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 없는 어제를 만들어버렸지만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내일이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무섭다.
그런데 가끔은, 앞이 보이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이 보이면 인간은 이상하게도 성실하게 절망한다.
멀리 있는 실패를 미리 당겨와서, 오늘을 망친다.
“이대로면 안 될 것 같은데”라는 감각이
“안 된다”라는 확정으로 바뀌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앞이 보인다는 건, 그 확정을 더 빨리 하게 만드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해진다.
확신할 재료가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현재로 내려온다.
손에 쥘 수 있는 것, 오늘 안에 확인할 수 있는 것,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것들로.
나는 어쩔 수 없는 어제를 만들어버렸다.
이미 벌어진 일, 이미 흘러간 말, 이미 끝난 관계,
이미 닫힌 문들이 있다.
그건 되돌릴 수 없다.
어제는 늘 ‘완료’ 상태로 저장된다.
수정 버튼이 없다.
그런데 내일은 아직 저장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내일은 어제보다 가볍다.
물론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내일의 두려움에는 한 가지 여지가 있다.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여지.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은
상황이 나빠졌을 때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믿음을 바꾸는 연습을 한다.
세상을 낙관해서가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사실 ‘길이 없다’가 아니라 ‘길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에 더 가깝다.
정해지지 않았다는 건 불안하지만, 정해지지 않았다는 건 동시에 자유다.
어쩌면 내가 지금 가진 유일한 자유는
‘내일의 방향을 아직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는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지 않으면 계속 어제랑 싸우느라
오늘과 내일을 다 써버린다.
하지만 내일은 다르다.
내일은 내가 조금이라도 손을 대면,
아주 조금이라도 모양이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보기로 한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무섭다.
그런데 앞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보였다면 나는 미리 포기했을지도 모르니까.
보이지 않으니, 나는 아직 포기할 이유가 없다.
보이지 않으니, 나는 아직 선택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어제가 있었고,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이 있지만,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내일은 남아 있다.
내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오늘은—생각보다 견딜 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