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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Feb 12. 2023

<성스러운 거미>, 악습이라는 거미줄

목을 졸라도 되는 여성은 없다.

영화 <경계선>으로 유명한 '알리 압바시'의 신작 <성스러운 거미>를 보았습니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성매매 여성 16명을 살해한 '사이드 하네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사이드 하네이는 성매매 여성들을 그녀들이 두르고 있던 차도르(이슬람 베일의 일종)로 목을 조르고 차도르로 감싸고 길거리에 유기한 살인마입니다. 그는 이런 살인 수법 때문에 '거미 살인마'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거미도 자신의 먹잇감을 먹기 전에 거미줄로 칭칭 감아놓기 때문이죠.




굉장히 힘들게 제작된 영화입니다.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의 투자를 받은 영화이지만 촬영은 실제 사건이 발생한 이란에서 촬영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계획이 불발되고 요르단으로 촬영지를 옮겼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수없이 촬영이 연기되었습니다. 나중에 터키로 촬영지를 옮겼지만 이마저 당국의 방해로 촬영이 중단됩니다. 결국 다시 요르단으로 돌아가서 2021년 5월부터 다시 촬영하여 제작에 완성합니다. 제75회 칸 영화제에 경쟁작으로 초청되었고 첫 상영에서 7분 동안 기립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고군분투하는 여기자 '라히미'역을 맡은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이는 이란 여배우로써 최초입니다.




<성스러운 거미>는 꽤 대담한 영화입니다. 보통 살인마를 다루는 영화의 경우 살인마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숨기곤 하는데 이 영화는 드러내며 시작합니다. 살인마를 추적하는 여기자의 이야기인 것처럼 시작하지만 영화의 상당 부분을 거미 살인마 '사이드'의 삶을 보여줍니다. 흡사 살인마의 삶을 해체하려는 듯이 말이죠. 이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받는 탄압뿐만 아니라 현재의 끔찍한 상황을 만든 사회상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사이드의 삶을 파고들며 악의 근원을 찾아내고 밝혀내려고 합니다. 영화 자체가 살인마의 심리를 추적하는 프로파일러 같달까요.(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가만히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따라가며, 흔들리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성스러운 거미>는 풍부한 함의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여성을 탄압하는 사회를 고발하는 것을 넘어서 맹목적인 믿음과 신념(혹은 종교)에 관한 허위와 무용까지 담아냅니다. 영화에 결말에 다다르게 되면 우리를 구원할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이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그러니까 사이드는 자신의 믿음 때문에 정작 가장 소중한 가족을 보지 못한 것이죠.) 하지만 정작 사이드가 아들에게 남긴 것은 여성을 살해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합니다. 결국 여성을 향한 탄압이 쳇바퀴처럼 대물림될 것을 암시하는데, 묵직한 서늘함이 느껴집니다.(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자신의 여동생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카메라의 인상적인 활용도 보이곤 합니다. 영화에서 수위 높은 폭력 장면이 다수 등장하는데 카메라가 직접적으로 보여주다가 어느 정도는 생략을 가합니다. 끔찍한 폭력 상황을 묘사하여 관객에게 느낌을 전달하되 피해자의 최소한의 예우는 갖추는 것이죠. 다만 사이드의 처형 장면은 생략을 하지 않고 롱테이크로 담아냅니다. 시종일관 사이드를 추적하며 움직였던 카메라가 이때만큼은 죄의 응징을 확실하게 하려는 듯 가만히 있습니다.




다만 여성을 위협하는 잠재 요소, 현재 사회에 대한 비판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메시지가 너무 뚜렷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물론 중요한 메시지를 담아내고 전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야기는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이야기를 지나치게 제거하고 메시지에 집착하게 되면 영화에 메시지만 앙상하게 드러납니다. 이렇게 되면 영화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전락합니다. 영화 <성스러운 거미>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살짝 아쉬움이 남습니다.


<성스러운 거미>에서 여기자 '라히미'를 연기한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의 연기도 인상적이지만 거미 살인마 '사이드 하네이'를 연기한 '메흐디 바제스타니'가 더욱 눈에 띕니다. 대배우 마이클 케인의 말처럼 '배우는 눈을 파는 직업'일 텐데, 이 영화에서 메흐디의 눈은 (좋은 의미로) 광기를 담아 빛납니다. 또한 비웃음을 탁월하게 연기하며 비참한 현대 사회의 자화상까지 보여줍니다. 이 배우의 표정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을 넘어서 소름 끼치는 느낌까지 전달하네요.




결국 영화가 끝나면 이란 여성들이 하고 있는 '차도르'는 단순히 얼굴을 가리는 수단이 아니라 살인마의 교살 도구이며, 여성들의 목을 조르는 사회를 의미합니다.(영화 제목이 나타나는 장면에서 도시의 전경이 펼쳐지는데 흡사 도시 자체가 거미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목을 졸라도 되는 여성은 없습니다. 한 인간을 심판하는 것은 법이나 (만약 존재한다면) 신이 할 역할이지, 개인의 역할을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악습의 근원을 도려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면서 비참하게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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