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칭비즈니스와 에이전시

by Way Maker

“외주 맡길 사람 없나요?”

이 질문이 일상이 된 시대다.
디자인, 영상, 카피, 개발, 마케팅… 필요한 건 많고 내부 인력은 빠듯하다. 그래서 사람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커졌다. 겉으로만 보면 답은 이미 나온 것 같다. 매칭 비즈니스는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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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장에 서 보면 질문이 바뀐다.

“그래서… 왜 프로젝트는 더 불안해졌지?”

납기는 흔들리고, 품질은 복불복이 되고, 견적은 매번 새로 깎이고, 책임은 공중에 뜬다.
매칭은 쉬워졌는데, 이상하게도 결과는 더 예측이 어렵다. 플랫폼이 커질수록 오히려 제작자는 더 ‘운’에 기대게 된다.

나는 여기서 시장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시장성이 있다는 건 단순히 “거래가 많이 일어난다”가 아니다.
거래가 반복되고, 재구매가 생기고, 신뢰가 쌓이고, 가격이 무너지지 않는 구조여야 한다.

그리고 그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혼란은 “매칭 vs 에이전시”의 문제가 아니다.
둘 다 같은 병을 앓고 있다.

체계가 없다.


1) 매칭 비즈니스는 왜 에이전시를 더 어렵게 만드는가

매칭 플랫폼은 본질적으로 ‘연결’을 최적화한다.
연결이 쉬워지면 좋은 일이 벌어져야 하는데, 에이전시 입장에선 역설이 시작된다.


① 비교 기준이 ‘가격/속도’로 내려간다

브랜딩·기획·콘텐츠는 품질의 표준이 애매하다.
고객이 당장 비교할 수 있는 건 결국 이 세 가지로 수렴한다.

얼마야?

언제 돼?

수정 몇 번 해줘?

연결이 쉬워질수록, 비교는 더 쉬워지고, 비교가 쉬울수록 가격은 눌린다.
에이전시는 점점 ‘전문성’으로 돈을 받는 조직이 아니라, ‘조율과 야근’으로 버티는 조직이 된다.


② 프로젝트는 더 쪼개지고, 책임은 더 흐려진다

매칭의 세계에서는 일이 모듈처럼 쪼개진다.
기획 따로, 디자인 따로, 영상 따로, 퍼포먼스 따로.
한 명이 “전체 결과”를 끝까지 책임지기 어렵다.

그 틈에서 에이전시는 종종 “마지막 책임”을 떠안는 존재가 된다.
연결은 플랫폼이 해주지만, 문제가 터졌을 때 수습은 에이전시 몫이 된다.

‘관리 비용’이 증가하는데, 그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③ 결론: 매칭은 에이전시의 체계를 ‘시험’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매칭은 일을 쉽게 만들었다.

동시에 체계 없는 에이전시를 더 빨리 무너뜨리는 환경을 만들었다.

매칭이 에이전시를 죽이는 게 아니라,
매칭이 에이전시의 체계 부재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거울이 된 것이다.


2) 그런데 더 근본적인 문제: 한국 대행사는 왜 체계를 만들기 어려운가

여기서부터는 솔직해져야 한다.
한국 대행사가 체계가 없는 이유는 “실무자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대부분은 열심히 한다. 너무 열심히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문화와 구조다.


① 수직 문화는 ‘기준’보다 ‘위계’를 먼저 만든다

체계는 기준을 만든다.
기준은 결정을 투명하게 만든다.
투명한 결정은 책임을 추적 가능하게 만든다.

그런데 수직적 조직에서 강한 권력은 종종 이런 형태다.

“이거 아닌데?”

“좀 더 느낌 있게.”

“고급스럽게.”

“요즘 트렌드로.”


이 말들은 기준이 없을 때 가장 강해진다.
기준이 없으면, 결정은 사람의 감으로 내려지고, 감은 위계에 묶인다. 그 결과 책임은 아래로 흐른다.

기획은 위에서 떨어지고, 일정은 아래에서 갈리고, 책임은 아래에 남는다.
이게 ‘꼰대 문화’가 문제가 되는 진짜 이유다. 인성 문제가 아니라 체계가 생기는 걸 구조적으로 막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② 체계가 없으니, 야근이 ‘시스템’이 된다

대행사는 자주 말한다.

“우린 크리에이티브니까 유연해야 해.”
“케이스마다 달라.”

물론 다르다.
하지만 다르다고 해서 기준이 없어도 되는 건 아니다.
기준이 없으면 늘 마지막 순간에 일이 폭발하고, 그 폭발을 처리하는 기술이 야근이 된다.
야근은 열정이 아니라 기준 부재의 비용이다.


③ 경험이 조직에 남지 않는다: 매번 처음부터 다시 한다

한국 대행사의 가장 큰 낭비는 이거다.

캠페인을 열 번 해도, 열한 번째는 늘 새로 지옥이 열린다.
왜냐하면 노하우가 문서가 아니라 사람의 머리에만 남아서, 사람이 바뀌면 경험도 증발하기 때문이다.

체계는 ‘기록’이고, 기록은 ‘반복’을 만든다.
반복이 없으니, 성장도 없다.
성장 대신 “인력 소모”만 남는다.


3) 그래서 결론은 ‘매칭 vs 에이전시’가 아니라 “체계 vs 무체계”다

매칭 비즈니스는 시장성이 있다.
에이전시 비즈니스도 시장성이 있다.
문제는 둘 다 오래 갈수록 같은 지점에서 무너진다.

체계가 없어서.

체계가 없으면 무엇이 일어나나?

프로젝트는 매번 운이 된다

책임은 공중에 뜬다

수정은 감정 싸움이 된다

일정은 막판에 폭발한다

그 비용은 야근과 번아웃으로 지불된다


그리고 매칭이 커질수록 이 현상은 더 빨라진다.
연결이 쉬워진 만큼 비교가 빨라지고, 비교가 빨라진 만큼 가격이 눌리고, 가격이 눌린 만큼 체계에 투자할 여력이 사라진다. 그 사이에서 에이전시는 더 얇아지고 더 예민해진다.


4) 그럼 내가 하고 싶은 건 “새로운 대행사”가 아니라, 체계를 파는 일이다

여기서 나는 도망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 체계를 만들면 되잖아?”
맞다. 그런데 체계를 말로만 만들면 결국 또 하나의 대행사다.

그래서 나는 체계를 ‘문화 캠페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체계를 상품으로 만들고 싶다.
누가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방식, 즉 “프로젝트가 망하지 않는 장치”를.

브리프를 1페이지로 고정하고

체크포인트로 중간 합격선을 만들고

리스크 로그로 수정·일정·추가비용을 기록하는 것


이건 관리가 아니라 불안을 비용으로 바꾸는 장치다.
불안이 줄어들면 실험이 가능해진다.
실험이 가능해지면 크리에이티브가 살아난다.

나는 지금이 “대행사가 하나 더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행사 문법을 바꿔야만 살아남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매칭이 에이전시를 어렵게 만든 게 아니다.
매칭은 단지 더 빨리 보여줬다.

체계 없는 에이전시는 오래 못 간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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