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순범 Mar 22. 2023

<파벨만스> 관람 전 보면 좋은 스필버그 영화 4편

스티븐 스필버그만이 만들 수 있는 위대한 영화 <파벨만스>가 3월 22일 개봉한다.


영화 <파벨만스>는 주인공 '새미 파벨만'이 어떻게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다루는 만큼, 스필버그의 삶이 깊게 투영되어 있다. <파벨만스>에서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스필버그의 삶을 전부 알 필요는 없지만 영화 내에서 드러나지 않는 정보도 있어 어느 정도 알고 가면 흥미로운 구석이 꽤 있다. 그래서 그의 삶과 생각을 알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파벨만스>를 보기 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전부 보고 가면 좋겠지만, 사실 그의 영화를 단시간에 전부 보기란 어려운 편이다. 특히 그는 데뷔 이후 거의 쉬지 않고 작업을 해왔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또 다른 거장 '제임스 캐머런'과 다르게 상당히 다작이다.(반면 제임스 캐머런은 '지나칠 정도로' 상당히 과작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파벨만스> 이전 스필버그의 영화 33편 중 4편을 선정하였다.


1. <미지와의 조우> (1977)


만약 <파벨만스>를 보기 전 스필버그의 영화 딱 한 편을 봐야 한다면 나는 이 영화를 추천한다. 영화 <미지와의 조우>는 미확인 비행 물체(UFO)를 목격한 사람들과 그들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정부와 연구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전 작 <죠스>로 초특급 대성공을 거둔 이후 스필버그는 <미지와의 조우>도 대성공을 거두며 입지를 확실히 다진다.(영화 <죠스>는 오늘날 '블록버스터'의 개념을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UFO 그 자체이기보단, 그것을 다루는 방식과 이미지가 중요하다. 특히 <미지와의 조우>에서 문밖의 빛을 향해 서 있는 꼬마의 장면이 굉장히 유명하다. 왜냐하면 이 장면이 스필버그의 영화 세계를 응축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문밖의 빛을 향한 꼬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 그것을 향한 '상상력'과 '불안감'일 것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상상력과 불안감은 스필버그의 세계에서 늘 중요한 원천이자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니까 UFO는 단순히 미확인 비행 물체가 아니라 스필버그를 매혹하는 영화 혹은 예술 세계이다.


그래서 <미지와의 조우>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는 단순한 묘사로 그치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에 묘사되는 열차 충돌은 스필버그가 영화관에서 처음 본 영화 <지상 최대의 쇼>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파벨만스>에서도 열차가 충돌하는 것의 의미가 굉장히 큰 만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또한 "북북서로 가라"라는 대사나 데블스 타워를 묘사하는 방식은 흡사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떠오른다. 새가 죽는 이미지 또한 히치콕의 <새>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더군다나 영화에서 연구원으로 중요한 인물 '클로드 라콤'을 연기한 사람은 히치콕을 인터뷰하여 책까지 낸 '프랑수아 트뤼포'이다. 이처럼 이 영화는 스필버그가 사랑한 영화의 세계가 잔뜩 담겨 있다.


UFO에 매혹되어 가족마저 저버리고 여행을 떠나는 '로이 네리'의 마음을 생각하면 스필버그가 삶과 예술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예술로 인한 가족의 단절은 영화 <파벨만스>에서도 중요하니 우리는 이 마음을 차근차근 헤아려 보면서 스필버그의 생각을 알아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2. <E.T.> (1982)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상처를 안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도 그랬고 그의 대표작 <E.T.>에서도 그렇다. 이는 스필버그가 어릴 적 부모의 이혼이 자신에게 큰 상처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다수이다. 실제로 스필버그의 부모님은 어머니의 외도로 인해 이혼하였다. 영화 <파벨만스>에서도 이 과정이 묘사되어 있는데 흡사 그 시절로 돌아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E.T.>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이 상처를 봉합하는 과정이다. 단순히 희망 가득한 이야기가 아닌 자전거와 달 같은 이미지를 통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을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렇게 우리는 주인공 엘리엇의 마음을 이해하고 포용하기에 이른다. 외계인과 인간의 우정 속에서 싹트는 것은 적대와 증오가 아닌 화합과 관용이었다. 이를 통해 스필버그가 얼마나 예술의 치유력을 믿는 휴머니스트인지 짐작할 수 있다.


영화 <파벨만스>의 주인공 새미 페이블먼(Sammy Fabelman)의 첫 글자를 가져오면 SF가 탄생한다. 스필버그를 매혹한 것은 <지상 최대의 쇼>에서 출발한 스펙터클이었고 SF를 향한 그의 사랑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부터 <레디 플레이어 원>까지 SF의 세계는 스필버그의 스펙터클을 가장 잘 구현하는 장르이자 세계이다. 결국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삶과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일 것이다. 이는 <파벨만스>에서도 꽤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3. <쉰들러 리스트> (1993)


스티븐 스필버그는 유대인으로서 차별을 받아온 사람이다. 특히 캘리포니아 학교를 다닐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그에게 어쩌면 <쉰들러 리스트>는 필생의 과업이었을 것이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그로 인한 차별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은 그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쉰들러 리스트>는 흑백 영화이다. 처음에 왜 흑백 영화인지 모르겠으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 이 영화는 흑백 영화가 아니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잔혹하다. 카메라로 담아낸 홀로코스트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고통을 격렬히 전달한다. 수용소를 향한 기차에 가득 차 있는 유대인 무리를 앵글에 가득 담아낸 장면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숨 막히는 밀폐감으로 가득하다.


결국 스필버그에게 <쉰들러 리스트>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중요한 이유는 영화라는 예술로 차별의 상처를 분노가 아닌 화합으로 치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차별로 인한 결핍과 우울감을 복수로 응징하기보단 화합의 동력으로 삼는다. 어쩌면 스필버그는 삶의 비극보다 영화 예술이 비극을 승화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화합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듯하다.


4.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98)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버지 '아널드 스필버그'는 실제로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며, 스필버그 또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아버지에게 바친다고 하였다. <파벨만스>에서 새미가 그토록 중요하게 찍고자 했던 영화가 전쟁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스필버그는 실제로 15살 때 40분짜리 전쟁 영화 <Nowhere To Go>를 완성하였다.)


어머니의 이혼 후 스필버그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스필버그는 영화학과로 유명한 UCLA로 진학하고자 했지만 성적이 형편없었던 그는 탈락하고 영문학을 전공한다. 하지만 대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였고 결국 중간에 TV 프로그램 제작으로 일을 시작하였다.(이후에 한동안 졸업 안 하고 영화를 만들다가 2002년 대학교 졸업 작품으로 <쉰들러 리스트>를 제출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결국 스필버그는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래서 '아버지'란 존재는 깊게 각인되어 있을 수도 있다. <파벨만스>에서 아버지 '버트'를 묘사하는 방식도 그 당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 위한 스필버그의 자맥질로 보이기도 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쟁 영화의 최고봉으로 앞으로도 이 영화를 뛰어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이 작품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못 받은 것이 최대 유머다.) 현재 나오는 모든 전쟁 영화들의 라이벌은 박스오피스 경쟁작이 아니라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 해도 손색없다. 특히 초반 20분 지옥의 뻘밭 같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지금 다시 봐도 전율이 가득하다.



작가의 이전글 <TAR 타르>, 호령하는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