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사 중 가장 흔한 클리셰입니다. 서로를 알아가며 점점 호감을 느끼던 두 남녀 주인공을 다시 갈등으로 멀어지게 만들고, 악당으로만 여겨졌던 캐릭터가 주인공에게 쏟아붓는 대사를 통해 관중에게 소리치는 항변이기도 합니다. 라이벌인 두 주인공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향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대사이기도 하구요.
드라마의 주인공 뿐이겠습니까? 날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도 몇 번이나 저 대사를 되뇌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대놓고 얘기했던 기억이던, 아니면 차마 말하지 못해 속으로만 생각했던 투덜거림이던 말입니다.
그런데, 저 대사는 나에 대한 '비우호적 평가'에만 해당됩니다. 우호적이며 과분한 평가에 우리는, 사람좋은 미소를 띄며 겸양을 내 보이지 으르렁대며 이빨을 드러내진 않습니다. '으쓱'하고 올라간 어깨는 여간해서 내려가지 않고, 다른 지인들에게 내가 받은 우호적인 평가를 슬그머니 자랑하기도 합니다. "나에게 인상이 나쁘지 않았었나 봐. 그 분이 잘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긴 한데, 나에 대해서..." 이렇게 말입니다.
요컨대 여러분과 저는 친한 친구의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마. 나나 되니까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라는 조언에, 주억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릴지라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방법을 찾지 못한 동물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좋은 평판을 얻고 싶다면 평판 같은 것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인색한 평가에는 '발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좋은 평가는 못 이기는 척 '수용'하지만, 나쁜 평가에는 '반발'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우리가 평가하는 주체가 되었을 때는 어떨까요? 그 때는 우리는 전혀 다른 동물이 됩니다.
'선거'를 생각해 볼까요? 정치과학자들은 투표를 '수단'으로 보는 유권자와 '표현'으로 보는 유권자로 구분합니다. 전자는 투표를 '이익 추구 활동'의 일환으로 보는 반면, 후자는 투표를 '선호와 가치'의 문제로 봅니다. (영국의 정치학자들은 '브렉시트'를 표현이 수단을 누른 대표적 사례라고 봅니다.)
조너선 하이트는 인간의 의식적 자아를 거대한 코끼리 등에 올라탄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코끼리를 원하는 대로 통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성'으로 방향을 지시하는 기수와 달리 코끼리는 '감정'을 좇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도 공정한 평가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배경과 맥락에 대한 정보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에는 상당한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득이 있다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저 사람은 원래 저렇게 무례하고 옹졸하며, 속은 좁아 터진 데다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일 뿐인데' 말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지야드 마라'의 <평가받으며 사는 것의 의미>라는 책은 저를 이해하고 인정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온라인에서 저의 활동'에 대해 좀 더 자유로워졌고, 부담감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글을 읽게 되실 '여러분'의 눈치를 보고 있는 평가받는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로부터 평가받고 또 다른 사람을 평가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남과의 비교를 전제로 최고의 모습을 뽐내는 사람들이 가득한 온라인 세상을 들여다 보면서 자신감을 갖기란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타인의 평가에 대한 스스로의 반응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그에 대한 민감도를 조금씩 낮추면서, 조금 덜 으쓱해하고, 조금 덜 열받아 하는 자세와 훈련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라 로슈푸코는 "타인이 나에게 호의를 갖길 원하는 단순한 마음에 타인의 평가에 연연한다면 내 마음의 평화와 삶의 방식이 위태로워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뿐이겠습니까?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의 후속작의 제목은 <남이야 뭐라 하건 what do you care what other people think?>인데, 파인만 교수가 부인인 알렌과 대화하던 중 그녀가 타인의 시각에 너무 휘둘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붙인 것이라고 하네요.
또한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도, 가능하면 평가 자체를 유보하고 그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타인에 대해 쉽게 내리는 평가는 간편하지만, 지독히 게으른 일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지루한 사람은 없고',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선입견을 하나씩 거둬들이는 일(안소니 스토르/브라이언 매기 <칼 포퍼> 중)'이기 때문입니다. 정현종 시인의 말처럼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고, 그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입니다.
평가받는 입장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타인을 너무 의식하면 행복해지는 데 지장이 있다는 말인데, 그게 이해는 되도 쉽게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저는 다른 사람의 평판 때문에 내 기분과 행복감이 영향을 받는다고 인정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을 쓴 '개리 콕스 Gary Cox의 말을 빌리자면, 평가는 천국이자 지옥이고, 갈구의 대상이면서 혐오의 대상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줍니다.
최소한 저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평가에 연연해하지 않아요"라는 말로 제 감정을 숨기고, 혹시나 있을 나쁜 평가를 미리 방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더 부담이 없게 되었다면 도움이 좀 되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