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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Dec 12. 2022

<더 메뉴>, 기이한 마력의 요리 영화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다 군침이 고이는 순간


기이한 마력의 요리 영화


영화 <더 메뉴>는 제목처럼 요리에 관한 영화처럼 느껴진다. 영화 초반부까지만 하더라도 자연경관과 여러 가지 요리들 속에 눈과 입이 즐거운 장면들을 선사한다. 하지만 영화가 변곡점을 지나면서 장르가 뒤바뀌는 순간 <더 메뉴>는 아예 다른 영화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영화 <더 메뉴>는 정보를 별로 모르는 채로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그래야 영화가 주는 충격이 더욱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커플 '타일러'와 '마고'는 무려 180만 원에 해당하는 디너를 먹기 위해 외딴섬에 위치한 고급 레스토랑 '호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12명의 사람과 함께 식사를 먹기 시작한다. 타일러는 셰프 '슬로윅'의 예술적인 요리에 환호하지만 마고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코스 요리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슬로윅의 계획 아래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위험한 비밀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우선 배우들의 연기를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배우들의 전체적인 합도 좋지만 특히 슬로윅을 연기한 '랄프 파인즈'는 <더 메뉴>의 무게 중심을 딱 잡아 놓을 만큼 묵직하다. 화려한 연기 테크닉을 부리기보다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주는 것만 같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의 대표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는 달리 표정도 별로 짓지 않지만 무표정만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고 있다. 이에 못지않게 마고를 연기한 '안야 테일러 조이', 타일러를 연기한 '니콜라스 홀트'도 자신들의 연기 테크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랄프 파인즈의 존재감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연기력을 형형하게 뽐낸다. 흡사 랄프 파인즈가 판을 깔아주면 그 둘이 위에서 춤을 추는 듯하다.(안야 테일러 조이는 지금도 엄청난 스타이지만 차기작이 더욱 기대되는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 밖에도 홍 차우, 주디스 라이트, 리드 버니 등 조연들도 자신들의 연기를 탁월하게 해낸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은 합을 수없이 맞춰서 연기 마스터 클래스를 방불케한다.

지금부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더 메뉴>는 요리의 네 번째 코스 '난장판'을 기점으로 변곡점을 맞이한다. 그전은 요리에 대한 예술적인 탐구였지만, 부주방장이 자신의 입에 권총을 넣고 쏘는 순간 영화는 갑자기 스릴러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흡사 요리가 기이한 의식처럼 느껴지는 마지막 요리에 다다르면 영화 <위커맨>이나 <미드 소마>처럼 오컬트 장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단순히 장르적인 재미를 위해 이 방식을 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릴러 장르로의 변환은 이 영화가 무언가를 향한 복수, 일갈, 비판을 위한 하나의 방식이다. 표면적인 이야기뿐만 아니고 심층적인 이야기가 더욱 훌륭한 영화이다.




계급에 대한 복수


영화 <더 메뉴>의 이야기는 우선 계급에 대한 복수처럼 보인다. 두 번째 코스 요리 '빵의 역사'를 떠올려보자. 빵은 보통 사람의 약식이다. 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밀에 물을 넣고 만드는 빵은 서민들의 굶주린 배를 채운 음식이다. 하지만 슬로윅은 그렇게 설명하고 정작 손님들에게 빵을 주지 않는다. 바로 "당신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이유이다. 그리고 곁들임의 풍미라며 소스와 에멀젼만 준다. 결국 손님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하고 그저 소스만 맛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영화 <더 메뉴>는 피지배층이 지배층을 전복하는 이야기가 돋보인다. 슬로윅이 마고에게 '주는 사람'이 될 것인지, '받는 사람'이 될 것인지 묻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 계급은 전체적인 설정을 탄탄하게 잡아준다. 그러니까 슬로윅은 요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복수를 선사함으로써 지배층에게 공포감을 주는 것이다. 특히 음식 평론가 '릴리안'은 요리사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을 만큼 강력한 인물이다. 그녀에게 엄청나게 많은 에멀젼을 주는 행위는 단순한 복수를 넘어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이를 통해 '주는 사람'이 피지배층이 아니고 '받는 사람'들과 동등한 계급인 것을 인지시킨다. 그런 슬로윅에게 마고는 이질적인 인물이다. 마고는 다른 손님들과 달리 성매매 관련 업종을 하는 전형적인 하층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로윅은 마고에게 선택지를 주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복수를 '주는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님 음식을 먹다 복수를 '받는 사람'이 될 것인지.(사실 마고의 진짜 이름이 '애런'인 것을 생각하면 애런은 '주는 사람'이고 마고는 '받는 사람'인 것이다. 결국 그녀는 마지막에 마고가 아니라 애런을 선택한다.)

