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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May 15. 2023

<킬링 로맨스>, 무엇을 위한 형식인가

형식이 내용보다 커도 괜찮은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좀 웃었다.

'아, 웃었네. 자존심 상해' 이런 웃음이 아니었다. 무한도전에서 길의 희대의 명언 '아니, 나 이런 거 좋아하네?'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오랜만에 영화를 낄낄대면서 봤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내가 마주한 것은 웃음이 아니라, '영화의 형식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당혹감에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덕분에 엔딩 크레디트도 끝까지 봤고 쿠키 영상도 봤다.(이게 감독의 의도인가?)



형식이 내용보다 지나치게 커도 괜찮은가?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형식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킬링 로맨스>의 모험적인 도전에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한편으론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킬링 로맨스>는 한국 영화의 자장에 크게 벗어나 있는 영화다. 한국식 유머보다 미국식 유머를 구사하고 있으며, 한때 UCC 시절에서 볼 법한 영상미로 과감하기까지 하다. 영화 자체가 내부적인 요소보다는 외부에서 갖가지 유머를 끌어들이고 있다. 배우 이하늬의 CF에서 보았던 우아한 이미지를 변형하기도 하고, 배우 이선균의 영화 <끝까지 간다>의 명장면을 활용하는 식이다.



카메라의 구도도 기존의 틀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3분할의 법칙(영상을 가로, 세로로 3등분 하였을 때 교차점에 인물을 배치하는 게 가장 안정적이라는 법칙)'을 당연히 무시하고, 인물을 정중앙에 배치하다가도 뜬금없이 양쪽 끝에 배치하기도 한다. 배경과 인물을 대칭으로 유지하기도 하고, 망원경 시점을 쓰기도 한다. 미술에도 굉장히 공을 들여 좋은 색채 감각도 인상적이다.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화면비를 바꾸는 장면도 존재한다. 영화의 유머러스 뒤에는 치밀하게 계산된 카메라 구도가 있다.



그러니까 <킬링 로맨스>는 이야기보다 형식이 더한 영화이다. 보통 형식이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형태와 다르게 형식이 이야기보다 앞서 있는 형태이다. 중간에 틈입하는 특이한 광고 영상부터 뮤지컬 장면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과감한 형식을 사용한다. 인터넷 유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덕이란 무엇인가')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며(푹쉭확쿵!) 현대적인 감각을 끌어올린다.(청국장 유머는 취향에 맡기겠다.) 실험적인 편집과 연출도 많은데, 캐릭터가 글자로 대화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배우들도 최대한 능청스럽고 과장하며 연기한다.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킬링 로맨스>의 배우들은 자신들이 연기하는 티를 팍팍 내고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 앤 매너가 특이한 감각의 유머를 설득시키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킬링 로맨스>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인가? 사실 그렇지 않다. 영화의 카메라 구도와 색채 감각은 대체적으로 웨스 앤더슨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인물을 대칭으로 배치하거나, 정면 혹은 측면을 잡는 카메라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서 익히 본 구도이다. <킬링 로맨스>의 오렌지색이 눈에 띄긴 하지만 색을 사용하는 방식 자체는 웨스 앤더슨의 방식과 비슷하다.(심지어 영화에서 등장하는 건물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건물과 똑 닮았다.) 내레이션을 이용한 동화적 이야기 구조도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유사하다. <킬링 로맨스>는 한국 영화의 자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웨스 앤더슨의 형식을 빌려왔지만, 때문에 웨스 앤더슨의 자장에 갇힌 셈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형식이었나?

<킬링 로맨스>가 끝나고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실 영화는 나름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발연기로 유명한 여배우 '여래'가 연기 실패 후 재벌 '조나단'과 결혼하지만, 옛날 여래의 팬클럽 '여래바래' 출신 4수생 '범우'의 도움으로 다시 연기에 도전한다는 내용이다. 즉 <킬링 로맨스>는 실패자들이 다시 꿈꾸며 도전하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야기를 위한 형식의 문제이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이야기보다 형식이 앞서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이야기를 동화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동화책을 낭독하는 내레이션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방식을 형식이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유머를 위한 권모술수에 가까운 연출을 보면 이건 거의 형식의 폭주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웨스 앤더슨의 형식은 동심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문라이즈 킹덤>), 예술의 간접성을 드러내기 위한(<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프렌치 디스패치>)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킬링 로맨스>의 형식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현대적인 유머 감각을 위해서 라기엔 지나치게 남용되어 이야기를 묻어버렸고, 이야기를 위해서 라기엔 형식이 이야기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즉 형식에 도취되어 남발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형식 그 자체에 미학이 있던가, 내용과 결합하여 시너지를 창출하여야 한다. 좋은 형식과 좋은 내용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래서 후반부의 뮤지컬 장면이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고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여래바래가 모여 뮤지컬 장면이 시작되면 노래방 자막이 등장하고 비의 '레이니즘'을 개사한 '여래이즘'이 시작된다. 물론 배우들이 연기를 즐기는 모습과 행복한 에너지는 전달되지만, 형식이 실험성과 과감함의 극단을 달리다 보니 관객 입장에선 다소 몰입하기도 힘들뿐더러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결국 '보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관한 문제로 이어진다. 영화의 분위기가 취향인 사람은 유쾌한 에너지를 받았을 것이고, 과감하고 실험적인 연출에 당황한 사람은 얼떨떨했을 것이다. 영화가 선택한 어쩔 수 없는 자업자득이다. 아쉽지만 나는 마지막 뮤지컬 장면이 웃기기보단 우스꽝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구태여 이렇게 <킬링 로맨스>에 관해 길게 쓰는 이유는 아쉬움과 동시에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마음에서다.(그리고 영화가 정말 별로였다면 이렇게 길게 쓰지도 않았다.) '어설픈 웨스 앤더슨'을 보는 것 같지만 어떻게든 한국 영화의 자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그러다가 웨스 앤더슨의 자장 안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 물론 도전과 영화의 완성도는 별개로 봐야 하지만, 그래도 기존의 유머를 반복하기보단 스스로 유머의 판을 깔 줄 아는 성실한 영화이다.



오히려 어떻게 감독이 투자자들을 설득했는지가 꽤 궁금하다. 투자자들은 '푹쉭확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감독은 '푹쉭확쿵'을 도대체 어떻게 설득한 것인가. 오히려 이 과정을 영화로 보고 싶은 마음이 은근슬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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