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48 번지 (1)
달렸다.
미친 듯이 달렸다.
7살 아이 다리로 달릴 수 있는 최대치만큼 빠른 속도로 달렸다.
꼴딱꼴딱 넘어가는 숨을 겨우 부여잡고, 알찬 주먹으로 대문을 마구 쳐댔다.
"외숙모! 삼촌! 도와주세요!"
"아빠가... 아빠가.... "
그날도 그랬다.
평소와 같이 지루할 만큼 평온했던 하루였다.
하지만 그 하루 끝은,
또 예고 없이 닥쳐온 공포로 숨 막힐 만큼 두렵고 무서웠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날이면,
윗집 주인아주머니네, 근처 삼촌네로 열심히 뛰어다니기 바빴다.
아빠 덩치만큼, 아빠를 말려줄 큰 어른이 필요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았다.
단지 본인의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저녁 식사 후,
작은 방에서 엄마 다리를 베고 누워 티브이를 봤다.
그러다 문득 안방에 혼자 있을 아빠가 궁금해서 안방으로 갔다.
안방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고, 문을 열어 달라고 발로 문을 쾅쾅 쳐댔다.
마지못해 문을 연 아빠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봤고,
거기에 질세라 난 누워있던 아빠를 발로 찼다.
빨리 문을 열어주지 않던 아빠가 미웠다.
웃으며 장난으로 받아 줄주 알았던 아빠는 예상과 달리
작은방으로 달려갔고, 엄마 머리채를 잡고 안방으로 끌고 갔다.
애 교육을 어떻게 시켰냐고 소리를 마구 질러 댔다.
잠겨진 안방문은 열리 지가 않았다.
엄마의 신음 소를 뚫고 아빠의 괴성이 들려왔다.
무서웠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을 친다.
혼자 힘으로 문을 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주인집으로 달려갔지만 아무도 없었고, 근처 삼촌네로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삼촌과 같이 집으로 돌아왔을 땐,
엄마는 헝클어진 머리로 구석에서 울고 있었고,
아빠는 화가 덜 풀렸는지 씩씩거리며 주방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난 알았던 거 같다.
엄마가 오빠와 나를 버리고 갈 거라는 것을...
7살 어린아이는 밤새 엄마가 옆에 잘 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철근같이 무거운 눈꺼풀을 걷어내며 길고 긴 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만 했다.
어쩌다 깜빡 잠이 들면, 눈뜨자마자 엄마를 먼저 찾았다.
엄마가 집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하루를 시작할 수가 있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여름날이었다.
엄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치와 밥 그리고 콩나물을 잔뜩 넣고 끓인 김칫국을 사발에 담아 주었고
난 그걸 맛있게 먹던 날이었다.
옆에서 엄마는 거울을 보고 있었고,
듬성듬성 비어진 머리를 이리저리 헤쳐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왜 그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 할 거 같았다.
가장 좋아하는 김칫국을 내동댕이 치고 난 엄마 목을 세게 끌어안고 울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커서 꼭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그러니 제발 가지 말고 같이 살자고..
그때 엄마나이 고작
서른 즘 되었을까...
그때 그냥 엄마를 보냈었더라면
엄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살아왔던 날들보다 덜 힘들지 않았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엄마를 붙잡았던 작은 그 고사리
손이 참,
밉고,
너무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