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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Jul 08. 2023

[월간 영화기록] 6월의 기록들

6월의 영화 별점과 단평

[월간 영화기록]은 월마다 간단한 소회와 함께, 영화관에 개봉 혹은 OTT에 공개된 영화들을 총정리하여 별점과 간단한 평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의 원주민은 특이한 방법으로 원숭이를 사냥한다고 한다. 우선 나무나 단단한 흙더미에 조그마한 옹이구멍을 뚫는다. 그리고 여기에 달콤한 과일이나 설탕을 넣는다. 원숭이들은 신이 나서 작은 구멍에 손을 넣고 과일을 움켜쥔다. 하지만 과일을 꽉 쥔 주먹은 작은 구멍을 통과하지 못한다. 원숭이는 과일을 내려놓으면 팔을 뺄 수 있지만, 그들은 과일을 절대 내려놓지 못한다. 원숭이가 팔을 못 빼고 전전긍긍할 동안 원주민은 그냥 휘파람을 불면서 여유롭게 원숭이를 잡는다. 다른 방법으로 항아리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원숭이는 잡히고 나서도 항아리에 팔을 빼지 않는다고 한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내가 지금 이 '원숭이'다.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해 팔을 빼지 못하는 원숭이. 적당히 사람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능력은 없는데 하고 싶은 것은 많고 욕심이 그득하다 보니 매일 시간에 쫓겨 사는 느낌이다. 물론 시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면 이와 같은 일도 없었겠지만, 나는 태생적으로 그런 능력은 없는 듯하다. 하루 계획표를 짜기도 하지만 대개 못 지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옹이구멍에서 팔을 빼는 방법은 지극히 간단하다. 과일을 내려놓으면 된다. 근데 왜 내려놓지 못하는 걸까. 아무래도 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착각, 혹은 자신에 대한 과신 때문이 아닐까. 6월은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아무것도 못 이룬 시간에 가까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단 시간을 내어 차곡차곡 쌓아나갈 걸이란 후회가 앞선다.


"왜냐하면 별들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게 되니까."

룰루 밀러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렇다. 때로는 별들을 내려놓아야 우주가 보인다. 사사로운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가는 것인지 반추해 본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하지 않던가. 


6월은 글도 별로 쓰지 못했다. 영화에 대한 메모와 글감은 수북이 쌓여 있는데, 정작 정리하고 쓰는 시간을 갖질 못했다. 7월에는 꼭 조금이라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자 (어쩌면 의미 없는) 결심하면서, 6월의 기록들이다.


<그 여름>

감독 : 한지원


강지희 문학평론가 말처럼 <그 여름>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그러는 동안 마음을 채우고 흘러가는 감정들'이 중요하다. 그렇게 계절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서 수이가 이경에게 남긴 사랑의 흔적을 골똘히 생각한다.

★★★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

감독 : 스티븐 케이플 주니어


정말 의외로(?) 액션의 구색을 갖추고 영화가 굴러가고 있다.

170km 강속구만 뿌리며 사사구 남발하던 투수는 강판하고, 적어도 완급 조절은 할 줄 아는 투수가 등판해 삼진 하나 정도는 잡아낸다.

★★★


<플래시>

감독 : 앤디 무시에티


제임스 건은 당장 이 감독을 잡아다가 가두어 놓고 영화만 만들게 하라.

★★★☆


<엘리멘탈>

감독 : 피터 손


창의적이고 놀라운 시각효과로 독창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뚜렷한 성취를 달성해놓고, 몰개성한 이야기와 지나치게 직설적인 화법으로 대량 실점한다.

★★★


<애스터로이드 시티>

감독 : 웨스 앤더슨


잘 나왔으면 좋겠네.

내 사진은 다 잘 나와.

목적 없는 삶과 예술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토록 마법 같은 순간에 가치와 의미를 상실의 슬픔 속에서 감동적으로 길어낸다.

결국 수많은 삶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저 아무것도 몰라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별을 관측해야 외계인을 볼 수 있고,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으며, 상실을 묻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에.

★★★★☆


<익스트랙션 2>

감독 : 샘 하그레이브


강렬한 원테이크 액션 장면 이후 내내 데크레센도.

★★☆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감독 : 미야케 쇼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들리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후퇴하는 세계 속에 정지한 인물이 끝내 프레임 앞으로 나아갈 때의 기품.

★★★☆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감독 : 조아킴 도스 샌토스/저스틴 톰슨 외 1명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지평이자 신기원.

자신의 개성을 전편보다 더 진화하여, 기예르모 델토로가 말한 것처럼 "애니메이션이 시네마(Animation is Cinema)"인 이유를 증명한다.

★★★★★


<귀공자>

감독 : 박훈정


액션에 컷을 난도질하면 재미있을 것이란 착각

캐릭터 조형과 마사지에 집중하느라 시나리오가 뒷전으로 밀려난다.

★★☆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감독 : 제임스 맨골드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루지 못한 <007> 시리즈의 꿈을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대신 이루어준다.

★★★


<믿거나 말거나, 진짜야>

감독 : 캉뗑 두피우


젊음을 향한 욕망을 끝으로, 역설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인 사람의 행복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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