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말 할 수 있는 용기

by 이율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이런 곳에 와 본 적도 없고, 평소에 생각하지도 않았다.

토요일 아침 9시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려들었다.

평소에 사람에 대한 차이를 두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조심스레 그들과 가장 멀리 떨어진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난 저들과 다르다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름을 부른다. 큰 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병원을 가야겠다라고 느꼈던 때는 2 주전 종합병원 1층 로비였다.

아버지를 검사실로 보낸 뒤, 맞이한 커피 한잔의 시간. 그러나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종합 병원의 로비, 투썸은 아침이여도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나의 감정은 차분했다. 차분보다 차분한 척 하였다. 그러다 급 가슴이 가빠오며 오열하였다. 오열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갑자기 온 몸이 굳어지며, 눈물샘이 조절이 안 되었다. 그러다 무너진 둑에서 세차게 흘러나오는 물처럼 온 몸으로 울었다. 엉엉 울었다.

감정의 중간이 없었다. 상황에 맞지 않는 감정은 결국 NG다.


나는 말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말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문 안의 특유 분위기 때문에 말을 하기 싫었다. 진료실의 회전의자, 데스크탑 모니터에 앉아 있는 가운 입은 선생님의 첫 모습은 매우 딱딱하다 생각되었다.

아니, 가장 내밀한 말을 해야 하는 자리인데, 저렇게 사무적일 수 있나?

또, 그러나 어쨌든 말을 해야 했고, 심지어 여러 질문에 많은 말을 해야 했다.

쏟아지는 질문 폭풍 속에서, 잊지 않으려 했다. 자칫 잘 못하면 어디로 떠내려갈지 모르는 질문의 폭풍우 속에서도, 나는 생각했다. 이 또한, 내가 다 좋아지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이유 때문에 이렇게 되었고,,,,,,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꺼내면서, 스스로 갈무리 하기도 하고, 질문지의 도움도 받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사무적이라고 느꼈던 선생님의 말투가 객관적이라 느껴졌다. 나의 얘기는 들어주되, 감정을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섣불리 진단하고 조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선생님의 모습에서 나의 얘기를 조금 더 해도 되겠다 생각했다.


나는, 항상 감정과 생각을 감추는 게 익숙했었다.

또래의 남자아이들처럼, 속마음을 터놓고 말하는 게 나약한 것이었다. 이런, 정신적인 영역은 개인의 의지와 마음으로 극복하는 것 이라 생각했다. 소년 만화의 주인공은 항상 시련을 겪지만, 그 속에서 성장하고 위기를 이겨내면서 결국 승리를 한다. 이런 클리셰 적인 설정을 믿고,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은 내가 혼자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것 이라 생각했다. 이런 쓸데 없는 책임감과 고집이 나를 고장냈다.

병원 로비에서의 사건에서 나는 내 몸이 컨트롤 안 되는 두려움을 보았다. 그리고 상담을 통해, 나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약을 처방받으며, 나오는 길 햇살이 두려웠다. 의식하고는 있었지만, 의식하기 싫었던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처음 인식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모두 고통이었다..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병이 있다는 것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멀쩡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또 그렇게 감추며 혼자 이겨내 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가족에게 처음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나, 힘들어.


지금까지 한번도 힘듦을 내색 안하던 서른 중반의 아들의 고백에, 놀랄 만도 한데 가족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괜찮아. 혼자 힘들어하지마.



그 이후, 적어도 내가 믿는 사람들에게는 감추고 혼자 이겨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병원에서도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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