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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Feb 14. 2023

<애프터썬>, 뭐든지 이야기하라고 했으면서

왜 아빠는 다음에 못 볼 사람처럼 이야기했을까.

끝나도 계속 달라붙는 영화가 있다. <애프터썬>이 그렇다.




샬롯 웰스 감독의 탁월한 데뷔작 <애프터썬>은 영화가 끝나도 깊은 감정적 여운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영화는 아빠의 딸의 여행을 다루고 있음에도 사실 별사건이 없다. 그저 딸과 아빠가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나 적당히 놀고, 적당히 먹고, 가끔씩은 싸우는 것이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프터썬>은 기억을 다루는 방식을 통해 캠코더의 기록, 딸 소피가 기억하는 것, 소피가 보지 못한 것을 묘사한다. 기억의 경계를 문지르고 혼재하여 모호한 암시를 통해 영화는 기억을 이야기한다. 결국 <애프터썬>의 장면은 캠코더 장면을 제외하면 전부 불확실한 기억들뿐이다.




캠코더의 기록은 정확한 기록이다. 확실하게 촬영한 영상물이다. 객관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소피가 등장하며 기억하는 과거의 장면들은 과거임을 말하려는 듯 희미한 질감을 가지고 있다. 소피가 보지 못한 것, 즉 아빠만 등장하는 장면들은 화면을 굉장히 어둡게 하여 실루엣만 묘사하거나 소리를 제거하여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임을 드러낸다. 소피가 잠에 들자 베란다에 나가 아빠가 담배를 피우며 태극권 혹은 이상한 춤을 추는 장면에서 들리는 소리는 오로지 소피의 숨소리뿐이다. 이렇게 영화는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풍부하다.



아빠는 불안한 사람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종종 불안한 행동을 보이곤 한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태극권을 연마하기도 하며, 명상에 관한 책을 읽기도 한다. 사실 캘럼은 아빠 되기에 그다지 성숙하고 강한 사람이 아니다. 체격도 건장해 보이고 말끔해 보이지만 딸을 여동생으로 오해받을 만큼 아직 젊은 사람이다. 영화가 튀르키예의 따스한 햇살을 담고 있으면서도 영화가 어쩐지 불안한 이유이다. 




하지만 소피는 이 사실을 알 수 없다. 일단 소피는 너무 어렸다. 11살이 아빠의 모든 마음을 알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자신에게 더 관심이 많았다. 자신보다 더 나이가 많은 오빠와 언니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세계를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또래 아이와 사랑에 대해 속삭이기도 한다. 그리고 당시 아빠와의 기억은 너무 즐거웠다. 아빠 캘럼은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즐거운 여행을 준비한다. 그러니까 11살의 소피가 아빠의 우울한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은 소피의 잘못이 아니다.

결국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에 더욱 애잔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아빠는 딸과의 여행이 마지막 만남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행복한 여행을 만들고자 했을 것이고 더욱 많은 것을 남겨주고 싶었을 것이다. 딸에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호신술을 가르치는 아빠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실수로 수영 고글을 바닷속으로 빠뜨려서 사과하는 딸의 손을 포근하게 맞잡는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여행 마지막 밤에 도망친 캘럼이 다음날 별일 아닌 듯 넘어가려는 딸에게 꼭 힘주어 사과하는 아빠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아니야, 중요해. 미안해.' 왜 그는 꼭 다음에 못 볼 사람처럼 말했을까. 이 세상에 단둘이 있는 것만 같은 바다 위에서 그런 일 있으면 이야기해달라고 했으면서. 뭐든지 이야기하라고 했으면서.


소피가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캘럼의 생일을 축하하는 장면에서 캘럼은 위에서 정면으로 소피를 내려다보고 있다. 소피는 아빠의 생일을 축하하며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에서 '소피 정말 사랑해, 그건 잊지 마'라는 엽서와 함께 애런이 처연하게 흐느끼는 뒷모습이 나온다. 소피는 아빠의 정면을 보며 뿌듯함에 환하게 웃었지만 정작 우는 아빠의 뒷모습은 보지 못했다. 왜 그때는 보지 못했는지 현재의 소피는 탄식하고 자책할 뿐이고 기억을 매만지며 간절하게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사랑의 말이 담긴 엽서를 소피에게 보내고 아마 얼마 안 지나 캘럼은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소피는 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상상하지만 결국 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화 중간마다 틈입하는 계속 점멸하는 불빛 아래에서 아빠는 춤을 춘다. 기쁜 모습으로 보이면서 동시에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듯 보인다. 성인이 된 소피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 아마 이 공간은 소피의 꿈속이거나 캘럼이 진정으로 원했던 해방과 자유의 공간일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이르면 퀸의 'Under Pressure'와 함께 춤을 춘다. '이건 우리의 마지막 춤'이라는 가사가 흐르면서 그들은 포옹한 다음 서로 떠나보낸다. 이것은 어쩌면 소피가 간직하는 마지막 기억일 수도, 아빠를 그리워하는 간절함에 따른 상상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소피가 아빠를 만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모든 것이 희미하게 번쩍이는 이 공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나마 아빠를 만나는 소피는 결국 아빠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마지막 캠코더 화면이 끝나면 현재의 소피가 나타난다. 그리고 카메라가 패닝하면 아빠의 모습이 나타난다. 아무것도 없는 복도에 아빠는 가만히 서있다 이내 문을 열고 다시 불빛이 번쩍이는 어둠의 공간으로 사라진다. 아빠는 소피의 꿈속에 여전히 계속 있을 것이다. 다시 찾아가면 아빠의 모습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둠의 공간에서 아빠를 제대로 보기란 힘들 것이고 그때에 대해 물어볼 수도 없다. 이 장면은 영화적 언어로 선언하는 감정적 패배와도 같다.

나는 상상과 연출, 편집, 촬영, 소리 등 영화의 모든 것을 동원하였지만 결국 아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선언.




영화 제목 '애프터썬'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크림이다. 영화에서 아빠가 소피에게 선크림을 발라주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아빠는 딸이 걱정되어 선크림을 발라준다. 혹여나 강렬한 햇빛에 살갗이 탈까 걱정하는 손길일 것이다. 그렇게 그날의 튀르키예의 선연한 햇빛은 아빠가 발라준 선크림 위로 그들의 추억을 아름답게 매만진다. 그리고 현재의 소피는 그때의 햇빛을 떠올리면서 추억을 먹으며 살아갈 것이다. 아빠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딸을 너무 사랑하지만 동시에 나를 놓아버리는 마음은 여전히 어두운 꿈속에 넣어둔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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