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I·Relevance·Originality·Impact
대행사에서 QA라는 단어를 쓰면 보통 이런 것부터 떠올린다.
오타, 정렬, 컬러, 해상도, 폰트, 납품 포맷, 법무 체크.
근데 솔직히 말하면, 그걸로 프로젝트가 망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오타가 없어서 망한다.
정확히는, 오타도 없고 영상도 깔끔한데 문제를 못 풀어서 망한다.
나는 그걸 “깔끔하게 망한다”라고 부른다.
실패는 늘 더 앞에서 난다.
제작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끝난다.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다.
클라이언트는 “브랜드 인지 올려야 한다”고 했다.
회의는 길었고, 결론은 빨랐다.
“요즘 감성으로, 깔끔하게. 레퍼런스는 이런 느낌.”
제작은 빨리 진행됐다.
PD는 성실했고, 디자이너는 센스 있었고, 카피도 무난했다.
러프가 나왔을 때 다들 말했다.
“좋네요.”
파이널도 좋았다.
근데 결과가 없었다.
조회수는 나왔는데, 행동이 없었다.
문의도 없고, 전환도 없고, 공유도 없고, 기억도 남지 않았다.
제작이 문제가 아니라, 기획이 문제였다.
우리는 ‘인지’를 목표라고 말했지만, 사실 인지는 목표가 아니었다.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왜 바뀌어야 하는지, 그래서 어떤 행동을 유도할 건지—
그 질문이 한 번도 잠기지 않았다.
그래서 영상은 “좋은 영상”으로 끝났고, 캠페인은 “좋은 납품”으로 끝났다.
그리고 ROI는 없었다.
대행사 문화에서 가장 많이 생략되는 질문이 있다.
이 캠페인의 진짜 문제는 뭐지?
고객이 바꾸고 싶은 행동은 뭐지?
그 행동을 바꾸는 **근거(인사이트)**는 뭐지?
이 아이디어는 **돈/성과(ROI)**로 연결될까?
이 질문이 잠기지 않으면, 제작은 결국 레퍼런스 조립이 된다.
그리고 레퍼런스 조립은 대부분 “무난함”을 만든다.
무난함은 욕먹지 않지만, 움직이게 하지도 않는다.
성과지표가 뭐지? (가입/구매/문의/방문/지원 등)
그 성과가 이 아이디어에서 어디서 발생하지?
지표가 없으면 좋은 영상이어도 “좋은 영상”일 뿐이다.
타겟의 장벽은 뭐지?
우리가 던지는 메시지가 그 장벽을 넘나?
브랜드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타겟이 듣고 싶은 말인가?
남들도 할 수 있는 말/구조인가?
레퍼런스의 조합인가, 문제의 각도에서 나온 발상인가?
“예쁘다”가 아니라 “기억된다”로 가는가?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게 되는가?
공유/참여/전환을 만드는 트리거가 있는가?
태도 변화가 아니라, 행동 변화로 떨어지는가?
이 네 가지가 통과되면 제작은 쉬워진다.
반대로 이 네 가지가 통과되지 않으면, 제작이 아무리 좋아도 흔들린다.
수정이 늘고, 결정이 늦고, 마지막에는 “오늘 안에 가능해요?”만 남는다.
문제정의 1문장
타겟 장벽 1문장
바꾸고 싶은 행동 1문장
성공지표 1문장
이 네 문장이 잠기면, ‘느낌’이라는 단어는 힘을 잃는다.
대신 결정이 빨라진다.
결정이 빨라지면 일정이 산다.
일정이 살면 수정이 줄고, 수정이 줄면 사람도 산다.
“좋다/나쁘다”가 아니라,
이 아이디어가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가 보이느냐로 판정한다.
오타, 포맷, 권리, 납기.
이건 본질이 아니라 마지막 안전벨트다.
본질은 앞에서 이미 통과돼 있어야 한다.
나는 광고를 오래 보면서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됐다.
대부분의 야근은 성실함이 아니라 기획 부재의 비용이다.
대부분의 수정은 퀄리티 욕심이 아니라 문제정의 부재의 결과다.
대부분의 “좋은 납품”은 좋은 결과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오타를 잡기 전에, 문제를 잡는다.
크리에이티브 QA는 결국, 기획 QA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