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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Nov 27. 2022

[지금 이 만화] <장송의 프리렌>을 읽고.

요즘 판타지 만화계에서 열풍처럼 풀고 있는 단어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들은 '이세계'와 '환생'이겠죠. 현실 세계에서 평범한 인물이 판타지 이세계로 넘어가 엄청난 힘을 얻고 겪는 모험담은 이제 유달리 특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작품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때문에 창의성 없이 공산품처럼 쏟아져 나오는 만화나 소설도 많아졌습니다.(물론 폭발적인 수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이처럼 요즘 만화에서 이세계와 판타지물은 범람하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야먀다 카네히토와 아베 츠카사의 <장송의 프리렌>은 저에게 한줄기 빛처럼 느껴집니다. 2021년 일본 만화대상 1위에 빛나는 <장송의 프리렌>은 독특한 설정과 탄탄한 이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습니다.



<장송의 프리렌>은 기존 판타지에서 수없이 보여주었던 용사들의 모험담을 다루지 않습니다. 거대한 악의 존재 '마왕'은 용사 '힘멜' 일행이 물리친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다른 인간들과 달리 영겁의 삶을 엘프 마법사 '프리렌'이 다시 한번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즉 '떠나간 자'와 달리 '남은 자'들이 '모험의 끝'에서 다시 '모험을 시작'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다시 시작한 모험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습니다. '옷의 얼룩을 지우는 마법'같은 소소한 마법을 얻으며 사람들의 일을 도와주고, 새로운 제자를 만나며, 마족들과 전투를 벌이기도 합니다. 거대한 서사시라기보단 소소한 일상극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데 이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밀도는 굉장합니다. 영겁의 시간을 사는 자가 되묻는 유한한 시간의 가치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이죠. 또한 캐릭터 조형술이 굉장히 뛰어나서 프리렌과 페른, 슈타르크가 걷는 것만 보더라도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무엇보다 어떻게 해야 캐릭터들이 귀여운지 작가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송의 프리렌>은 나올 때마다 사서 읽어 보고 있습니다.





최근 발매된 <장송의 프리렌> 8권에서 흥미롭게 보았던 부분을 적어봅니다.


프리렌 : 밀리아르데는 언제나 아무것도 않고 멍하니 있네.


밀리아르데 : 엘프는 긴 인생 속에서 뭔가를 탐구하는 경우가 많아. 왜 그런지 알아?


프리렌 : 왜일까?


밀리아르데 : 나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야. 있잖아 프리렌, 인생을 걸고 찾아다닌 것이 아무 가치 없는 쓰레기였을 때를 상상할 수 있어?


프리렌 : 전혀. 그게 무슨 얘기야?


밀리아르데 : 내 얘기야. 먼 옛날의. 역시 맛없네. 이 술은.


프리렌 : 황제주... 즉위식 때 나눠준 최하품 싸구려 술이잖아.


밀리아르데 : 이 마을에 오기 전에 내가 심심풀이로 비문을 새겼어. '황제주는 최고의 명주다'라고.


프리렌 :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밀리아르데 : 의미 같은 건, 아무것도 없어.

<장송의 프리렌> 8권 33~34p






프리렌 일행이 도착한 어느 마을에는 200년 넘게 최고의 술이라고 알려진 '황제주'를 찾아다니는 '파스' 영감이 있습니다. 그는 수없는 노력 끝에 황제주를 찾을 수 있었고 프리렌에게 황제주가 있는 창고의 결계를 풀어 달라고 하죠. 하지만 프리렌은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황제주가 최고라는 사실은 심술궂은 엘프 '밀리아르데'의 장난이라는 것이죠. 과연 인생을 걸고 끝내 찾아낸 술이 형편없이 맛없는 술이라면 어떨까요.



우리는 모험을 떠나면 꼭 금은보화를 얻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험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는 데 말이죠. 하지만 모험의 진정한 의미는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언제나 길을 잃은 채로 말이죠.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빈손과 길 잃은 상태에서 우리의 진짜 모험은 시작됩니다. 우리가 삶이라는 모험, 그 끝에 도달하여 목도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엄청나고 거대한 금은보화가 아니라, 하늘과 바다, 나무와 흙, 이야기와 친구라는 세상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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