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모양 무엇인지 알 수가 없네

내가 사랑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by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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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는 바가 무엇이든 그것을 되도록 명확하고 전달 가능한 언어로, 글로 바꾸어 내보이려고 하는 것이 오랜 습관이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까지도 '그냥', '이유는 없는데', '왠지 모르게' 같은 말들로 치환되게 두지를 못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드물게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이 영화가 아주 오랜만에 그런 감상을 주었는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과정이 마치 하나의 일처럼 익숙해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장면 하나하나와 그것이 왜 마음에 들었는지 나름의 이유를 찾아두고 기억해두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는데, 역시나 오랜만에 영화 자체에 빠져들어 그것을 온전히 감상하고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주인공 일라이자와 '그'가 화장실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포옹을 하는 장면에서는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나기도 했다. 순수한 감동과 긍정적 충격으로 코끝이 찡해져 눈물이 나는 경험은 아주 오랜만인 것 같기도, 거의 최초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해 생소한 감정이었는데, 모든 것이 말도 안되는 환상적인 설정으로 얼기설기 엮어낸 한 울퉁불퉁한 세계에서 두 사람만이 서로에게 꼭 맞는 하나의 완전한 조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아주 오래 전 우주의 시작에서도, 먼 훗날 세계의 끝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끌어안은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몇 년 전 이 영화를 중간쯤 보다가 그만뒀던 적이 있다. 어떤 이야기인지 모르고 보기 시작했고, 나는 부끄럽게도 '그'의 모습이 다소 낯설고 징그럽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쉽게 esc 키를 눌렀다.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부담이자 거북함으로 다가올 수 있는 과감한 선택을 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포기하기에 이 영화는 보다 크고 깊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타인을 부러워하고 공경하는 것에는 박하지만 동정과 안쓰러움의 시선은 쉽게 던지고는 한다. '그'는 분명 인간과는 다른 존재이고, 어떤 이에게 학대와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그를 불쌍하게만 여기는 것이 영화를 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아니다. 즉각적으로 다가오는 시각적 낯섦, 생명 대 생명으로 평등함에도 분명히 설정된 불쾌한 상하관계에서 느껴지는 분노와 기시감, 그러한 꿉꿉하고 질척한 감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러므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세상의 모든 다르고 익숙하지 못한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일라이자가 자신과 다른 외형 너머 그의 본질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랑했듯, 이 작품은 세상에 존재하는-우리가 존재 여부를 인지하든 미처 인지하지 못하든-모든 종류의 서로 다른 모양을 가진 것들과,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에 바치는 사랑스러운 동화이자 헌사다. 그대의 모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 오래되고 뻔한 말일지 몰라도 이처럼 어렵고 힘든 일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일라이자를 통해 그것이 이렇게나 '가능한' 일임을 확인한 것처럼 느껴져 다시 한 번 마음이 부드럽게 사포질되듯 희망에 가까운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이만큼이나 그들 나름의 해피엔딩을 바라고 기대했던 영화는 없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바다에서 영영 그들만의 모양으로 행복하기를. 그들과 같은 이들이 수없이 많이 생겨나고 끊임없이 세상에 당당해지기를. 사랑이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단어가 주는 가장 아늑하고 환상적인, 그러나 동시에 가장 진실한 포옹을 <셰이프 오브 워터>가 당신에게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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