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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P Feb 25. 2024

낭만의 Rock ‘n’ roll

호수에 던져진 락이라는 돌멩이

항상 도파민에 취해 사는 나지만, ‘취준 전선을 넘어보자!’라는 마음으로 1년을 준비하다 보니 스스로 들뜨는 것을 경계하고 있어.

마음을 넓고 깊은 호수처럼 만들고, 그 호수 표면에 파동이 일지 않도록 평온하게 가다듬으려 하고 있거든.

이때가 내가 제일 생각이 번뜩이고 집중력이 좋은 상태라는 걸 수능 벼락치기로 깨달았고, 이후 무언가를 잘 해내고 싶을 때 내가 취하는 나만의 루틴이랄까.


하지만 호수가 항상 잔잔할 순 없는 법. 너무나 잔잔한 표면이 지루해질 때면 락이라는 돌멩이를 호수에 던지곤 해. 돌멩이들에 의해 생긴 파동은 서로가 부딪히며 새로운 파동을 만들어 내고, 그 과정에서 내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하거든. 나는 그 파동들에 몸을 던지고 호수가 다시 평온을 되찾을 때까지 호수 위를 표류하며 파동을 즐기지.


근데, 어제 오전 스터디 직전에 엄청난 돌멩이가 내 호수에 나타난 거야. SNS에서 락 페스티벌 스테이지에 오르지 못해 세면대에서 공연을 하는 대학생 밴드 짤이었는데, 꿈을 좇는 청년들이 낭만 있어 보이더라고. 락이 만든 파동에 휩쓸리고 싶었지만, 스터디 직전이라 마음을 꾹 눌러놓고, 대신 내 SNS스토리에 그 마음을 잠시 보관해 놨지. 그리고 작년에 사놓은 일렉기타를 치면서 즐겨야겠다! 생각해어.

스터디가 끝난 후 바로 집으로 향했고, 찾아둔 리프 두세 개를 연습했어. 세계적 거장들의 리프를 연습하다 보니, 문득. SNS짤 속 밴드의 노래가 궁금해지더라.


그들은 어떤 노래를 하고 싶어 세면대 무대를 선택했을까?  호수에 풍덩 빠진 락들이 만든 파동들이 합쳐지는 순간이었달까.

찾아보니 KBS 장수 프로그램이었던 ‘다큐 3일’의 2007년 롹 페스티벌 편의 일부분이더라. wavve에 19년 방송분까지만 나와 있어 낙심했었는데, 유튜브에 풀버전이 올라와 있었어. 이게 유튜브의 순가능인가. 드디어 ‘A Better Tomorrow’, 세면대 밴드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지.


다큐 속 사람들은 다 미쳤어. 한 명 한 명 낭만 돌멩이들이었어. 록 페스티벌을 위해 학교를 째고 온 고등학생, 락페스티벌을 즐기는 62세 할아버지, 코뼈가 부러져도 ‘놀다 보면 그럴 수 있죠.’하며 다시 놀러 가는 청년. 모두가 눈빛이 돌아있었어. 요즘 말하는 ‘맑은 눈의 광인’들만 있었다니까.

무대가 끝나고 다 같이 모여 통기타를 치며 오아시스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선 사람들이 정말 즐거워 죽겠다는 게  느껴졌어. 모르는 사람끼리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며 어울리는 모습이 참 낭만적이더라.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 분위기가 부러웠어.


그러한 낭만의 최고는 ‘A Better Tomorrow’ 밴드의 서사였어. 졸업준비생 두 명이 멤버인 이 밴드는 첫날 캠핑장 야영지 세면대 앞에서 무대를 꾸미지.

‘펜타포트 스테이지에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여러분의 세면대 스테이지에서 공연하겠습니다.‘ 영상으로 본 멘트는 오전에 사진으로 봤을 때 느낀 감정보다 곱절은 더 강력했어. 그리고 그들의 노래. 는 사실 별로였어. ’ 고기반찬‘ ’ 복학생‘ 두 가지 노래를 공연했는데, 복학생은 좀 애절하더라. 그래도 실력보단 그들의 열정, 낭만 가득 찬 행동에 세면대 사람들은 같이 환호해 줬지. 그다음 날에는 팬도 생겨서 노래를 따라 불러주더라. 아무것도 없는 밴드가 떼창을 받다니, 이게 진짜 낭만이지. 실력은 부족할지라도 원하는 바에 대해 강력히 주장하고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의 포상으로 떼창을 받은거지.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전하듯 그들의 무대는 영상 너머 나에게까지 용기를 전파했어.


이 밴드의 서사는 다큐 3일 마지막까지 이어지는데, 페스티벌이 끝나 모두가 출입구로 향할 때, 이들은 메인 스테이지를 향해 뛰어가. 초대받지 못했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메인 무대에 서보기 위해서. 관객은 무대 앞을 정리하는 일꾼 둘셋 정도. 하지만 관객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공연을 하지. 다큐 안에서 나온 무대들 중 가장 낭만 넘치는 무대였어.



다큐를 다 보고 나선 지금 내가 이 다큐의 매력에 빠진 건지 아님 락에 매력에 빠진 건지 분간이 힘들더라. 내 호수가 안경 진동 세척기처럼 엄청나게 떨렸다니까. 순수하게 락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순수함에 빠진 건지, 아니면 17년 전 사람들의 영상을 오롯이 담아내고, 그것을 보관하는 다큐에 매력에 빠진 건지. 둘 중 뭐가 되었든 굉장했어.

지금 저 밴드는 뭐 하고 있을까? 인터넷에 근황을 찾아봤는데, 약 10년 전 글로는 다른 일을 하고 계시다더라. 예상은 했었지만 뭔가 아쉬웠어. 2007년 영상의 낭만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이야기의 울림이 더욱 커졌을 텐데. 물론 이게 현실이겠지만. 나에겐 이것만으로도 엄청 큰 영감을 주었어.


락 폭격을 맞은 내 호수가 하루종일 울렁거려 공부는 할 수 없었지만! 그 흔들림 속에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조금 더 깨끗한 호수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 언제든 그 울림을 기억하고 싶을 때 그 다큐를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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