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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Nov 27. 2022

한 50대쯤 언니의 1순위가 되고 싶다

"언니야, 나 50대쯤 되면 언니의 1순위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왜?"


"지금은 미래를 위해서 일이 먼저인 게 맞는 것 같고.. 나중에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돼서 여유가 생겼을 때, 그때 내가 언니의 첫 번째면 좋겠다."


평소처럼 저녁을 먹으면서 티비에서 방송하는 연애 프로를 보다가 장난스럽게 밭은 말.


"내 1순위는 엄만데? 그다음에 너. 아마 나이 먹고 우리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나면 그때부터는 너가 1순위지."


당연히 무시당할 줄만 알고 말해보았는데 언니가 약간의 진심이 담긴 톤으로 응답해서 당황스러운 나.


"...언냐 나 왜 이렇게 설레지?"


"ㅉㅉ."




일상적인 순간순간의 설레임.


목 깊은 데가 조이는 느낌.


언니가 한 한마디. 언니의 표정. 언니가 해준 행동.


오늘도 나는 "언니 컬렉션"을 내 머릿속에 있는 서랍에서 꺼내어 재생 버튼을 누른다.


가끔 기계적으로 들리기도 하는 사랑한다는 말보단 평소와 조금 다른 목소리의 톤으로 미래 얘기를 할 때, 편안한 모습을 보여줄 때, 무의식적으로 아침 잠결에 안아줄 때,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향하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하나뿐인 인생, 약속된 것도 당연한 것도 무조건적인 것도 없는 우리의 인생.


어떤 순간에도 존중하고, 끊임없이 고마움을 표현하고, 계속해서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아낌없이 전할게.




내 삶에서 한 단어로만 설명되는 것은 없었다.


재일교포 4세인 나는 두 개의 국적을 가지면서 어렸을 때부터 어디에 있어도 "애매한" 존재였다.


그리고 10대부터 20대까지 내가 매력을 느끼는 상대의 성도 다양했다. 남녀 상관없이 그 사람만의 매력에 끌렸고 내가 고백을 받은 상대도 남자인 친구도 있었고 여자인 천구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것은 나에겐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관계든, 감정이든, 섹슈얼리티든, 뭐든 한 단어로만 깨끗이 설명할 수가 없었던 삶.


나는 이런 완전하지 않고 산만한 것들이 좋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어떠한 '틀'이라는 것은 나에겐 언제나 경계선 위에서 긴장감이 있게 다가오고, 언제나 불안정하다.


애매모하고 불안정한 요소들이 오히려 더 탄탄함을 만들어내며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나의 일상의 동력이 되어주는 마법 같은 언니의 말.  


내가 받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아는 언니가 과도함 없이 필요로 할 때만 주는 한마디.


시간이 지나도 환경이 바뀌어도 변형하면서 유목적으로 살아갈 우리의 삶.


산만하고 애매모한 조각들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우리의 완전한 삶의 형태로 빛을 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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