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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Jun 02. 202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3>, 말,음악,춤

말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노웨어(Knowhere)'에 도착한 '피터 퀼'이 '가모라'에게 분위기를 잡으려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가모라는 피터에게 카세트테이프를 보며 그걸로 뭐 하냐고 묻는다. 피터는 이렇게 대답한다.


"뭘 하는 게 아냐. 그냥 듣는 거지."


그리고 피터는 가모라에게 헤드셋을 씌워주고 엘빈 비숍(Elvin Bishop)의 'Fooled Around And Fell In Love'가 흘러나온다. 낭만적인 멜로디와 함께 그 둘은 몸을 맡기고 춤을 춘다. 이처럼 음악은 뭘 하려고 듣는 것이 아니다. 그냥 듣는 거다.




이렇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는 타고난 유희 정신과 굉장한 유머 감각으로 무장하였다. 1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지나 2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에서 가족주의를 첨가하였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홀리데이 스페셜>로 따스한 연말을 선사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3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3>로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3편은 시리즈의 마무리로서 훌륭한 작별인사다. 이토록 애틋한 작별인사는 <토이스토리> 시리즈 이후 오랜만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3>는 여러모로 많은 것을 책임 진 영화이다. 일단 마블 스튜디오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다. 마블은 최근 작품들이 낮은 완성도로 많은 비판을 받고 흥행에도 실패하면서 위기론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마블의 최근 작품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크게 실패하면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3>의 부담이 특히 가중되었다. 그리고 감독 '제임스 건'이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마블을 떠나 DC의 수장이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번 영화는 마블뿐만이 아니라 DC의 운명까지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이 영화는 다른 최근 마블 작품들과 다르게 탁월한 재미와 감동까지 갖추고 있다. 캐릭터를 활용한 유머 감각도 좋고 여전히 음악은 끝내주게 좋다. 1편과 2편에서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70년대 음악을 활용했다면 이번 3편은 '준'이 등장하는 만큼 90년대와 2000년대의 음악을 활용한다. 특히 첫 장면에서 라디오헤드(Radiohead)에서 'Creep(Acoustic)'이 등장하는 순간 (내가 라디오헤드를 너무 좋아하는 탓에) 영화에 완전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액션도 충분히 만족감을 선사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롱테이크 액션 장면은 캐릭터의 개성을 극대화하여 탁월하게 구성하여 놀라움을 자아낸다. MCU 최고의 액션 장면 TOP5에 포함시키고 싶을 정도이다.



친구의 희망을 품은 이름, '로켓'


무엇보다 이번 영화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 중 로켓의 캐릭터 탐구이다. 1편에서 '노웨어'에 도착하여 피터 퀼이 가모라에게 추파를 던질 때 로켓은 드렉스와 몸싸움을 벌인다. 그 몸싸움을 벌인 이유는 드렉스가 로켓에게 '벌레'라고 놀렸기 때문이다. 피터가 그 싸움을 말리지만 '벌레'라는 소리를 들은 로켓은 심한 자조를 한다. 상세하게 묘사되지 않지만 로켓에게 뼈아픈 과거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그래서 로켓의 과거를 이번 3편에서 본격적으로 풀기 시작한다. 라디오헤드의 'Creep'이 흘러나오는 첫 장면에서 로켓이 흥얼거리는 가사를 자세히 살펴보자. '난 별종이야', '마음대로 할래', '완벽한 몸을 원해'라는 가사를 흥얼거린다. 그리고 만나는 피터에게 자신은 너구리가 아니라고 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와 어벤저스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로켓은 늘 자신이 너구리라는 정체성을 부정해 왔다. 과거의 어떤 일이 있었기에 로켓이 그토록 자신이 너구리라는 정체성을 부정하는지 우리는 이번 영화에서 알게 된다. '아담 워록'이 '하트(Heart)'의 'Crazy On You'와 함께 등장하고 로켓의 심장에 킬스위치를 작동시키는 순간, 본격적인 로켓의 과거가 드러난다.(이때 '아담 워록'은 흡사 슈퍼맨처럼 묘사된다. 제임스 건 감독의 다음 작품이 '슈퍼맨' 시리즈인 것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부분이다.)




로켓은 생체실험과 동물학대를 통해 탄생한 캐릭터이다. 그리고 그에게 창조주 '하이 레볼루셔너리'가 붙인 또 다른 이름 '89P13'가 있다. 89P13의 쓸모는 바로 '창의성'이다. 다른 인물들이 실험에서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89P13은 알 수 있다. 반면 '로켓'이란 이름은 자신이 직접 만든 이름이다. 로켓의 동물 친구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이름을 만드는 장면에서 그들은 자신의 특징으로 이름을 창작한다. 그렇게 '라일라', '티프스', '플로어'라는 이름이 탄생한다. 그리고 89P13은 자신에게 '로켓'이라는 이름을 선사한다. 친구들과 함께 하늘로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은 마음이다. 즉 로켓이란 이름은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희망까지 품고 있는 이름이다.



