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의 회사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딸은 미국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졸업과 함께 미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L사에 입사했다. 배터리를 주로 생산하는 제조업체로, 입사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첫 월급이라며 천 달러를 보내왔다. 요즘처럼 환율이 높은 시기라 적지 않은 금액이었고, 그보다도 ‘이제 아이가 스스로 벌어 내게 돈을 보낼 만큼 자랐구나’ 하는 마음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날은 괜스레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도 하며, 부모로서의 보람을 느꼈다.
회사에서는 점심을 저렴하게 제공했고, 한식 메뉴도 자주 나왔다고 한다. 낯선 타국에서 익숙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큰 위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딸의 목소리에는 점차 피로감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회사 문화가 예상보다 훨씬 한국적이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미국 현지 법인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수직적 구조와 빠른 의사결정, 강한 충성심을 중시하는 한국식 문화가 더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법인장과 주요 의사결정자는 대부분 한국인이었고, 이들은 비교적 독단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방식에 익숙했다. 이런 구조는 위기 대응 속도나 효율성 면에서는 강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딸에게는 버거운 환경이었다.
정시에 퇴근하면 “일을 다 끝내고 가느냐”는 질문을 듣거나, “다른 사람은 야근하는데 왜 먼저 나가느냐”는 식의 분위기 속에서 눈치를 봐야 했다고 한다. 여전히 개인보다 조직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 속에서 삶과 일의 균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메신저 업무 지시가 시도 때도 없이 이어졌고, 마음의 여유를 갖기가 어려웠다.
한국 본사의 성공 모델은 빠른 성장, 강한 실행력, 높은 충성도에 기반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미국은 개인의 권리, 직무 자율성, 다양성, 공개적 피드백, 문서화된 절차를 더 강하게 요구한다. 이 차이를 충분히 조정하지 않으면, 한국에서는 통하던 방식이 미국 내 조직에서는 곧바로 조직문화 문제로 인식되어 우리 딸과 같은 인재가 이탈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딸이 대학 시절, 여름방학 동안 미국의 한 식품 제조업체에서 인턴으로 일했을 때 생각해 보면 딸이 이런 문화에 적용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딸이 매니저는 늘 자율성을 강조하며, 인턴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발견하면 함께 논의하고, 해결 과정을 스스로 설계해보게 했다. 모르는 점은 차근히 알려주었고, 작은 성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수에는 따뜻한 피드백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었다.
근무시간도 엄격하게 관리되어 하루 8시간을 철저히 지켰고, 10분만 더 일해도 오버타임 수당이 지급되었다. 야근은 되도록 줄이는 문화였다. 그런 환경 속에서 딸은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일했다고 했다. 토요일에도 자발적으로 나와 일을 하며 “일이 정말 재미있다, 내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이런 조직을 경험한 딸은 한국 회사에 입사하면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고 싶은지, 어떤 가치로 일하고 싶은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로서 옆에서 모든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그저 믿고 지켜보려 한다. 세상의 다양한 조직문화를 몸소 경험하며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그 과정 자체가, 한 사람으로서의 커다란 성장일 테니까.
그리고 얼마 전, 딸은 한국 회사를 떠나 독일계 미국 자동차 반도체 기업으로 이직했다. 이번 회사는 딸이 꿈꾸던 일하는 방식을 갖춘 곳이라고 했다. 스스로 일정을 조율할 수 있는 자율적인 분위기, 시간을 채우는 대신 결과로 자신을 증명하는 문화, 개인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워라밸을 존중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물론 자율이 보장된 만큼 책임도 그만큼 무겁다. 결과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에, 딸은 “이제는 회사에서 내 자리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래야 내가 이 조직에서 살아남는다" 말을 자주 한다. 한국 회사에 있을 때는 그런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자율이라는 경쟁을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요즘 전화를 하면 예전처럼 피곤한 기색이 없다. 전보다 목소리가 한결 차분하고 평온하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에게 맞는 자리에서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부모로서 그 목소리 속의 안정을 듣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