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은 제가 첫 사회 생활을 시작한 해입니다. 그리고 그 해엔 IMF 사태가 있었습니다.
대기업이 도산하고, 은행 불패의 신화가 막을 내렸습니다. 성실하게 살아왔던 많은 이들이, 아무런 대책없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회사를 간다고 나온 넥타이 맨 아버지들이 구두를 신고 산을 올랐던 시대였습니다. 절망을 견뎌내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어 살아내야 했던 어려웠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우리는 다시 어려운 시기를 겪어내고 있습니다. 저주스러운 코로나는 우리 삶을 깊이 후벼파며, 긴 상처 자국을 남기고 일상을 관통해 갑니다. 언제쯤 마스크 없이 우리는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될까요.
코로나가 1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IMF때와 다른 점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첫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자발적인 '금모으기 운동' 같은 움직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IMF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장롱 깊이 숨겨 두었던 금반지와 금열쇠, 목걸이를 꺼내 들고 모였습니다. 국가를 위해 사재 털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들, 자신의 작은 헌신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국민의 대다수였던 시기였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 극복을 위한 사회 운동, 공동체적 움직임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 합니다. 'FOMO'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식 투자에 뛰어들도록 만들 뿐입니다. '착한 건물주 운동'은 개인의 선의에 기대할 뿐, 제도적으로도 사회적인 압력으로도 확대되지 않고 휘발되어 버렸습니다. 착한 건물주를 만난 일부 운 좋은 자영업자와 그들의 사정을 부러워하는 대다수의 자영업자를 양산해 놓고서 말입니다. 재난은 여전히 '사회적'인 것이지만, 재난의 극복은 스스로 해결해야 할 '개인적'인 문제가 된 것입니다. 코로나라는 재난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각자도생'이라는 철학이 지배하고 있음을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재난 앞에서 우리는 어디서도 도움을 얻지 못하고,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둘째, IMF 때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비교적 비슷한' 수준의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물론 그 때도 강남의 지하 술집에서는 "이대로!"를 외쳐대던 인생들이 있었더랬죠.) 차이야 물론 있었겠습니다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국민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어려움은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는 재난 마저 불평등하게 작동하는 세상이 되었음을 증언합니다. 이 시기에 오히려 급성장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가계 재정이나 소득 상황에 어려움이나 부정적인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반면에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아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일상이 끝나버린 분들 역시 엄청나게 많습니다. 각자의 삶에 코로나가 낸 생채기와 상처는 너무나 다양하고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바이러스라는 동일한 재난의 상황에서 누군가는 더 많이 아프고, 더 견디기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재난 불평등>의 저자 '존 머터'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지구환경학부 교수입니다. 지진의 원인과 파동의 전파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인 저자는 2005년 미국 남부를 강타하며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꼽히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그 이후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불공정한 미국 사회의 이면을 목도한 후 연구의 방향을 바꿉니다. "재해를 이해하려면 필연적으로 사회 과학의 세계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 저자는 이를 '파인만 경계' 라고 부릅니다.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리처드 파인만 교수가 그 질문은 과학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연대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저자가 만든 용어입니다 - 재난 불평등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재난이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첫 번째 국면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의 국면입니다. 사회적으로 예상되는 재난에도 대비하지 않거나 잘못 대비해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국면은 사건 그 자체입니다. 홍수,지진, 태풍 등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자산을 망가뜨린 재난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가장 적나라하게 중계되는 국면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국면은 재난 이후, 재난이 지나가고 몇 주, 몇 달 혹은 몇 년 후를 포괄하는 시기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떨어지고 대중이 망각하는 시기입니다. 언론은 짐을 싸서 재난 현장을 떠났고, 손실 규모도 책정됐고, 사망자 집계도 끝난 상황이죠. 사람들은 다시 먹고 살 길을 찾고, 사회는 재난 이전으로 돌아가 이전과 비슷하게 작동하려 하는 국면입니다.
재난의 각 국면에서 고통이 얼마나 불평등하게 일상을 덮치는지 저자는 통렬하게 고발합니다. 재난마저 돈벌이 기회로 악용하는 권력과 자본의 힘을 까발립니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부정의'를 고발하는데 저자는 주저함이 전혀 없습니다. 재난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자연재해마저 부익부빈익빈을 가중시키는 현실을 아프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재난 당 사망자 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