하이 레볼루셔너리는 좀 더 고등한 생물을 창조할 수 있게 되자 89P13을 처분하고자 한다. 89P13의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하늘로 날아가겠다는 '로켓'의 쓸모는 남아있다. 하지만 하이 레볼루셔너리의 계략으로 친구들이 죽자 로켓의 쓸모마저 없어지고 만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로켓은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 여태까지 자신이 '너구리'라는 정체성을 부정한 이유다. '너구리'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은 쓸모없는 존재이다. '너구리 로켓'은 친구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로켓'의 또 다른 자아이다.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일라'가 말하듯 여전히 이야기의 주인공은 로켓이기 때문이다. 하이 레볼루셔너리가 89P13의 쓸모를 부정할지라도 로켓은 친구들의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즉 로켓의 삶은 라일라와 티프스, 플로어의 삶까지 동반하고 있다. 그래서 로켓이 무너지는 하이 레볼루셔너리의 동물을 구출하는 장면은 지독하게 감성적이다. 로켓은 아기 너구리가 갇힌 철창을 열면서 통칭 '너구리'를 본다. 그리고 로켓이 아기 너구리를 바라보는 시점 쇼트와 아기 너구리가 로켓을 바라보는 시점 쇼트가 번갈아 나온다. 그렇게 마주하는 시선의 교차점에서 로켓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존재가치를 되돌아본다. 자신이 동물 친구들을 위해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 89P13는 쓸모가 없을지라도 로켓의 쓸모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하이 레볼루셔너리와의 결투에서 로켓을 자신을 그냥 '로켓'이 아닌 '너구리 로켓'이라고 소개한다.



말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3>는 사회 드라마로서도 흥미진진하다. 이번 영화의 빌런 하이 레볼루셔너리가 가지고 있는 사명은 '완벽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여러 생명을 창조하면서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완벽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온순함'이라고 생각하여 피조물에 부정적 감정을 제거하고자 한다. 그렇게 그는 모든 피조물이 '온순함'만을 가질 것을 의도한다. 그러니까 그가 완벽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동일성'이다. 모든 생물이 똑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완벽한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하이 레볼루셔너리가 만든 사회는 마약을 파는 문어가 존재하듯이 완벽하지 않다. 동일한 생물 개체를 만들어 '선'만이 존재한 사회를 만들려고 하였으나 실패한 모습이다. 이 지점에서 하이 레볼루셔너리가 만든 사회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구축한 '노웨어'의 사회는 여러 가지로 흥미롭게 대비되고 있다. 일단 동일성에서 큰 차이를 가진다. 노웨어는 각기 다른 종족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 또한 서로 다른 종족에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동질성보단 고유의 특이성이 발현되는 집단이다. 때문에 서로 바보 같이 치고받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완벽한 사회를 이루는 것은 하이 레볼루셔너리가 창조한 '카운터 어스'가 아니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노웨어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하이 레볼루셔너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소통이다.




피터 퀼은 연구 행성 '오르고스코프'에서 작전을 수행하면서 '진심으로 말하면 들어줄 거야'라는 대사를 반복한다. 진심으로 말한다는 것, 즉 피터의 대화하려는 노력은 능청스러운 작전처럼 보이지만 사실 피터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성이다. 피터는 진심으로 말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그는 언어가 다를지라도 대화에 성공한다. 피터가 카운터 어스에 도착하여 동물인간과 대화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그는 친구를 구하기 위한 진심을 위해 손짓, 발짓, 표정, 그리고 간절한 눈빛까지 동원하고 그림까지 그린다. 그렇게 피터의 진심은 동물인간에게 닿아 기록관의 위치를 알아낸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 중에서 카운터 어스 주민과 소통에 성공한 사람은 피터뿐이다.



