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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Apr 28. 2023

<존 윅 4>, 액션의 삼라만상

이 세상의 모든 액션을 총집합한 결정체


자신의 개가 죽은 것에 분노해 복수를 시작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4편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처음 <존 윅>을 보고 스턴트맨 출신 감독이 왕년에 잘나가던 액션배우 '키아누 리브스'를 고용해 비교적 저렴한 액션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도 그랬지만 <존 윅>은 다른 영화들과 어딘가 달랐다. 맷 데이먼이 출연한 <본> 시리즈 이후 비슷한 기법으로 남발되던 수많은 액션 영화들과 결이 달랐다.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할리우드 액션의 큰 변환점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2004년 작품 <본 슈프리머시>였다. 그전에 할리우드 액션 영화는 007 시리즈로 대변되었다. 총을 쏘고 터트리고 차로 들이 받았다. 심지어 <본> 시리즈의 초기작인 <본 아이덴티티>도 007 시리즈 액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폴 그린그래스가 메가폰을 <본 슈프리머시>는 시작하자마자 전작에서 그토록 중요했던 여자 주인공을 강물에 빠뜨리고 새롭게 선포한다. 이곳에 새로운 액션의 이정표가 있다고.




<본 슈프리머시>는 '현장감'이라는 액션의 새로운 감각을 선사했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일부로 카메라를 흔드는 셰이키 캠 기법을 적극 활용하여 마치 관객이 그곳에 직접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또한 총이 아니더라도 그곳에 있는 모든 사물이 액션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니까 제이슨 본에게는 둘둘 만 잡지도 흉기였다. 탁월한 카 체이싱 명장면까지 연출한 <본> 시리즈는 <본 얼티메이텀>을 지나 <제이슨 본>까지 감탄사를 저절로 자아내게 했다.


문제는 <본> 시리즈를 기점으로 할리우드 액션 영화가 셰이키 캠을 남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또한 난도질에 가까운 무분별한 편집으로 정신을 사납게 했다. 보통 한 번의 액션에 10번 이상의 컷이 기본으로 포함됐다. 그런데 앞서 말했던 것처럼 <존 윅>은 결이 달랐다. <존 윅>은 셰이키 캠을 거의 쓰지 않는다. 때로는 롱 테이크로 액션을 잡아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점은 <존 윅>에 권총 사랑이었다. 나는 이 영화만큼 권총을 잘 쓰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 영화는 총알을 몸통에 2방, 머리에 1방 쏴서 상대를 정확하게 사살하는 '모잠비크 드릴'을 사용한다. 적의 머리에 자동으로 적중하는 게으른 액션이 아니라, 현대 권총 사격술을 가져와 정확하게 적을 사살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권총과 쿵푸를 합친 '건푸(Gun-Fu)'이다. 그렇게 <존 윅>은 키아누 리브스의 전성기를 다시 소환하는 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총격 액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뛰어나고 우직하다.




그렇게 <존 윅>은 시리즈로 제작되어 2편과 3편까지 만들어졌다. 단순한 복수의 이야기로 끝났던 1편과 달리 2편과 3편은 본격적으로 세계관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최고 회의'가 등장하기 시작하고 각양각색의 캐릭터가 참전하기 시작한다. <존 윅>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느껴진 것은 총기 액션의 학구적인 태도였다. 액션에 '학구적'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 그렇다. <존 윅>은 매 편 총기 액션에 대해 천착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권총뿐만이 아니고 소총까지 들면서 말이다. 호텔 컨시어저가 특유의 억양으로 총기를 소개하는 장면은 묘한 쾌감을 선사하였다.




<존 윅> 시리즈는 3편 <존 윅 3: 파라벨룸>에서는 더욱 무대를 넓히고 각종 액션을 추가하였다. 마크 다카스코스나 <레이드> 시리즈로 유명한 야얀 루이한, 세셉 아리프 라흐만과 같은 아시아권 액션 스타들을 기용하였고 NBA 최장신 농구 선수 보반 마르야노비치를 등장시키기도 하였다. 넓어진 세계관만큼이나 다양한 액션이 추가되었고 새로운 무기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이렇게 <존 윅>은 아시아권 액션 스타를 기용하며 아시아 액션 영화, 특히 2010년대 동남아 액션 영화를 건드리기도 하고 오토바이 액션을 통해 한국 영화 <악녀>를 오마주 하기도 하였다. 다만 3편은 장로, 심판관, 패밀리, 티켓과 같은 새로운 용어들로 무리하게 세계관을 확장하려고 하였다. 이것이 영화의 약점으로 작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윅>이 액션을 탐구하고 확장해가는 태도는 늘 올곧았다. 적어도 <존 윅>은 다른 평범한 액션 영화들처럼 전작을 답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 <존 윅 4>는 어땠을까. 이번에도 <존 윅>은 액션을 탐구하고 확장해나갔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존 윅 4>는 이 세상 모든 액션을 총집합하여 순수한 결정체를 만들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액션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이다.




