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괜찮은지. 내가 제대로인지. 내가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는지.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아직 부족해.”
부족하다는 말은 참 편리하다.
실패를 설명할 수 있고, 불안을 정당화할 수 있고, 미루는 나를 합리화할 수 있다.
“내가 부족해서”는 거의 만능 변명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만능 변명을 오래 쓰면 삶이 한 방향으로만 굳는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점수를 매기고,시작하기 전에 이미 반성하고,
시작하기 전에 이미 사과한다.
나는 일상에서도 늘 ‘평가 모드’로 산다.
커피를 한 잔 마시다가도 생각한다.
이 시간을 이렇게 써도 되나?
누군가는 지금 더 열심히 살 텐데.
나는 왜 이렇게 집중이 안 되지.
왜 이렇게 의욕이 없지.
운동을 하다가도 똑같다.
열심히 하는데도 부족하고, 쉬면 더 부족하다.
부족함은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마음의 기본값 같다.
문제는, 부족하다는 감각이 너무 익숙해지면
내가 가진 것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해낸 건 “원래 해야 하는 것”이 되고,
내가 못한 건 “역시 나는”이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장면을 보았다.
나보다 훨씬 능숙해 보이는 사람이, 나보다 더 불안해 보였다.
이상했다. 나는 늘 “능력”이 부족함을 해결해줄 거라 믿었는데,
그 사람은 충분히 가진 것처럼 보이는데도 모자라 보였다.
그때 처음으로 의심했다.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내 삶의 기준이 과한 건 아닐까.
부족함은 사실 비교에서 자란다.
어제의 나와 비교하고, 남의 속도와 비교하고, 미래의 나와 비교한다.
그리고 비교의 끝에서 나는 늘 지는 쪽을 고른다.
왜냐하면 지는 쪽을 골라야 내가 계속 움직일 것 같아서.
내가 더 노력할 것 같아서. 내가 멈추지 않을 것 같아서.
부족하다는 말은 나를 채찍질하는 언어인데,
문제는 채찍이 오래되면 다리를 먼저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계속 뛰게 만들긴 하지만, 결국은 멈추게 만든다.
그래서 요즘 나는 부족함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대신 부족함의 자리를 바꿔보려고 한다.
부족함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없을 것이다.
아마 그건 내 성격이고, 내 기질이고,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부족함은 내가 나쁜 사람이라서 생기는 게 아니라,
내가 잘 살고 싶어서 생기는 감각이라는 걸.
그러니 앞으로는 부족함을 이렇게 써먹으려고 한다.
부족하다는 말이 올라오면, 그 말이 가리키는 방향만 확인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을 한다.
메일 한 통. 정리 한 줄. 걷기 10분. 물 한 컵.
내가 내 삶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가능’을 만드는 것.
어쩌면 어른이란,
부족한 채로도 하루를 굴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완벽해져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부족하다는 감각과 함께 살면서도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내 일상엔 여전히 ‘내가 부족하다’가 붙어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문장 뒤에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