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없는 마음에 영원한 햇살이 내리쬐니

내가 사랑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

by 달리

내가 사랑했던 영화 리뷰.zip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이미지 출처 씨네21


'흠 없는 신녀의 운명은 얼마나 행복한가?

세상을 잊고 세상에 잊힌 자

티 없는 마음에 영원한 햇살이 내리쬐니

모든 기도가 이루어지고 모든 소망을 내려놓는다'


내용을 알고 제목을 해석해보려 해도 썩 직관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굳이 억지로 해석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굳이 이런 걸 해야 직성이 풀려서... 어떻게 생각하든 본인 마음이다.

첫째, 망각을 뜻하는 '티 없는 마음'에 집중. 함께 사랑한 시간과 기억을 지운 조엘과 클레멘타인.

두 사람 모두 서로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해 망각을 선택했듯, 잊기로 한 마음에 평안이 깃들 것이라는 메시지. 영화 러닝타임 중 중반부까지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해석이다.

둘째, '그럼에도 사랑하는' 티 없는 마음. 망각이 축복이라는 니체의 말과 달리, 망각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지는 못한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사랑이 또다시 찾아왔듯이. 어쩌면 사랑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동시에 잔인하도록 솔직한 메시지이다. 결말에 다다르면, 관객과 주인공들은 더이상 비밀 없이 모든 사실을 공평하게 공유한다. 그럼에도 두 주인공의 결말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두 사람이 결국 이렇게 저렇게 사랑하고 다투다 함께하든, 끝의 끝을 보고 각자의 삶을 살게 되든,

무엇이 해피 엔딩이고 새드 엔딩인지도 딱 잘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영화는 사랑과 만남, 이별과 후일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내가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다른 포인트에서 눈물을 뽑는 것과 맞닿아 있는데, 이번에는 조엘의 기억 속 무너져가는 해변의 집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두 사람의 모습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잊히지 않았다.

영화의 주제는 명확하다. 단순하고. 평론가의 평을 빌려, '사랑 영화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있기

때문에. 둘만의 기억, 추억, 싸움, 수치, 포용, 이해, 증오, 애정을 담은 흔하다면 흔한 소스를 넣은 줄거리와, 그에 딱 맞는, 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랑의 운명론적 명제까지. 누구든 한 번쯤은

조엘이자 클레멘타인이 되어 어렵지 않게 주인공과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몰입한다. 하지만 이렇게 뻔한

영화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을 따라 조금씩 다른 감상을 남긴다.

독특하지 않은 주제를 가진 영화가 볼 때마다 울림을 주는 이유는, 누군가를 사랑했고 미워했으며 그리워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을 사랑하는 순간 순간 느끼고

사라지는 수많은 복합적 감정들을 무엇 하나 지나치게 부각하거나 제거하지 않으려 애쓴다는 데 있다.


내게 가장 재미없게 느껴지는 영화들이 바로 '연애하는 로맨스 영화', '웃겨 죽는 코미디 영화', '슬퍼

오열하는 신파 영화' 같은 것들이다. 영화가 그 장르에 충실하기만 해도 됐지, 뭘 그리 복잡하게 따지냐 싶을 수도 있지만, 관람할 때는 즐기더라도 영화관을 빠져나오면 어딘가 허전하다. 만국 공통 남녀노소를 무난하게 겨냥해 순간적으로 얕은 공감과 재미를 이끌어낼 수는 있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좋은 영화로 기억되는 작품의 여부는 우리 삶의 순간에 고루 퍼져있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감정들을 얼마나 이질감 없이 녹여냈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사랑만 해, 싫어만 해. 그런 게 어디 있는가? 아무리 미운 사람도 언제는 '일은 잘 하네', '할 말은 하네' 싶을 수도, 얄밉다가도 재수 없어 죽을 것 같기도, 하루는 기분이 좋아서 무던하게 넘어가는 날도 있듯이. 사랑하는 만큼 미워하고, 미워하는 만큼 사랑하는 감정은 스스로도 정의하기

어려운 마음이지만, 결국 우리 중 누구도 이렇다 싶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그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영화 속 조엘과 클레멘타인을 통해 집약적으로 납득 당하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철저하게 조엘의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조엘을 만나고,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하기까지의 클레멘타인의 이야기는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 그의 '충동적이고 열정적인' 성향 말고도, 사랑과 이별, 망각에 있어서 선택의 과정과 이유 역시 궁금하고 애틋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아쉬운 점을 뒤로 하고도 이 영화는 그런 식으로 두 사람이 마치 언젠가의 나같다는 애틋함과,

'결국 그렇지' 하는 인정을 동시에 선사하며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울림을 준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의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느낄지,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순간마다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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