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즈상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
오늘 유퀴즈를 봤는데 세계 11대 난제를 푼 허준이 교수님이 나왔다.
수학자라는 그 수식어를 처음 봤을 땐 나와는 아득히도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의 인생도 별다를 것 없었고,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더라.
똑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 나와 똑 닮았다.
학문은 언제나 정직을 추구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나 스스로를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라 여겨 많은 날을 혼자 방황해왔다.
항상 예외만을 좇았고, 특별함을 추구했으며 일확천금을 꿈꿨다.
그런 내가 어느 날은 한없이 밉다가도, 또 어느 날은 이해가 되었다.
또 어느 날은, 미워하는 이를 이해하는 나 자신이 가엾다가도 어느 날은,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다. 스스로도 느끼고 있고, 실제로도 다르다.
이렇게 완벽히 다른 사람이 되기까지, 나는 오늘같은 별다를 것 없는 하루를 빠짐없이 살아왔다.
그냥 되더라. 물론 힘들고 슬프고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살아보니까 그냥 되더라.
비록 한 때는 보수공사를 아무리해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내 모습이 덧없다고 느껴졌지만,
그런 날들이 하나하나 쌓여 결국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사실또한 분명하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한없이 구불구불하고 험난해보이는 지금 내 길이, 나에게는 가장 빠른 길이다.
난 우주가 좋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연구하고 싶은 곳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곳.
과학처럼 한없이 이성적인 학문과 철학처럼 한없이 감성적인 학문이 맞닿아 있는 곳.
난 이게 좋다. 이런 역설이 좋다.
그런 역설을 처음 발견하게 해준 인생영화 '인터스텔라'의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한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해석이,
우리는 늘 그랬듯 답을 찾을거라는 메시지가.
어린 머피가 유령이라고 느낀 것이 인류를 구할 열쇠였다는 반전이
좋다.
마찬가지로 허준이 교수가 난제를 풀 수 있었던 이유인
학문이라는 보편적인 틀을 넘어서야만 했다는 사실이 좋았다.
마치 벽인줄 알았던 그 부분이 문이었던 것처럼.
정의하는 것이 직업인 학자가 세상을 정의할 수 없다는 그 말이,
정도와 크기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고민을 하는 그 인간이,
수학자라는 수식어가 그를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되는 내 생각이,
그 편견조차 생각이라고 순화해서 말하고싶은 내 마음이.
수학자라고 마음을 울리는 일을 못할줄 알았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지만
그럼에도 이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심장을 가진 내가 좋았다.
오늘 그 짧은 축사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지만 결국에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나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나라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만큼 세상은 나에게 대답한다.
내가 만약 먼 우주에 생명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내 세상에는 없다.
내가 만약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살아있다고 생각한다면 내 세상에는 살아있다.
그게 인간이 가진 현명함이자 오만함
이 또한 역설.
지금까지 살아온 내가 모여 먼 훗날의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고 실감나지 않으면서도 설레어서 심장이 마구뛴다.
오늘 베푼 친절이 내일, 어쩌면 먼 미래에 존재하지도 않는 나에게 도달할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을 위해 사는 것. 사랑하며 사는 것.
나의 사랑을 소중히 여기고 베푸는 것이다.
내 삶은 나만이 정의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07년도 여름에 졸업한 수학자 허준이입니다.
우리가 팔십 년을 건강하게 산다고 가정하면 약 삼만 일을 사는 셈인데, 우리 직관이 다루기엔 제법 큰 수입니다.
저는 대략 그 절반을 지나 보냈고, 여러분 대부분은 약 삼 분의 일을 지나 보냈습니다.
혹시 그 중 며칠을 기억하고 있는지 세어 본 적 있으신가요?
쉼 없이 들이쉬고 내쉬는 우리가 오랫동안 잡고 있을 날들은 삼만의 아주 일부입니다.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라는 세 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주고 있습니다.
마무리 짓고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 졸업식이 그런 날 중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하루를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학위수여식에 참석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 중 하나가 졸업 축사가 아닌가 합니다.
우연과 의지와 기질이 기막히게 정렬돼서 크게 성공한 사람의 교묘한 자기 자랑을 듣고 말 확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겁이 나서, 아니면 충실하게 지내지 못한 대학 생활이 부끄러워 십오 년 전 이 자리에 오지 못했습니다만,
여러분은 축하받을 만한 일을 축하받기 위해 이를 무릅쓰고 이곳에 왔습니다.
졸업식 축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십몇 년 후의 내가 되어 자신에게 해줄 축사를 미리 떠올려 보는 것도, 그 사람에게 듣고 싶은 축사를 지금 떠올려 보는 것도 가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당연하게 떠오르는 말은 없습니다.
지난 몇천 일, 혹은 다가올 몇천 일간의 온갖 기대와 실망, 친절과 부조리, 행운과 불행, 그새 무섭도록 반복적인 일상의 세부 사항은 말하기에도, 듣기에도 힘들거니와 격려와 축하라는 본래의 목적에도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구체화한 마음은 부적절하거나 초라합니다.
제 대학 생활은 잘 포장해서 이야기해도 길 잃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똑똑하면서 건강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주위 수많은 친구를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은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잘 쉬고 돌아오라던 어느 은사님의 말씀이, 듬성듬성해진 성적표 위에서 아직도 저를 쳐다보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 듣고 계신 분들도 정도의 차이와 방향의 다름이 있을지언정 지난 몇 년간 본질적으로 비슷한 과정을 거쳤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더 큰 도전,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고, 끝은 있지만 잘 보이진 않는 매일의 반복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힘들 수도, 생각만큼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거부하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진짜 꿈을 좇아라.
모두 좋은 조언이고 사회의 입장에서는 특히나 유용한 말입니다만, 개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여러분은 이미 고민해봤습니다.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줍니다.
취업, 창업, 결혼,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정신 팔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오래전의 제가 졸업식에 왔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고민했습니다만 생각을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그가 경험하게 될 날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가슴 먹먹하게 부럽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선물할 어떤 축사를 떠올리셨을지 궁금합니다.
수학은 무모순이 용납하는 어떤 정의도 허락합니다.
수학자들 주요 업무가 그중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것인데, 언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가능한 여러 가지 약속 중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끌어내는지가 그 가치의 잣대가 됩니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하니 들뜬 마음에 모든 시도가 소중해 보입니다.
타인을 내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먼 미래의 자신으로, 자신을 잠시지만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함께하고 있는 타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졸업생 여러분, 오래 준비한 완성을 축하하고, 오늘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합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주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OLDhaqosPtA?si=a2tnitCZBu2Z0IZ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