드렉스, 네뷸라, 멘티스가 우주선에 갇히는 장면에서도 소통의 중요성은 다시 한번 드러난다. 네뷸라는 드렉스와 멘티스의 무쓸모를 강조하고 꾸짖는다.(이에 멘티스는 강하게 반발하는데, 드렉스와의 관계가 특별하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조금 더 자세히 후술 하겠다.) 하지만 이내 어린아이 생명체를 만나자 상황은 역전된다. 네뷸라는 어린아이들이 말하는 '줍줍'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낸다. 하지만 과거 어린 딸을 잃은 경험이 있는 드렉스는 천연덕스러운 몸개그를 통해 어린아이들과 소통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니까 사실 무쓸모인 것은 네뷸라인 것이다. 네뷸라는 왜 어린아이들의 언어를 할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았냐고 묻자, 드렉스는 나한테 물어보지 않았다고 답한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동료에게도 새로운 측면이 존재할 수 있다. 타인을 알기 위해선 물어보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무런 소통도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한 하이 레볼루셔너리의 우주선은 무너지고, 맨날 치고받고 싸우지만 서로에 대해 알기 위해 대화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노웨어는 화합의 장소로 자리매김한다. 결국 완벽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동일성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지난한 노력이다. 노웨어가 수많은 종족과 더불어 동물까지 끌어 안은 안락한 '노아의 방주'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와, 거기에 유희정신을 가미해 줄 수 있는 '음악'과, 그것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춤'이다. 앞서 말했듯 음악은 뭘 하려고 듣는 게 아니다.




쿠키 영상에서 새로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로 합류한 파일라가 로켓에게 "말만 해, 대장!"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로켓은 "말(Word)"이라고 말하며 힘차게 돌진한다.(여기에서 흐르는 음악 '레드본(Redbone)'의 'Come and Get Your Love'는 1편의 오프닝 곡이었다. 영화는 이 노래 자체로 강력한 감성을 자극한다.)



그러니까 말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타인과 아무리 다를지라도 진심으로 말하는 자만이 친구와 함께 음악과 춤을 즐기며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친구를 넘어 가족 공동체를 이룬다면 타인의 진정한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이번에 새로운 멀티버스의 존재로 등장하는 가모라는 그루트의 말("I'm Groot")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함께 모험을 거치게 되며 마지막 노웨어에선 그루트의 말의 의미를 이해한다. 피터가 지구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며 작별을 고하는 순간에 그루트는 "I'm Groot"가 아닌 "I love you, guys.(다들 사랑해)"라고 말한다. 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뿐만 아니라, 이들과 모험을 함께 한 관객들도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의 여정을 지켜본 우리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가족으로 포용하는 감동적인 연출이다.



그렇게 모두 각자의 집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3>는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애틋한 작별인사이다. 노웨어가 평화를 되찾았지만 피터는 지구로 돌아가고, 멘티스는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한 새로운 모험을 떠난다. 네뷸라는 노웨어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고, 드렉스는 '파괴자'가 아닌 '아버지'로 돌아온다. 로켓과 그루트는 우주의 평화를 위해 다시 떠나고, 어머니를 잃은 아담 워록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새 멤버로 가족을 이룬다. 가모라도 다시 라바저스로 돌아가 따뜻한 환대를 받는다. 노웨어에서 영국 인디 밴드 '플로렌스 앤 더 머신(Florence and the Machine)'의 'Dog Days Are Over'이 흐르고 모두가 함께 춤추는 장면이 이토록 감동적인 이유이다.(노래 제목의 뜻이 '개 같은 날은 지나갔어' 혹은 '힘든 날은 지나갔어'라는 뜻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로켓과 그루트가 춤추는 것만큼이나 드렉스가 춤추는 것이 감정적으로 깊게 다가온다. 영화 첫 장면에서 'Creep'이 흐를 때 멘티스는 드렉스에게 춤추자고 말하지만, 춤은 바보나 추는 것이라며 거절한다. 이 영화에서 드렉스와 멘티스는 흡사 부녀관계로 묘사된다. 드렉스는 타노스 때문에 딸을 잃었고, 멘티스는 '에고'라는 아버지가 있었지만 딸이라기보단 종속 관계에 가까웠다. 그래서 드렉스는 겉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부성애의 마음으로 항상 멘티스 곁을 지키고 있다. 영화 내내 그들은 천덕꾸러기 딸의 응석을 받아주는 아버지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 자녀는 떠나보내야 하는 존재이다. 드렉스는 멘티스 곁을 지키고 싶어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혼자만의 여행을 결심한다. 드렉스도 이를 알기에 그녀를 놓아준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로서 태어난 드렉스는 그제야 마음껏 춤을 추기 시작한다. 자신이 바보여도 좋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3>는 모험 속 추억으로 인물들을 힘껏 껴안는다. 그리고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모두 각자의 인생이란 호수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나아간다. 영화는 이토록 애틋한 작별인사를 건네며 그들의 여정을 축복한다.




결국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모든 여정은 이 영화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들과 음악을 들으며 새로운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어서 유쾌했다. 마지막으로 '라일라'의 대사를 인용하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싶다.


친구가 있으니 정말 좋다. 눈물 나도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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