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안녕
나의 첫 경험은 18세였다. 고등학교 2학년, 여러 가지 이유로 남들이 중학교 때 겪는다는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첫 경험이 있었다. 수학여행 전날, 집에 2박 3일의 수학여행을 3박 4일로 만든 나는 친구 집 대문 앞에 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두근거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벨을 누르고, 열린 대문을 넘어 친구가 이끄는 대로 방으로 갔다. 그리고 침대에서 처음 만났다.
초록병. 잎.새.주
<술>
너무 쓰다. 역겨움이 식도부터 거부반응을 일으켜 다 뱉어 내려 하였다. 이런 것을 어른들이 먹는다니, 전혀 왜 마시는지 몰랐다. 이렇게 나의 첫 경험은 궁금증만 남긴 채 끝이 났다.
그러나, 나의 사춘기는 오래 갔다. 술에 대한 첫 경험을 함께해준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어울려 다니면서, 계속 마셨다. 이유는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그 친구들이 우선인 줄 알았고, 당연히 그들과 함께하는 무엇이든 같이 해야 한다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정신 차리니 고3 여름이었다. 갑자기 하고 싶은 그리고 해야 할 목표가 눈에 들어왔다.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었다. 대학교를 가며, 자취를 하게 되자,,, 와우. 다시금 떠올랐다. 이건 막을 수 없었다. 선배들이 불러내는 자리는 어디든 갔었다. 미래에서 온 지금 생각해보면 왜 갔는지도 모르는 자리도, 사람이 좋아서 술이 좋아서 어디든 갔었다. 그렇게 20살, 21살을 보냈다.
10대부터 21살까지의 술은 나에게 새로운 일탈에 대한 도파민이었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했다. 망해버린 학점을 복구해야 했고, 취업을 빨리해야 했다. 그리고 사람도 만나야 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한동안은 이 모든 것을 다 했다. 일과 사랑, 공부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게 치열하게 살았다. 노력의 결과 취업이 빨리 되었고, 그렇게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방패 같은 단어이지만 완벽주의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그냥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낙인과 같았다. 빨리 1인분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들어간 첫 직장 출판사에서 열심히 일했다. 오류도 없는 사람이라 칭찬도 받고, 다음에 들어온 후배들에게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집에 가는 길, 꼭 나를 위한 보상으로 10년 된 친구를 마트에서 샀다. 위대한 개츠비의 디카프리오가 카메라를 보며 잔을 들어 올리는 장면처럼 이것은 나와 우리를 위한 한잔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보상 이라 생각했다.
24살부터 30살까지의 술은 나에게 열심히 산 하루를 보상해 주는 전리품이었다.
그러다 여러 일이 생겼다. 가정적으로 큰 일이 생겨, 출판사에서 퇴사하여 은행에 들어갔다. 좋아 보이는 직장이여도, 나와 맞지 않으면 고역이다. 그러다 보니 술을 마시는 빈도가 늘어났다. 이때의 술은 달랐다. 혀끝의 쓴맛이 사라지고 단맛 만 남았다. 10대, 20대의 인생은 달콤해서 상대적으로 썼었다면, 30대의 인생이 쓴맛이라 그만큼 단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점차 그 단맛에 중독 되었다. 일종의 보상 심리가 생겼다. 오늘 상사가 갈궈서 이만큼 힘들었는데, 진상이 많아서 고생했는데, 몸이 힘들었는데, 날이 더웠는데, 그냥 까지. 그때마다 늘어난 한 잔은 한 병, 두 병이 되었다. 매일이 되었다. 집에서든 회사에서든 항상 완벽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없던 나에게 술은 좋은 이유가 되었다.
30살 이후 술은 나에게 흐트러져도 된다는 명분을 주었다.
지금까지 나날이 쌓이는 슬픔을 술 푸면서 해결하려 하였다. 한잔 두잔 넘어가는 술잔에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을 잊으려 하였다. 한 시절에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마시는 축하주였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어려운 문제를 풀기 싫어서 마시는 도피주가 되었다. 첫 경험 후, 20년이 지났다. 요즘 들어 이만큼 했으면 됐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조금씩 멀어질까 한다.
안녕. 나의 첫 일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