악평을 향한 일갈, 현대 미술에 대한 비판


요리를 영화 산업에 대한 비유로 본다면 영화 <더 메뉴>는 영화에 대해 악평을 남기는 사람, 더 넓게는 영화를 현학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일갈처럼 보인다. 즉 영화에 나쁜 악평을 남겨서 많은 영화 종사자들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일종의 꾸짖음이다. 셰프 슬로윅은 영화감독이다. 요리사들은 영화 산업 종사자들이다. 그리고 손님들은 영화에 대해 악평을 남기는 관객이나 영화평론가이다. 그리고 슬로윅(감독)은 손님(관객 혹은 평론가)에게 일갈하는 것이다. 슬로윅은 첫 번째 코스 요리가 나가기 전에 요리를 먹지 말라고 한다. 대신 맛보고 음미하고 주의를 기울이라고 한다. 귀한 메뉴니까 받아들이고 모든 걸 용서하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의 영화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제대로 봐달라는 간청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저 릴리안처럼 악평을 남기거나, 타일러처럼 과시하거나, 리처드처럼 메뉴도 기억 못 하지 말고 말이다.(슬로윅이 타일러에게 요리를 시키는 이유도 자신의 과시욕과 허세가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코스 요리가 '스모어'인 이유도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담겨 있는 이 음식처럼 영화를 즐겨달라는 부탁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 마고의 시선으로 영화 <더 메뉴>를 바라보면 이 영화는 비유로 덧댄 현대 미술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마고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로 예술을 펼치는 현대 미술가에게 자신이 언제 가장 즐거웠는지 묻는 것이다. 슬로윅은 흡사 요리를 행위 예술처럼 승화한다. 요리에 스토리를 입히고 전시한다. 닭다리 훈제에 가위를 찌르고, 손님들의 최악을 타코에 레이저로 새기고, 부주방장이 총을 자신의 머리에 쏘고, 후원자에게 날개를 달고 바다에 담그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요리의 본질은 아니다. 요리는 본디 배고픈 사람들의 허기를 채우는 데 있다. 그래서 마고는 슬로윅에게 거세게 말한다.(이 순간 박수는 마고가 친다.) 당신의 요리는 애정이 아니고 그저 집착이며,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신이 배고파 죽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먹고 싶은 음식으로 치즈 버거를 주문한다. 치즈 버거는 슬로윅이 요리사로써 처음 만든 음식이다. 치즈 버거를 만들 때 슬로윅은 즐거운 표정이 가득하다.(또한 가장 미국적인 서민 음식이라는 점에서 '주는 사람'에게 잘 어울린다.)




결국 마고는 슬로윅에게 요리의 가장 본연적인 역할은 무엇인지 상기시켜준다. 요리의 역할은 행위예술이 아니다. 사람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즐거움을 주는 데 있다. 슬로윅은 그제야 자신이 놓쳤던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인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마고만이 슬로윅의 과거를 이해했다. 그녀는 마침내 슬로윅과 소통하였고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했다. 그래서 그녀는 살아나갈 수 있었다.

요리와 더불어 현대 미술도 별로 다르지 않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본질을 해치는 현대 미술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그저 현대 미술을 목격하기만 할 뿐 즐길 수는 없다. 하지만 미술의 본질은 미학적인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에게 고양감과 즐거움을 주는 데 있다.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는 예술은 어쩌면 무의미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마치 마고가 마지막에 어려운 말이 가득한 메뉴판으로 입을 닦는 것처럼 말이다.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다 군침이 고이는 순간


영화 <더 메뉴>는 요리가 나오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입안이 바싹바싹 마른다. 그리고 마침내 치즈 버거가 나오는 순간 입안에 군침이 고인다. 앞서 어떤 요리에도 침이 고이지 않았는데 치즈 버거가 나타나면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그리고 영화관 밖을 나서면 바로 햄버거 가게로 달려가 치즈 버거 세트를 바로 먹고 싶게 만든다. 기이한 마력으로 관객을 끌어당긴 이 영화는 마지막 박수소리까지 탁월하게 조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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