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자취하며 작은 신촌 원룸에 살았었던 나는 지금은 언니와 강아지 5마리와 함께 살만한 투룸에서 살고 있다.
컵밥이나 라면 등 편의점 음식을 주로 먹었었던 나는, 언니와 살면서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먹게 되었다.
냉장고에는 1박스씩 사놓은 탄산수와 사과쥬스, 그리고 조금의 김치만 있는 게 다였는데, 지금 우리 집 냉장고는 파악이 다 안 될 정도로 음식이나 조미료, 반찬 등으로 꽉 차 있다.
나는 원래 거의 "혼밥"만 해왔어서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노는 것을 잘하는 편이고, 언니는 혼자면 밥을 잘 안 먹는 사람이다.
언니로 인해 한국에는 이렇게나 맛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함께 저녁을 먹는 반복되는 평범한 시간이 이렇게나 나의 고단한 하루하루의 유일한 휴식 시간이 됨을 느끼게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좋고 나만의 결정이 중요했던 시기와 달리, 지금처럼 끊임없이 제안을 주고받는 것이 나를 더욱 편안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언니와의 시간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같이 산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매 순간이 배려의 연속이다.
우리 아빠가 옛날에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가족이든 부부든 타인은 "외계인"이야. "같은 일본인"이라거나 "같은 지구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나와 타인은 "금성인"이랑 "화성인"인 거야. 그러면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게 돼. "정답"은 모두에게 있는 거니까 타인을 바꾸려고 하지마. 그러면 네가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거야.
언니랑 나는 365일 동안 거의 붙어 있어도 큰 싸움이 안된다. 작은 실수로 인해 1년에 3번 정도 크게 소리를 내면서 주장할 때는 있어도 그것이 우리의 관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만약에 부딪히더라도 그럴 때마다 서로의 입장이 당연히 있으니 누가 뭘 어떻게 잘못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원인이 무엇이든 어떤 상황이 든 간에 늘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어떤 미래를 살고 싶은지, 그리고 언니와 앞으로 어떤 관계로 있고 싶은지"에 대해서 집중을 하려고 노력한다.
만약에 그 사람이 소중하고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다고 판단이 된다면, 속상한 감정과 목소리가 동시에 커지는 상황에도 "상대가 뱉은 말"자체에 꽂히면 절대로 안된다.
감정도 그 배경이나 상황과 너무나도 엉켜있기 때문에 "뱉은 말"자체에 초점을 맞춰버리면 상대도 나도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하게 되고 쓸데없이 큰 상처를 받게 되기 마련이다.
"지금 내가 어떠한 결과를 얻고 싶은지"에 대해서 집중을 해보면 내가 그 상황에서 해야 할 말도 저절로 정해질 때도 많다. 그리고 꼭 하고 싶은 얘기는 며칠 뒤에 서로가 마음이 편안해졌을 때 해도 늦지 않다는 것도 안다.
다음 날에는 꼭 내가 아니면 언니가 먼저 아침 인사를 카톡으로 보낸다.
"잘 잤어?"
"어."
이 말을 보면 나는 평소와 같이 웃음이 나온다. 표현을 안 해도 어떤 마음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몇 년이 지나도 확실하게 표현해주는 언니에게 너무너무 고맙다.
싸움이 안 되는 이유는 어느 한쪽이 "착해서"도 아니고 "참아서" 그런 것도 아닌 서로가 얻고 싶은 것이 같은 방향에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