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높이, 더 멀리 비상할 여성들을 위하여

내가 사랑한 영화: 미스 슬로운

by 달리
Miss Sloane




50234_58bccdb027269[S700,700].jpg 이미지 출처 씨네21


제시카 차스테인 배우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영화는 1년 전부터 꼭 봐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던

작품이었는데, 140분 가량의 러닝타임이 아쉬울 만큼 몰입도와 흡입력 모두 높았던 영화였다.

줄거리는 길게 설명하면 자칫 영화 자체가 지루해 보일 것 같아 걱정이 되기에, 간단하게만 소개해보겠다.

엘리자베스 슬로운은 미국 정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로비스트, 총기 규제 수정 헌법 2조(이하 히스-해리스

법안)를 통과시키기 위해 상원 의원들의 표를 얻고자 고군분투한다. 상대측은 슬로운의 사생활과 그의 불법적 정치 활동을 엮어 캠페인에서 물러나도록 하려 하고, 이를 위해 마련된 청문회에서 상대 의원들의 비리와

거래 행위를 녹취한 자료를 공개하며 일종의 '너 죽고 나 죽자' 작전을 실행한 뒤 수감, 이후 가석방 된다.

소설적 기승전결보다는, 실존 인물에 포커스를 맞춘 만큼 '엘리자베스 슬로운, 히스-해리스 법안 로비'를

소재로 사건의 진행을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는데, 먼저 슬로운의 개인사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로지 로비스트로서의 슬로운을 메인 캐릭터로 보여줬다는 점이 좋았다. 슬로운의 과거 가정사, 현재 사생활이

가끔씩 비춰지기는 했으나 슬로운이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부재료일 뿐, 그의 개인적인

영역을 이용해 캐릭터에 대한 관객의 애정이나 몰입을 구하려는 의도에 미치지 않았기에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수정 헌법 발의 과정을 보다 수월하고 속도감 있게 전개하는 데도 무리가 없었다고 생각된다. 전통적인 영상 매체에서 여성 캐릭터를 그릴 때 흔히 부여하는 감정적, 개인적, 모성애적 측면을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영화 내에서 슬로운이 했던 대사들이 취향이었는데, 특히 '왜 사람들은 누군가가

열정적으로 어떤 일에 매달리는 것을 볼 때, 그것이 신념의 문제가 아닌, 개인적인 사건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까?' 라던지, '어떤 일은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닌, 그저 옳기 때문에 행하고는 한다.' 같은 문장들이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가 LGBTQ 권리 신장을 위해 운동한다고 가정할 때, 많은 사람들이

<왜 그 일을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쉽게 '주변에, 지인 중에,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어?'같은 무지한

질문들을 쉽게 던지고는 한다. 모든 행위의 결과가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지만,

쟁취욕, 승부욕, 신념, 그 어떤 것이라도 얼마든지 개인사를 넘어서는 행위의 동기이자 이유가 될 수 있다.


더해서, 슬로운은 영화에서 스스로 자신은 여성 인권에 큰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그 자신이

반전통적인 여성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부자연스럽지 않게 연출하는 점도 좋았다.

또다른 수작 중 하나인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의 필리스가 표방하는 반 페미니즘과는 또다른 맥락으로

그저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의 시사점을 가지는데,

모두가 동일하게 환경 문제, 아동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듯이 영화 속 슬로운은 단지 '페미니스트가 아닌 자'로만 정의할 수 없는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로 존재한다. 이러한 여성 캐릭터가 표현되고

그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작품이었다. 자신만의 서사와 신념을 가진,

그러나 아직 비춰지지 않은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조명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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