우선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키아누 리브스는 당연하고, <엽문> 시리즈의 견자단, 격투가와 스턴트맨 출신의 스콧 애드킨스와 마르코 자로, 사무라이 영화의 사나다 히로유키. 각자 하나의 주특기를 가지고 있는 듯한 캐스팅이다. 견자단은 쿵푸 영화를 대표하고, 스콧 애드킨스와 마르코 자로로 격투 액션을 종합하고, 사나다 히로유키로 사무라이 영화 혹은 야쿠자 영화까지 포섭한다. 샤미어 앤더슨이 맡은 '노바디'조차도 자동권총을 쓰지 않고 리볼버를 쓰는 것을 보아 서부극을 대표하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직접적으로 액션을 펼치지 않는 그라몽 후작 역의 빌 스카스가드는 어떠한가. 그는 영화 내내 정장만 입는다. 192cm 장신의 빌 스카스가드가 보여주는 완벽한 슈트 핏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정장하면 무엇인가. 바로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다. 이렇게 <존 윅 4>는 배우 캐스팅조차도 액션에 대한 교집합이다.




<존 윅 4>는 액션뿐만 아니라 리액션도 훌륭하다. 잘 때리는 사람이 있으면 잘 맞는 사람도 중요한 법이다. 이 영화는 몇 초 안 나오는 단순한 배역도 탁월하게 잘 맞는다. 오사카 액션 장면에서 갑옷을 입고 있는 용병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나오는 장면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갑옷을 입고 있으면 목구멍 사이에 총알을 욱여넣는 처절함과 야만성을 보여주는데 아주 그만이다. 그들의 등장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더라도 우리는 '아, 존 윅이 총알 박아 넣은 사람들!'이라고 기억하기 좋다. 


좋은 액션 영화는 배경도 탁월한 리액션을 할 줄 안다. 액션 영화에서 배경은 종종 수동적으로 취급된다. 건물이 살아 움직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한계인데, <존 윅 4>는 공간적 배경도 하나의 액션으로 조응한다. 오사카에서 케인과 존 윅이 결투하는 장면이 이를 잘 표현한다. 케인은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다. 그래서 케인의 중요한 액션은 소리로 공간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는 경보기도 이용하며 한 줌의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케인은 존 윅과의 결투에서 그를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한순간 유리 조각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다시 재결투에 임한다. <존 윅 4>는 하나의 유리 조각조차도 하나의 액션으로 작용하며 강렬한 긴장감을 생성한다.




이렇게 <존 윅 4>는 액션 하나마다 숨결을 불어 넣으며 치밀함을 선보인다. 앞서 말한 갑옷 사이로 총알을 욱여넣는 액션도 즉흥적이고 사실적인 액션으로 보여도, 전부 치밀하게 계산된 액션임을 생각하면 <존 윅 4>의 액션은 실로 놀랍다. 그러니까 이것은 흡사 압운이 잘 맞추어진 힙합 음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베를린 클럽 장면은 단순한 액션을 넘어서 상징적인 선포로 보이기도 한다. 번쩍이는 불빛 속에서 온갖 춤이 난무하는 가운데 액션이 펼쳐지는데, 여기서 춤과 액션은 사실상 구별되지 않는다. (<존 윅 4>에서 특수 분장으로 육중한 체격을 자랑하는 스콧 애드킨스는 예상과 다르게 묵직한 액션이 아니라 흡사 홍금보 같은 날렵한 액션을 선보이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우리가 준비한 액션은 하나의 춤이고 무용이라고 말하는 <존 윅 4>의 호령이다.



이렇게 액션의 산해진미를 즐기다 보면 우리는 사실상 <존 윅 4>의 억지스러운 설정도 잊고 만다. 존 윅이 입고 있는 방탄조끼 같은 정장은 이 세상의 모든 총알을 막는 무적의 보구처럼 작동한다. 하지만 <존 윅 4>는 이 억지스러운 설정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부감 롱테이크 액션신을 선물로 준다. 파리 건물 내에서 일어나는 롱테이크 액션 장면은 가히 영화 역사에 한 획이라도 그을 듯이 강렬하다. 부감으로 찍은 이 장면은 게임을 하는 것 같은 새로운 감각을 선사하고 폭발하는 탄약을 통해 강렬한 쾌감을 준다. 영화는 '정장이 말이 안 된다고요? 저희도 압니다. 하지만 이 장면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입안 가득 액션을 선물한다. 마스터 셰프가 준비한 요리에 플레이팅 살짝 어긋났다고 딴지를 걸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저 액션의 진미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존 윅이 말을 타며 적을 향해 추격하며 서부극처럼 시작하는 이 영화는, 끝내 마무리도 서부극처럼 진한 권총 대결로 마무리한다. 말을 타면 리볼버를 쏘는 것이 인지상정이건만 자동 권총을 쏘던 존 윅도 마지막은 리볼버를 든다. 석양을 등지고 총을 쏘던 기존의 서부극과 달리 조양을 맞이하며 권총 대결을 펼치는 마지막 장면은 존 윅이라는 캐릭터를 새로운 세계로 보내주는 듯하다. 그렇게 <존 윅 4>의 마무리는 모든 액션 영화의 시작이었던 서부극으로 끝마친다. <존 윅 4>는 이처럼 권총에 대한 천착을 넘어서 이 세상 모든 액션을 집합하는 삼라만상을 완성한다. 가히 액션의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 할만하다.



<존 윅 4>는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의 철학이 끝까지 관철되어 만들어 낸 훌륭한 결과물이다. 스턴트맨으로 시작한 그가 감독을 거치며 만든 액션의 정수이다. 시리즈의 관성에 머무르지 않고 기존의 것은 심화시키고 새로운 것은 탐구하고 적용했다. 이런 그의 성실한 태도가 <존 윅> 시리즈의 뚜렷한 성취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기꺼이 박수받을 만하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액션을 총집합한 결정체 <존 윅 4>는 굉장히 영롱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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