누가 봐도 “대충했다”가 표정으로 보이는 결과물.
그런데 회사에서 모두가 야근할 때, 그는 칼퇴했다.
그리고 1~2시간 더 앉아 있었던 날엔 “야근 많이 했다” “무리했다”는 말을 했다.
그가 말하는 “무리”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태도의 문제였다.
일 밖에서도 문제는 이어졌다.
그는 팀원들에게 “기획이 이상하니까 대충해요” 같은 식으로 말했고,
그 순간부터 제작물은 더 이상 “산출물”이 아니라 항의문이 됐다.
물론 가능성은 있다.
내 기획이 이상했을 수도 있다.
가이드가 충분히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분명히 선을 넘었다.
나는 그걸 대표와 이사에게 계속 얘기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를 방치했다.
PT에서 “시안이 아쉽다”는 피드백을 듣고도, 아무 조치가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왜 회사는 문제를 모르는 척했는지.
아니면 더 정확히는—
왜 문제를 ‘나’로만 처리하려 했는지.
대표는 늘 “중재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문제가 터지면 제일 먼저 내게 묻는다.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그 질문이 싫었다.
질문이 아니라 외주였으니까.
내가 답을 내놓으면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
하지만 그 ‘하자’는 항상 ‘내가 하자’였다.
대표는 결정을 했다.
그리고 그 결정의 실행은 늘 내 자리에서 시작됐다.
이사는 더 명확했다.
그는 문제를 ‘관리’하지 않았다.
문제를 분산했다.
제작이 엉망이면 “기획이 좀 더 세게 잡아줘야지.”
운영이 꼬이면 “너가 좀 더 촘촘히 체크했어야지.”
시안이 아쉽다는 피드백이 오면, 그 말은 자동 번역기처럼 이렇게 번역됐다.
“그러니까, 너가 더 하면 되지.”
그들이 방치한 건 제작팀장만이 아니었다.
방치한 건 기준이었다.
이 회사에는 ‘좋은 결과물’의 기준이 없었다.
대신 ‘좋은 기분’의 기준만 있었다.
대표가 기분 좋으면 괜찮았고, 이사가 불편하면 다시 갈아엎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PT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개선 포인트’가 아니라 책임의 방향을 먼저 계산하게 됐다.
시안이 아쉽다 → 제작팀장에게 말한다 → 제작팀장이 불쾌해한다 → 대표가 나를 부른다 →
“왜 분위기가 이래?”
그럼 나는 다시 사과했다.
결과물이 아니라 분위기에.
대표는 늘 말했다.
“회사 잘되면 다 해결될 일이에요. 서로 이해해야지.”
그 말은 따뜻했지만, 이상하게 항상 내게만 적용됐다.
나는 이해해야 했고, 넘어가야 했고, 커버해야 했다.
제작팀장은 칼퇴를 해도 “힘들었겠다”가 됐다.
나는 새벽까지 있어도 “너는 원래 열심히 하잖아”가 됐다.
칭찬의 형태를 한 추가 업무 배정이었다.
늘 문제는 ‘수주 후에’ 해결하기로 했다.
그런데 수주가 되면 또 바빠서 해결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해결의 시점은 늘 미래로 미뤄졌고,
그 미래를 견디는 역할은 늘 내가 맡았다
모르겠다 정말 회사가 좋아지면 이 문제들은 다 해결이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